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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성의 해녀들은 아는 여자로 일시에 묶여지고, 유일한 해남에게 마음을 빼앗긴

 

 

오빠, 시낭송하는 분 있잖아. 구경영씨인가? 그 분 한 번 보고 싶은데 오빠랑 같이 오면 안 돼?”

울산에 2015225일에 갔을 때 26일 울산에 사는 누이가 전화로 한 말이다. 26일 낮에 구경영씨를 만나 점심식사를 한 뒤 자리를 옮겨 사진촬영을 잠시 하고, 박경하씨에게 부탁을 드려 그의 차로 정자해변에 있는 인문학서재 몽돌에 도착해 막 시작된 행사를 볼 때였다. 통화를 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을 때 마침 구경영씨도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으나 누이동생의 이 말을 즉석에서 전할 수는 없었다.

구경영씨 낭송을 듣는데 소름 끼치더라. 정말 낭송 잘하데.”

오늘은 몽돌에 있는데 행사 끝나고도 사람들과 어울려 뒷풀이도 해서 어려울 거 같아, 그리고 구경영씨도 따로 동행이 있어서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 다음에 경영씨 꼭 내 동생이 보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해서 같이 갈게.”

어제 박경하씨 정말 키도 크지만 예쁘더라.”

같은 여자 입장에서도 질투가 날 정도로 훤칠한 키의 상당한 미인인 경하씨를 동생은 이렇게 첫 만남에 대해 말했다. 울산에 살면서도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살기에 바빠 문화적인 여가생활은 모르고 살던 누이가 130일 울주문화예술회관에 친구들과 함께 오면서 오빠가 소개하고 만드는 동영상을 통해 시노래와 시낭송을 만나니, 그리고 분명 직접 가수와 낭송가들을 만나리라는 걸 알기에 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223일 동영상을 소개한 직후부터 많은 이들이 좋은 평을 했고, 누이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유투브에 올려진 영상으로 스마트폰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들었단다.

 osaekri2015-goo0044.jpg


실력 좋은 낭송가들이 많으나 이와 같이 스튜디오에서 녹음작업을 해 영상으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동호인들간에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을 돌려보는 정도에 그치고, SNS를 통해 일반대중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저작권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엄격해진 지금 노래와 낭송 모두 당사자의 허락을 받고 작업을 하고 공개할 수 있으니, 일반 대중들에겐 말 그대로 높은 장벽 하나로 차단된 특별한 세계나 다름없다.

지명도 높은 시인이나 음악가의 시와 연주곡을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러우니 어찌 외연을 확대할 기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시가 읽히지 않는다고 한탄 할 것이 아니라, 크게 원전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활용은 보장할 필요가 있다. 낭송가들의 활동에 의해, 시노래 가수들의 활동에 의해 시가 세상을 밝히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시가 없는 세상에서 음악이 어찌 만들어지며, 시를 사랑하여 노래하고 낭송하는 이들이 없이 시가 사랑받길 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 남자


윤향미 시, 구경영 낭송


주전마을 지나 우가포에 이르러

잠수복 속에 바닷물 가득 담고 가는

근육질의 남자 만났네

분주하게 유채밭 휘젓고 가길래

무슨 일 났나며 따라갔더니

그 남자 몸 담그던 바다 속에서

낯익은 여자들 몰려나오는 것이었어

바다의 여자 제 뱃속을 비우기 시작하는데

해삼, 멍게, 돌미역, 전복, 성게, 소라, 참골뱅이

참았던 숨 대신 몰아쉬던 여자들

검은 옷 뒤집으며 내게로 몰려와 소리쳤어

너를 데리고 온 저 남자는 바다가 아니야

한 마리의 농어와 여러 마리의 오징어 떼를

바다의 전부였다고 믿진 말았으면 좋겠어

우가포의 그 남자 뭍에 오르지도 못한 채

잠수복에 갇힌 바다를 꺼내

매만지는 것이야, 달래는 것이야,

등 떠밀어 보내는 것이야

나는 바위 뒤에서 그 남자의 심장을 안고 있다가

파도 칠 때를 기다려

그 심장의 지느러미 살며시 바다에 내려놓았어

 osaekri2015-goo0046.jpg


울산에 사는 누이가 두 번째 생일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어머니와 헤어졌다. 그때까지 젖을 떼지 못한 누이는 제대로 된 밥도 먹지 못하며 1년 정도 형과 아버지, 바로 아래 동생과 함께 오색에 있다 형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떠난 뒤 할머니에게 업혀 큰집으로 왔다. 어머니가 떠나고 맞이한 겨울은 혹독했고, 설을 지난 며칠 뒤 형과 함께 종일 걸어 구룡령 아래 갈천에 있는 큰집에 더부살이를 시작했던 일곱 살의 난 누이가 할머니 등에서 내려질 때 막연한 두려움부터 느껴야 했다.

여동생은 그 뒤로 아주 잠깐 집에 와 있었을 뿐, 갈천 큰집과 원통 둘째 큰집으로 양녀처럼 다녀야 했다. 6학년이 되어서야 형제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고, 중학교를 마치던 해 안동여상에 시험을 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집에서 학교를 보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 뒤 내가 있는 서울로 왔다.

