삶
2016.07.25 15:36
체 게바라의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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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사용하던 게시판의 글을 하나 퍼 왔다. 1998년에 사용하던, 한글과컴퓨터에서 홈 페이지를 만들기 위하여 당시에 개발한 게시판 프로그램을 이용한 나의 홈 페이지(http://www.hnc.co.kr/~spark 란 한컴 홈피의 일부)에 실었던 글이다. 원전: --> http://spark.drspark.co.kr/cgi-bin/fabbsview.cgi?section=sparketc&start=0&pos=63
그리고 오래된 이 글을 호출한 이유는 이 링크의 글 때문이다. --> http://www.drspark.net/index.php?document_srl=3044068&mid=jia_warehouse
글쓴 날짜 | 1998/4/20, 15:53:04 | ||
제 목 | 체 게바라의 30년 |
스키의 혁명과 체 게바라(Che Guevara)
30년이라는 세월. 꽤 긴 세월이다. 하지만 지난 인생을 돌이킴에 있어서는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세월이다. 그런 세월을 가리켜 활시위(bowstring)를 떠난 화살, 그야말로 쏜살같은 세월이라고 하잖는가?
스키 30년. 사실 그 중 많은 시간은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아마도 정확히 따진다면 그 중에서 대충 여섯 시즌 정도는 스키에 손도 대어 보지 못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다시 오지 못 할 여러 시즌을 그냥 떠나 보낸 것이 참으로 아쉽다.
스키와 30년을 돌이켜 보면서 난 스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러면서도 관계를 가지게 된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한다. 그 건 나의 스키 30년과는 관계없는 얘기다. 단지 개인적인 관심을 가진 한 광고에 대한 것일 뿐...
바로 체 게바라에 관한 것이다. 체 게바라(Che Guevara). 우리 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물론 지식인들에게는 꽤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공산주의자이기에 공산주의라면 치를 떨었던 과거의 우리들에게는 정말 멀게 느껴졌던 사람이다. 작년 97년은 그가 죽은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의사 출신의 인텔리였던 그는 모든 것을 떨치고 라틴 아메리카의 공산주의 혁명에 참여했다가 끝내는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총살되었다. 난 그가 총살되어 죽은 시신을 라이프(Life) 지의 뒷장 어디선가 본 일이 있다. 그가 죽은 것이 67년 10월 9일이었으니, 그 사진을 본 것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난 알지도 못 하는 그 사람을 총살되어 죽은 시신의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대했었다. 왠지 모르게 끔찍한 기분이 들었던 사진이다.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것만으로도 그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비참한 말로를 그린 사진은 내 뇌리에 한참 남아 있었다.
"체(Che)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쿠바와 아프리카, 제3세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리 심장으로, 우리 땅의 아들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체와 함께 콩고 내전에 참여했던 티자란 병사의 말이라 한다.(체가 이끈 콩고 반군에 의한 혁명은 실패했다. 그는 단지 쿠바 혁명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체의 시신은 볼리비아에서 30년 동안 묻혀 있다가 그의 혁명의 본고장인, 그리고 지구상에 남은 흔치 않은 공산 혁명의 증거지인 쿠바로 돌아갔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서의 조문에는 첫 날 무려 10만 이상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을 뛰어 넘은 체에 대한 광기의 의미를 난 알지 못 한다. 다만 그 오래 전에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한 빨치산 지도자가 정부군에게 붙잡혀 죽은 그 하찮은 사건이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뛰어 넘을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장례 마지막 날의 추도 인파는 무려 50만이었다고 한다. 그곳 산타클라라의 주민 수가 겨우 15만 명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30년이라는 세월. 꽤 긴 세월이다. 하지만 지난 인생을 돌이킴에 있어서는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세월이다. 그런 세월을 가리켜 활시위(bowstring)를 떠난 화살, 그야말로 쏜살같은 세월이라고 하잖는가?
스키 30년. 사실 그 중 많은 시간은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아마도 정확히 따진다면 그 중에서 대충 여섯 시즌 정도는 스키에 손도 대어 보지 못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다시 오지 못 할 여러 시즌을 그냥 떠나 보낸 것이 참으로 아쉽다.
스키와 30년을 돌이켜 보면서 난 스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러면서도 관계를 가지게 된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한다. 그 건 나의 스키 30년과는 관계없는 얘기다. 단지 개인적인 관심을 가진 한 광고에 대한 것일 뿐...
