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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깊은 음색으로 시의 이미지를 풀어내는 시노래 가수 박경하

 

사람은 살아가며 늘 새로운 인연을 맺고 풀지만 거기엔 일정 수준의 희생과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며 용기 또한 있어야 한다. 덜 힘들기 위해 생각이 비슷하거나 취미가 같은 등의 동질감을 느껴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첫눈에 반했다는 말처럼 단 한 번 만남으로 호감을 가졌다가도 사소한 것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곧잘 받기도 한다.

하물며 누군들 새로운 인연 맺기를 위해 먼 길을 갈 엄두를 쉬이 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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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詩隣)’ 음반발표를 한 이후 내내 꿈꾸었는데 영동 황간역에서 일정이 있습니다. 마치는 대로 선생님 계신 곳(설악산 오색자락)을 찾겠습니다라 알려왔을 때도 짧아야 며칠, 어쩌면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야 오겠지 싶었다.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자신이 부른 노래와도 인연이 먼 고장으로, 그리고 그저 오가는 인사 정도만 나누는 여린 인연의 끈을 이어 오리란 건 실로 꿈이지 싶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시를 좋아하고, 시로 된 노래를 고집하는 가수는 스스로 편하다고 했던 일정도 아닌 토요일 저녁 늦은 시간 설악산 자락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시와 사진 작업을 하시는 안소휘 선배님과 동행해서였다. 동행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먼 길 돌고 돌다보니 꼬박 8시간 이상 운전을 했을 그 수고로움에 미안함부터 느꼈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한 번 찾아보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안소휘 선배님과의 오래고 좋은 인연도 시린 박경하 가수의 설악산 행엔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한다.

새 도로명 주소를 전했지만 그것만으로 길을 나서고 찾는 일이 여전히 난감하다는 걸 안다. 그러하기에 마중을 나갈 준비를 해 둔 상태로 기다리다 잠시 졸았다. 래은이와 래원이가 늦도록 놀다 간 뒤라 낮 시간 잠시도 쉴 수 없었던 것도 이유다.

전화벨 소리에 일어났다. 이미 오색으로 접어들었다는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갔다. 백암마을 입구에 승용차 한 대가 멈추어 있었다. 차에서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짐작했는지 운전석에서 한 사람이 내리더니 인사를 한다. 차에 올라 곧장 돌아와 인사를 나누고 늦은 시간이지만 얼마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박경하 씨에게 묻지 않았던 것이야 많지만 그 중 하나가 사는 곳이었다. 어림짐작으로 서울에 살겠거니 했고, 자연히 울산 등 남쪽 지역의 일정들을 어떻게 그리도 잘 소화시키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이런 당연히 서울에서 생활할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이었음은 황간역에서의 행사를 안소휘 선배님께서 열차를 이용해 가신다는 내용을 만나면서부터다. 같은 서울이라면 3시간을 운전해 황간역을 간다는 박경하 씨가 안 선배님이 혼자 열차를 이용하시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일 운전을 하고 서서 행사를 치렀을 박경하 씨도 그렇지만, 잠 한 숨 못 주무시고 새벽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서울역에 나가 열차편을 알아보는 등 분주하셨을 안 선배님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셨다. 주무실 자리를 준비해드리고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날 밝은 뒤의 일정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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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눈을 떠 커튼을 걷자 창밖 풍경이 하얗다.

준비를 마친 박경하 씨가 나오자 전날 마을 주변에 있을 줄 알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주유를 하기 위해 양양읍으로 향했다. 첫 일정으로 오색약수 근처에 사시는 황동규 감독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도, 다음으로 오색령을 오르기 위해서도 이미 불이 들어 온 차엔 주유부터 해야 했다. 주유를 마치고 시장에 들러 간단한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와 안소휘 선배께서 일어나시길 기다려 식사를 했다.

각자 머물던 자리를 정리하고 오색에 들러 EBS에서 오랫동안 다큐제작을 하신 황동규 감독님을 찾아뵈었다. 황동규 감독님께서 내어주시는 따뜻한 차를 마신 뒤 함께 오색령(한계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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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된 설악산 오색에서의 일정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꼬박 나흘간 쉬지 않고 산과 들은 물론 영상이 될 만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이때까지 솔직히 말하면 시린음반에 실린 곡은 단 두 곡밖에는 들어보질 못 했었다.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개여울'과 구광렬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들꽃이다.

그 외 동요를 들을 수 있었는데 시낭송을 할 때 시가 이미 지닌 음률과 감정을 전달함에 충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저강약이 분명하고, 어디엔 물 흐르듯 잔잔히 흘러야 되는지를 제대로 해석해 더 깊고 충만한 감동을 느꼈다.

