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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늘 되고, 오늘은 어김없이 어제 되는 어느 하루 걷기 좋은 호숫가

 

 

초록이 지쳐 누우면 마음 한 구석 서늘한 한기(寒氣)가 들고 어딘가 훌쩍 떠남을 재촉한다.

만남을 목적으로 떠남이 아닌 비움을 목적으로 한, 그저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무작정 걸어들고 싶은 떠남이다. 그런 떠남에서 만나지는 아련한 추억의 갈증을 해갈 할 풍경 하나면 행복은 충족되는 법.

설악산에서 일주일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로드뷰 제작을 위한 산행으로 몸은 천만근 무거우나 그 아침 맞이한 동판지의 가을 풍경 하나는 피곤을 일순간 몰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독한 두통을 해소시켜준 고마운 이, 또 다시 지리산으로 이동해야 할 많은 짐을 내내 이동시켜준 김연선(하늬바람:blog.daum.net/sunny38)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늦었으나마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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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 이미 걷힌 시간 동판지 제방 길로 들어서며 탄식이 절로 토해졌다.

“두 시간만 일찍 왔으면 근사한 새벽안개 흠뻑 빠졌겠다.”

아쉬움 아무리 커다란들 이미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김없이 어제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이 한 순간 그나마 남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불행해진다.

늦으면 늦은 그 시점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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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좋을 까닭은 없다.

그런데 그런 안개가 아쉬울 때도 있으니 세상 하나 버릴 게 없음을 또 다시 절감한다.

사람의 인연도 이와 같다.

없는 듯 소중한 이들 얼마나 많은가.

당장 제방 길 아래 내려서 사진 몇 장 촬영할 때 비탈길 내려와 촬영하는 김연선 님도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 써주지 않았던가. 또한 매년 부족한 글과 사진임에도 불러주는 이들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10년 전이다.

아직은 출판하지 않은 많은 글 중 ‘철없는 내 마흔에’란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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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내 마흔에

 

흐린 하늘 바라보다

별을 보여 달라 기원하는 밤

시간에 고운 빛깔

입혀달란 큰 바램

내 마흔의 철없음 아니랴

 

쨍한 볕 든 어제

덥다

목마르다

쑥부쟁이 여린 싹으로 주저앉아

투정 심하던 내가

오늘 생각하거니

 

말없이 해를 좇아

고개 돌리던 너그러움으로

씨앗 가득 여문 해바라기

아- 그 겸손이 복 이였어.

 

관자놀이 아프도록 이 악물고

내 마흔의 부끄러움에 혼절하고픈 밤

술잔엔 소주만 맑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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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낮추고 겸손할 줄 아는 법을 배워가던 시기였고 동시에 고단했던 때다.

그렇다고 다른 이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문제들, 막 태어난 첫 딸이 일어서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그래 가을을 그렇게 보냈다. 알록달록 곱게 물 든 단풍에 탄성을 지르는 이들 많지만 그게 이제 마지막 흔적으로 지워질 미련이란 걸 먼저 알아야 한다. 버림으로써 가벼워지고, 혹독한 겨울을 버텨 낼 수 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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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세상 살며 얻은 시름 내려놓고 편안히 마음의 위안을 얻는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이곳 사는 처녀 총각들 데이트하기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데이트를 하겠다고 호젓한 장소를 찾는 일도 요즘엔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젊은이들 생각 자체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서겠다. 나이 쉰을 넘긴 이들이야 대학가를 제외하면 다른 이들 눈을 피해 호젓한 장소를 찾아 데이트를 했다. 둘만의 속삭임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화사한 행복을 그리며… 호숫가 언덕에 집 한 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닌 이들 많다. 그만큼 호수가 지닌 감성의 진폭이 크다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품 같은 심리적 안정을 주며, 동시에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 본연의 욕망의 탈출구가 자연적 환경을 지닌 호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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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서 촬영을 하며 걷는 김연선 님을 불렀다.

이틀에 거쳐 좁은 버스에서 챙기기 부담스러운 짐을 도맡아 옮겨준 그도 호수와 호수를 둘러 걸으며 만나는 풍경에 도취한 모양이다. 사진촬영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이라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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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걸음 멈추고 돌아선 그를 향해 포커스를 재빨리 맞추고 한 장 사진 촬영을 했다.

“잘 나왔으면 나중에 보내주세요.”

흔쾌히 그리 하겠노라 대답했다.

저 앞 서 먼저 간 일행 중 경남도민일보의 민병욱 기자가 돌아오고 있다.

경남도민일보의 사회적기업 해딴에가 진행하는 전국 블로거 초청 팸투어에서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세 분 중 한 분이 민병욱 기자다.

장유근 선배와 김연선 님,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이 사진촬영에 몰입해 일정에 차질을 빚으니 갔던 길 되짚어 나선 모양이라 서로 재촉하며 발걸음을 서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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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으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친다.

근사한 풍경 속 그 분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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