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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2014.12.24 12:54

장님에게 등불을 쥐어 준들…

조회 수 547 좋아요 0 댓글 2


이제 갑오년의 문을 닫고 을미년의 아침을 맞이한다. 갑오년과 을미년의 전환점에서 역사를 더듬어보는 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대를 그려내는 드라마에서 극중 인물이 하는 말이 역사 속에 고증된 내용일 때도 있으나,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사회상을 역사물 속에 슬며시 투사시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했음직한, 요즘 세상에도 적용되는 말들을 600년 전, 혹은 1000년 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들으며 그 시대에 이끌려 들어가는 듯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지난 연초 시작되어 초여름으로 막 접어들 때 막을 내렸던 ‘정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의 뇌리에 오래 기억될 말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중 15개 정도만 추려 소개한다면… 
 
1. “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이 다음,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라 했습니다.'해서 백성의 고통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2. “내가 생각한 대의는 아주 평범한 것이네. 백성들 앞에 놓여 진 밥상의 평화. 백성이 오늘 저녁 먹을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고려의 영광보다 우선이지.”
3. “사서오경을 달달 외우고 주댕이로 공맹의 말씀을 달달 왼다고 해서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고통을 모르고 무의를 모른다면, 머리에 똥만 가득 찬 밥버러지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참으로 나약해 보이지만 더없이 끈질기고 강인한 존재. 그게 백성들일세.”
5. “모든 백성이 존중받고 각자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지으며 백성이 군자처럼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6. “군주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이고 정치는 재상에게 맡겨야 합니다. 못된 재상은 바꿀 수 있지만, 못된 군주는 바꿀 수 없으니 민생에 고통만 부릅니다.”
7.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낸다고 해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고 더 안전한 것이다.”
8. “머리에 똥만 가득 찬 밥버러지가 무엇을 알겠는가? 자네들(백성)이 군자이니 자네들 말이 맞을 것일세.” 
9. “네 죄가 아니다. 백성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한 이 빌어먹을 나라의 죄다.”
10. “군주의 권위와 힘을 갖지 못한 자가 용상에 앉아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이네.”
11. “정치의 소임은 세상의 정의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12. “산다고 다 사는 것입니까. 사람답게 살아야지요. 그것이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대업이었습니다.”
13. “배워라. 배우면 너의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이 돌탑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4.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요. 가시가 언젠가 단검이 되서 돌아올 것입니다.”
15. “장님에게 등불을 쥐어 준들 길이 보이겠습니까?” 
 
드라마 ‘정도전’의 성공은 작가인 정현민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10년 동안 하며 정치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현민 작가가 밝힌 정도전에 대한, 그리고 작품을 구상한 말을 곱씹어 본다. 
 
“정도전의 궤적을 쫓던 중 조선조 지배 철학인 유학(儒學)이 일반적 선입견과 달리 그리 고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학은 당대에 상당히 이상적이고도 급진적인 학문이란 걸 알 수 있다. ‘임금을 바꿔야 한다’는 사고부터 얼마나 파격적인가. 불교가 지배적인 시대에 내세를 부정하고 현실 모순을 좌시하지 말라는 주장은 또 얼마나 놀라운가. 유학을 알면 알수록 깜짝 놀라게 되었다.” 
 
장님에게 등불을 쥐어 줄 것이 아니라 지팡이를 쥐어주고, 함께 손잡아 걸어줄 배려가 필요할 뿐이다. 
 
-정덕수 (설악신문: 2014. 12. 31자 발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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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profile
    Dr.Spark 2014.12.26 18:36

    정 시인님 말씀대로 정도전의 생각 일부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작가가 몰고 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 ?
    한사정덕수 2015.01.02 10:51
    역시 이번 연기대상 시상식장에서 정현민 작가가 자신의 경력과 위에 소개한 내용들을 이야기하더군요.
    정도전을 연기한 조재현이 대상은 못 받았지만 최우수연기상은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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