바로 체 게바라에 관한 것이다. 체 게바라(Che Guevara). 우리 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물론 지식인들에게는 꽤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공산주의자이기에 공산주의라면 치를 떨었던 과거의 우리들에게는 정말 멀게 느껴졌던 사람이다. 작년 97년은 그가 죽은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의사 출신의 인텔리였던 그는 모든 것을 떨치고 라틴 아메리카의 공산주의 혁명에 참여했다가 끝내는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총살되었다. 난 그가 총살되어 죽은 시신을 라이프(Life) 지의 뒷장 어디선가 본 일이 있다. 그가 죽은 것이 67년 10월 9일이었으니, 그 사진을 본 것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난 알지도 못 하는 그 사람을 총살되어 죽은 시신의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대했었다. 왠지 모르게 끔찍한 기분이 들었던 사진이다.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것만으로도 그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비참한 말로를 그린 사진은 내 뇌리에 한참 남아 있었다.
"체(Che)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쿠바와 아프리카, 제3세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리 심장으로, 우리 땅의 아들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체와 함께 콩고 내전에 참여했던 티자란 병사의 말이라 한다.(체가 이끈 콩고 반군에 의한 혁명은 실패했다. 그는 단지 쿠바 혁명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체의 시신은 볼리비아에서 30년 동안 묻혀 있다가 그의 혁명의 본고장인, 그리고 지구상에 남은 흔치 않은 공산 혁명의 증거지인 쿠바로 돌아갔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서의 조문에는 첫 날 무려 10만 이상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을 뛰어 넘은 체에 대한 광기의 의미를 난 알지 못 한다. 다만 그 오래 전에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한 빨치산 지도자가 정부군에게 붙잡혀 죽은 그 하찮은 사건이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뛰어 넘을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장례 마지막 날의 추도 인파는 무려 50만이었다고 한다. 그곳 산타클라라의 주민 수가 겨우 15만 명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난 그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무의미해 진 이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 시대에 있어서도 한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투사가 그처럼 영웅시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모르겠다. 쿠바와 같은 공산주의 국가가 상존 함을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체가 살던 그 시절, 그 지역에서처럼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핍박받은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는 게, 그 걸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게 왠지 모르게 아름다워 보이고, 그의 죽음이 조금은 슬퍼진다. 의사의 가운(gown)과 투사의 전투복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의사가 공산주의의 투사가 되어야 했을까? 그 역사의 아이러니를 슬퍼할 뿐이다.
- 피셔 사의 Revolution Ice 모델 광고. 혁명(revolution)을
상징하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슬로프의 나무와 눈의 배열
중에 나타나고 있다.
피셔 사는 그들의 수퍼 사이드컷(super sidecut) 스키에 채용된 혁명적인 기술을 광고하기 위하여 위의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캠페인은 그들의 생각만큼 성공했던 것 같지 않다. 덮개식(cap) 스키가 주류를 이루어 가던 시기에 기존 공법(적층식 스키)으로 만든 스키를 내 놓은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피셔 본사의 이 체 게바라를 이용한 광고를 채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 비록 요즘은 그 걸 따지는 사람이 없지만 -- 그가 공산주의자이고, 또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어서 그를 패러디(parody)한 광고가 먹혀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피셔 수입상인 GW Korea의 김철주 이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 위 광고에서의 체(Che)의 모습. 정말 예술가의 창조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우리의 현재인 체의 미래에는 공산주의가 헛된 이념으로 치부되고 있을 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다니... 우리에게는 크게 어필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는 이미 20세기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인물 중의 한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체 게바라의 모습을 스키장 슬로프의 모양으로 만든 피셔(Fischer) 사의 광고를 보면 체가 서구인들에게 대중적으로 얼마나 어필(appeal)하고 있는 인물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짧은 생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생을 불살라 가며 산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난 공산주의자로서의 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념을 떠난 그의 삶에 대해서는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그가 의사로 남아 있지 못 하게 한 이 세상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나의 스키 30주년을 돌이켜 보면서 난 스키 광고와 더불어 30년만에 되살아 난 혁명의 영웅 한 사람을 되돌아 본다. 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나?
- 왠지 모르게 좀 섬짓한 느낌이 드는 사진이다. 그 엑조틱(exotic)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석양을 배경으로 해서 플래쉬를 터뜨려 사진을
찍은 것 같은 분위기여서 그렇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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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래 사진은 코르다의 유명한 사진 (저작권을 주장 안 하고 자유롭게 쓰게 내두어서 너도나도 썼던 - 너무 체의 이미지를 망치는 광고에까지 쓰기에 다시 저작권을 주장한다고)을 바탕으로 다시 색을 입혀 그린 것 같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사진도...
http://i.imgur.com/o91RToH.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