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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30 11:09

아들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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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165 좋아요 0 댓글 1

오늘 어디 이력서를 제출할 일이 있어서 이력서 파일을 찾다가 그 이력서 파일 옆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란 제목이 보이기에 그걸 열어 봤다. 그랬더니 내 기억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글 하나가 나왔다.

 

내 아들 현근이에게 쓴 글이다. 앞부분의 글을 보니 그게 언제 쓰인 것인가를 알 수 있었고, 글 말미를 보니 "2005년 4월 18일 월요일 아빠가..."라고 쓰여 있었다. 벌써 8년 전에 쓴 편지다. 그 이후에 아들은 결혼을 했고,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 후의 진로에 관하여 우리 부부와의 상당한 갈등을 거쳐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고,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종사하고 있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내가 진심을 다해 아들을 향해 쓴 글을 읽어봤다. '아 내가 그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여러 차례 들었다. 스스로 독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역시 난 자식을 걱정하는 평범한 어느 아빠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근아,

 

잘 있으리라 믿는다. 엄마 편지에 네가 답장을 했다는 얘길 들었다. 아직 네가 보냈다는 두 번째 편지(답장)를 읽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을 쓴다.

 

아무리 짧은 훈련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어서 그 훈련에 임하는 너로서는 꽤 힘이 들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경우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후방 부대 두 곳(전북 여산의 제2하사관학교, 전남 광주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을 거쳐 전방(철원) 두 군데에서 군대 생활을 했지. 대학 재학 중의 군사 훈련을 2년 받고 간 덕분에 36개월 근무 중 2달의 혜택을 받아 34개월이나 근무를 했고... 거기 비하면 네가 받는 훈련은 단기간의 집중 훈련이어서 강도가 더 셀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나중에 군대다운 군대(?)에서 장기간 복무해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고 견딜만하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런 특별한 기회에 그간 못 한 말을 해야겠다. 내가 아무리 네게 엄한 척 해도 사실 알고 보면 별 수 없는(?) 평범한 아빠일 뿐이다. 네가 처음 겪을 군 훈련이 걱정되고, 또 네가 지낼 곳이 어딘가 궁금해서 엄마와 미리 양평의 그 훈련소에 가보고 했던 건 결국 그런 나의 나약함의 증거이지. 두려움이라는 건 모르는 것에 대한 쓸 데 없는 걱정인 것이기에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볼까하는 생각에 양평을 미리 가봤던 거란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모르면 머릿속에서 엉뚱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그걸 걱정하게 마련이니까.

 

전에 강도 높은 동원예비군 훈련을 경치 좋은 포천의 산정호수 일대에서 받은 일이 있는데, 그게 훈련이다 보니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데 그곳의 좋은 경치도 눈에 보이지가 않더구나.^^ 양평이라면 한적한 시골 도시의 풍경만 그리고 있었는데, 비로소 네가 훈련을 받을 곳을 가보고서야 꼭 그런 것만도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큰 길에서 조금 벗어난 덕흥리 주변 산에 있는 포사격을 위한 숫자 표지판이나 각개 전투 훈련장 등을 보니 역시 사람은 관심이 없는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길이 우리가 홍천 비발디 파크 스키장에 오갈 때마다 지나온 곳이 아니었더냐? 거길 지나치며 커다랗게 흰색으로 숫자가 그려진 그 표지판이 한 번은 눈에 띄었을 법도 하다만, 난 그날 거기 가서야 그걸 처음 본 거다.

 

네가 훈련소에 입대한 후에 난 네 엄마와 양평에 갔을 때 보고 온 부대의 위병소며, 그 주위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거기서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훈련하는 네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훈련소 생활이라는 것이 으례히 그렇듯이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힘든 상황의 연속이 아닌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 받고, 기계적인 훈련을 반복해야하며, 그간 쌓아온 많은 지식의 상당 부분이 부정되기도 하여 의식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고... 하지만 언뜻 보아 다른 것 같은 이 바깥 사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많이 생긴다. 군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일들이 많지. 합리와 합법을 가장한 일들 말이다. 오히려 군의 단순명료한 접근 방법이 더 바람직할 때도 많으니 군 생활에서 배워야 할 것도 적지 않은 법이다.