잠시 시낭송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면, 시낭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를 이룬 각각의 시어가 지닌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목마와 숙녀처럼 많은 이들이 이미 낭송을 해 널리 알려진 시의 경우라면 더욱 더 그렇다. 이미 익히 알려져 있거니와 누구의 낭송이 더 감동적인지를 많은 이들이 알아챘으니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단어가 아닌 시어로써 시어가 지니고 있는 감정이란, 즉 시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의미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나 실로 제대로 해석해내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짝사랑 대상의 마음을 얻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과 같은 온갖 정성이 담긴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정호승 시인의 '연어'를 낭송하는 경우라면, 거친 격랑을 이기고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습성과 감동을 그대로 살려 낭송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낭송하려면 가야하는 이의 쓸쓸함을 담담한 어조지만 분명한 단어의 표현으로 잔잔하게 낭송할 때, 보다 의미 전달이 명확하게 된다. 낙화와 낭송을 거의 동일하게 할 수 있는 시는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 하겠다.

시가 지닌 전체적인 의미를 먼저 분석하고 그에 맞는 낭송법을 갖춰야 한다. ‘이란 단어는 단어일 때는 그대로 이지만 시어로서는 이미 흐름과 다양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걸 바르게 표현할 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시낭송은 결국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감정이 없는 낭송이란 옳은 낭송이 아니다. 또한 연과 행의 구분과 종결에 대하여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저 읊조리는 자체도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까지 부단한 노력과 시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하는데, 박경하 씨는 낭송이 아닌 노래로서 그 감동을 온전히 듣는 이들의 가슴마다 깊게 스며들게 한다.

물론 낭송하기 좋은 시들이 있다. 더러는 낭송자의 어조에 따라 잘 어울리는 낭송시가 있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유치환의 행복, 정두리의 그대 등이 그런 범주의 시라 하겠다. 연서를 읽을 때 그 연서를 보낸 이의 마음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듯 시도 마찬가지로 시인이 시로 노래하고자 한 의미를 잘 전달하는 낭송이라야 좋은 낭송이라 하겠다. 즉 낭송과 창작은 같은 사상과 철학을 지니고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박경하 가수의 노래를 듣노라면 우선 마음이 즐겁다. 들판에 가득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이 그려지고, 실개천 몸을 일구며 파르라니 온갖 봄풀들이 새움을 틔우는 정경이 확연하게 그려지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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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시간을 갖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느낀 감동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기회를 갖겠다. 이번에 발표한 음반 시린130울주문화예술회관(052-229-9500)’에서 발표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오로지 130일 만날 소중한 분들을 위해 좋은 영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에서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맑게 웃는 그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10년도 넘는 오랜 시간 시노래 하나만 올곧게 사랑했겠지.

최근 이런 저런 경로로 곡을 쓰는 분들이나 노래를 부르는 이들, 그리고 박강수 씨와 같이 노래 관련 작업을 모두 소화하는 이도 만나는데 항상 조심스럽다. 좋은 마음으로 쓴 글이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고, 곧잘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던 것도 이유다. 하지만 기질 자체가 그런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판단을 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지닌 마음자리가 곱다는 사실에 용기를 내어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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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글을 썼으니 박경하 가수의 130일 음반 발표회를 소개한다.

387석이라는 넓은 공간, 아직 자리 여유가 많으니 많은 분들을 더 모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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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그동안 촬영했던 개여울 사진들로 편집한 동영상으로 박경하 가수의 노래를 만나보자.


Comment '3'
  • profile
    Dr.Spark 2015.01.18 19:15

    오래 전 정미조 씨의 노래로 들었던 "개여울"과는 또다른 감동이 있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설악산 사진들이 그 노래에 곁들여져 아름다움을 더하는군요.^^


    셔터 타임이 긴 사진들이 설악의 냇물들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고요.^^

  • ?
    한사정덕수 2015.01.20 13:03
    박사님 안녕하세요.
    조만간 박사님께 박경하 씨의 시린 음반을 전달하겠습니다.
    노래를 들어보시면 시가 또 다르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더구나 박사님께서 소장하고 계시는 근사한 오디오를 통해 들으면 그 감동은 더 크겠지요.
  • profile
    Dr.Spark 2015.01.20 19:42
    아니, 그런 선물까지...^^
    울주가 훌쩍 떠나 가보기엔 좀 멀어서 아쉽습니다.
    언제 한 번 직접 박경하 씨를 뵙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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