그리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모셔 형이 계시는 정선으로 갈 때 31녀가 한 집에 모여 생활한 것이 그나마 우리 형제들의 고단한 생활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나의 불안한 관계까지 엉망이 된 뒤 형제들과도 소식을 끊고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누이를 다시 만난 것은 1993년 늦은 봄이다. 울산에서 생활한다는 누이의 소식을 듣고 당일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 만났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던 동생은 10년 만에 얼굴을 보는 오빠를 위해 사흘 내내 맛난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렸다.

이젠 장성한 아들 둘을 둔 어머니로 살아가는 애틋한 누이가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나에 대한 신뢰가 크다는 것만으로 늘 미안함을 지니고 있다. 누이가 경영씨가 낭송한 그 남자를 받아들이는 감정이 시와 더불어 가난하게 살아가는 초라한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오동은 천년을 묵어도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학자 상촌(象村) 신흠(申欽)野言(야언)’에 나오는 글이다.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면서도 항상 자신의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누이에게 가난할지언정 세상 사람들에게 구차한 모습 보이지 않고 살아가는 오빠의 마음을 전한다.

매화를 의미하는 한사(寒士)를 호로 쓰며 어찌 이 의미를 모르겠는가. 매화는 고난의 추위를 견디고 이겨내는 성품을 지녔다. 의연한 아름다움이 탈속과 고결한 가치로 선비의 세계 첫 자리인 봄에 놓인 것이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치 않고,

버드나무 가지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바로 뒤를 잇는 구절이다.

모름지기 남자란 가난하더라도 힘써 일하며 가족을 위해 일 할 줄 알고, 쉬는 시간엔 끝없이 마음을 맑히울 글을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표정에 여유로움과 위엄이 서리면 어찌 배움이 적다하여 낮추어 볼 것이며, 스스로 겸양하게 행동할 손치더라도 절로 그 기품이 뭇 사람의 가슴을 흔들게 되는 법이다.

우가포의 그 남자인 해남(海男) 또한 그와 같기에 우연히 바닷가로 나간 여인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일순간 가슴속으로 들어왔으리라. 윤향미 시인의 시 그 남자에선 동질성을 지닌 해녀들은 아는 여자로 일시에 묶여지고, 유일한 해남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여자가 오독하니 서서 다른 이의 시선은 신경도 쓸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든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일순간 나는 바위 뒤에서 그 남자의 심장을 안고 있다가로 표현되어질 대상이 시인에게 깊이 내재되어 있었고, 물질을 마치고 바위로 올라 온 해남을 통해 전율스럽게 되살려 졌다는 이야기가 되겠는데, 해남의 행동이나 얼굴에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품이나 절대적 숭고함이 없고서야 어려운 일이다.

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이렇듯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같은 시를 낭송하더라도 낭송가가 지닌 경험치에 의해 진폭이 다르게 나타나고 전달된다. 전혀 다른 음색으로 시가 지닌 이미지에 충실한 낭송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이렇게 즐겁다. 이 내용을 과연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낭송가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몰래 감추어 두고 살아가야 할 어떤 대상을 물질하는 사내를 통해 떠 올린 시인의 가뿐 숨결을 절절하게 풀어 놓으려면 그와 같은 상태로 감정을 옮겨놓아야 할 일이다. 그런 까닭에 이제껏 많은 낭송가들의 낭송을 들으며 거의 모든 시들을 담담한 어조로 낭송하는 걸 수없이 보았기에, 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호흡을 맞출 낭송이길 바랬다.

들어 본 소감을 말하라면 역시, 대단하다!”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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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4'
  • profile
    박순백 2015.03.25 11:05

    오... 뒤늦게 이 글을 보았는데

    누이에 대한 말씀은 지금껏 없으셔서 전혀 그 존재를 몰랐었습니다.

    이 글에 담긴 누이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감정이입으로 받아들여 눈물이 날 뻔...ㅜ.ㅜ

    아... 그렇게 가슴에 담고 산 얘기가 아직도...

    꺼내지 못 한 아픔들이 아직도...

    그게 정 선생님의 시심의 발로일 거란 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게 아련한 슬픔들이었고,

    그게 이제야 조금씩 사랑으로 치유되고, 회복되고,

    새롭게 채색되는 걸 봅니다.

    누이의 오빠에 대한 믿음이야 오빠의 누이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참으로 가슴이 싸아해지는군요.

  • profile
    정덕수 2015.03.26 12:54

    최근 울산에서 시노래와 시이야기로 행사가 연속으로 있어가다보니 자연히 누이동생도 자주 보게되었습니다.
    두번째 울산행부터는 박경하씨가 제 누이 가게에 들려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 잔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누이 이야기가 나왔고, 이번엔 누이가 보고 싶다고 한 구경영 낭송가도 누이가게엘 왔습니다.
    같은 울산 권역에 살더라도 인연되기 어려운 이들이 누이 가게엘 편하게 들리게 되니 누이도 좋아하더군요.
    그 덕에 저도 자주 볼 수 없던 누이를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다가 이렇게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 profile
    박순백 2015.03.27 09:32
    저도 울산 누이를 보러 가고 싶습니다.^^
    언제 기회를 보아 저와 둘이 2인승 차로 울산 한 번 달녀내려 가시지요.
    그 대견한 삶을 살아온 멋진 누이를 만나게 해주세요.^^
  • profile
    정덕수 2015.04.02 04:45
    네 박사님.
    가까운 시일내에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울산 누이가 크게 놀라기는 하겠지만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할 겁니다.
    더불어 울산의 제 지인들도 모두 박사님을 환영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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