 

잘 알겠지만 훈련소 생활에서처럼 힘겨운 생활은 나중에 사회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런 어려운 군대 훈련도 잘 받아냈는데, 이건 그에 비하면 얼마나 쉬운 일인가?'라고 생각하고 나면 새 힘이 솟는 거지. 그래서 남자는 군에 갔다 오면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 경험에 비춰봐도 분명히 맞는 것 같다.

 

아다시피 너나 나나 이젠 성인으로서 세대는 다르되 같은 걸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한다. 굳어진 사고방식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으나 나도 나름 대로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자 노력하고, 젊은이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한컴으로 옮긴 94년 이후 계속 젊은 친구들하고만 생활해 왔기 때문에 네가 생각하기엔 내가 고루한 전세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친구나 주위의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내가 그들을 기성세대로 몰아붙이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이니까.

 

내가 그간 한 사회인으로서의 너, 한 개체로서의 너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못 하고, 때때로 사랑을 빙자한(?) 감정의 부름에 바보 같이 순응한 것 등에 대해서 나름 대로 많은 후회를 한단다. 내 경우도 매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어느 순간에 아버지로부터 어른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이 된 순간에 그처럼 엄한 것 같았던 아버지가 매우 나약한, 아주 평범한 보통의, 아니 보통 이하의 여린 아버지로 변해 버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저 모습이 내가 보아온 강한 아버지 상이었던 말인가?'하고 의아해 하면서 오히려 마음 한쪽이 휑하니 뚫려 그리로 찬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감까지 느꼈지. 그 이후, 아버지는 옛날의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아버지가 내게 의지하시려는 걸 느끼기도 했지.(나나 작은 아버지나, 고모에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전의 강한 아버지의 시대가 참 좋았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심적으로 약해지신 아버지가 이젠 연세가 더 드시자 육체적으로도 약해지셔서 전의 그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어지니 허망한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이젠 매년 다음 해를 기약한다는 것조차 힘든 노인이 되시지 않았는가?

 

나도 아마 내 아버지가 겪으신 것과 같은 경로를 밟아가게 될 것이고, 넌 그런 나를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강해 보일 거다. 아직은 내가 열심히, 에너지틱하게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자식에게 강한 부모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거란다. 그런 얘길 들었지만 그걸 믿게 된 지는 나도 오래지 않다. 하지만 그걸 알 필요는 있지. 이미 네 주장에 내 생각을 꺾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언뜻 내 생각이 옳은 것 같아 그걸 주장하려다가도 잠시 더 생각해 보면 네 논리가 나를 압도하고 있다고 느껴서 네 말에 수긍하거나, 내 생각을 얘기 않고 그냥 접어 버리며 너를 대견해 하는 거지. 그런 과정에서 난 네가 성장했다고 여기고, 반대급부로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군대생활 참 어려운 거지. 하긴 "공익근무를 위한 훈련이 군대생활이라면 파리가 독수리다."라고 뼈아픈 농담을 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아들놈이 해병대나 공수부대를 간 게 아니고, 공익으로 빠지다 보니 난 요즘 공익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도 한 때는 "파리의 독수리론"을 펴던 사람이었는데...-_- "남들 몇 달 훈련받을 걸 한 달도 못 되는 짧은 기간에 압축해서 받아야 하는 게 쉽겠냐?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울 수도 있지."라는 말도 안 되는... 또는 "차라리 사회에서 멀리 떠나 전방부대에서 뺑뺑이 돌면서 3년 지내면 그게 짧게 느껴지고 좋은 거지, 공익은 짧지도 않은 세월동안 이 사회의 일각에서 민간인도 군인도 아닌 상황으로 홀대 받아가면서 생활하는데, 그게 더 힘들지." 등등 갖가지 이유를 대가면서 공익을 옹호하는 공익근무자의 아비가 된 거다.^^

 

공익 근무가 더 어려운 군대생활인지, 더 쉽고 보람을 찾을 기회가 많은, 다시 올 수 없는 인생의 귀중한 한 때인지는 네가 결정하게 될 거다. 아다시피 난 별반 우수한 사람이 아니다. 수재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무슨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뭔가를 잘 해 보려면 꽤 많이 고생을 해야하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엔 똑똑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많고, 또 재능을 타고 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난 분명 그렇지 못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사람이다. 네게도 세상은 내게 다가온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오히려 난 모든 것이 어리숙하고, 단순하고, 또 인간미가 있었던 시절을 살 수 있었기에 행복했는지 모른다. 네가 살아온 세상은 지금까지 네게 그랬듯이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해결할 문제로 산적한 것이었을 거다. 앞으로도 그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어찌 보면 사회의 너에 대한 도전은 더 거세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훈련 기간 이후의 공익 근무 기간 동안에 넌 많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군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가 나와 새로이 적응해야할 사회 속에서 미리 세상을 사는 방법을 배워가게 될 것이다. 그게 네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된다. 그 기간의 삶은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강요하게 될 것이고, 또 너는 그에 대비한 마음가짐으로 살게 될 것이며, 또 그 기간 이후의 너의 삶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그 어리숙한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나 나름 대로는 꽤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결국 이 세상을 부정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걸 살아나가야만(survive) 하고, 그러려니 내 나름의 인생관 같은 걸 재정립해야하는 시점을 맞기도 했었단다. 아주 거친 것 같은 표현이나, 그래서 그 의미를 더 되새기게 하는 "질긴 놈이 이긴다."는 내 캐치프레이즈는 그래서 생긴 거다. 특별히 타고 난 것이 없는 사람은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거기서 생기는 결과가 없다는 거지. 다행히 살아오면서 난 머리나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이 쉽게 지친다는 걸 알았던 거다. 지친다기 보다는 적당히 해도 꽤 많은 걸 할 수 있다 보니 그들이 방심하고, 한눈을 파는 게 많다는 걸 안 거지. 그러니 같은 일을 하면서 질기게 추구하다 보면 시간적으로는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할지 모르나 그들과 비슷하게라도 뭔가를 해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그걸 다행으로 여기며 살게 된 거지.

 

내 삶의 방식이 꼭 옳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혹시 네가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런 방법도 있다는 얘길 이런 기회에 해 주고 싶다. 삶에 지쳐있다 보니 내가 네게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 주지 못 한 걸 난 꽤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좀더 따뜻한 마음으로 널 보살펴 주지 못 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할 때도 많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윽박지름보다는 대화를 통해 이해를 촉구하는 식으로 여유있게 너를 대하지 못 한 것도 마음 한 편에 큰 짐처럼 남아있다. 그래도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세련됨을 가지지 못 했을 뿐 사랑이 없는 아버지는 아니란 걸 강변하고 싶다. 세상에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나? 만약 네가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다면, 그건 오해다. 내 표현력의 한계가 그것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후회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앞으로 그런 결점을 고쳐나가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느 새 이렇게 날짜가 지나갔나?'하고 생각하다가도 '아직도 꽤 많이 남았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당사자인 네게는 희망이고, 한 편 절망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도 끝이 있고, 지나고 보면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너도 경험한 바가 있을 거다. 인생은 그런 것의 연속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곧 훈련이 끝나고 그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그 기간동안에 내면이 성숙된 네가 또다른 성숙을 위해 다시 사회로 발을 내디딜 거다.

 

그 때의 넌 예전의 네가 아니고, "Welcome back!!!"하며 너를 맞는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서로 변모한 모습으로, 둘 다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얼마 안 남았다.^^

 

2005년 4월 18일 월요일 아빠가...

 

PS: 아빠와 엄마는 결혼 25주년을 맞아 이번 주말에 제주도에 갈 거다. 금요일에 떠나 월요일에 돌아올 예정.

 

Comment '1'
  • ?
    snowtogolf(박정민) 2013.05.03 11:29

    이편지를 보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내가 저런 진심어린 충고와 위로를 아들에게 해 줄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늘 엄하게만 대하려하고 꾸짖기만 하는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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