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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지닌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되는 시()일 때 비로소 제 곡조(曲調)의 가락을 지니고

 

 

노래를 듣다.

과연 이 노래를 듣는다는 행위에 대해 바르게 표현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확고한 신념을 지닌 표현은 없을까? 무한하게 전개될 수 있으며, 확연하게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표현방식은 반복적인 몽상에 의해 가능하다. 몽상가가 막연히 부드럽고 달콤한 이미지들로만 채워진 공간에 안주한다면 기묘한 깊이의 확신을 제공할 수는 없다.

반복적인 학습을 통한 지속적인 탐구가 몽상을 통해 드러난 이미지들을 확고한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노래를 듣다는 노래를 부르는 이의 음색이나 감정은 물론이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무의식까지 이해한다로 전개 가능하다.

노래란 텍스트로 형상화 된 도처에 산재한 물질들의 집합체를 새로운 빛의 매혹적인 마취제로 감정의 증폭과 진정을 자유자재로 시키는 처방이다. 진달래 핀 동산에서 술꾼은 알싸하게 피어오르는 진달래꽃술을 먼저 그리겠다. 미각적인 감각에 치중하는 이라면 찹쌀반죽 한 수저 뜨겁게 달군 불판에 올리고 꽃 한 송이 곱게 올려 부쳐낸 화전 먼저 그리겠고, 이리 자신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같은 대상에도 각각의 색을 입히고 감정을 대입시킨다.

생명을 지닌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되는 시()일 때 비로소 제 곡조(曲調)의 가락을 지니고 결정적인 아름다움으로 빛을 낸다. 독창성이란 것도 생명을 지닌 경험에서 우러난 고유의 언어세계고, 노래 또한 살아 퍼덕거리기에 구태여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공감하고, 한 방향으로 볼 시선(視線)이 된다.


봄 여울

 

봄 여울은 바람에 몸을 맡겨

물풍금 잔잔하게

무늬를 그려내고 있을 때

육탈된 숲 가득 온기가 스며든다

누가 계절의 오고감을 안다했던가

저 홀로 오건만 반갑다 마중하는 이 없고

바람만 몸 푼 봄 여울 물풍금 치는데

살며시 물결에 몸 맡기는 몇 그루 나무

부둥켜안고 여전히 멈출 줄 모르는 걸

지켜보고야 알아차렸어 봄을

그렇게 잉태하고 있다는 걸

봄 여울이 바람에 몸을 맡겨

물풍금 치는 속내를

 

인연의 오고감을 누가 안다했던가

오고 가고, 가고 오건만 부질없어라

바람만 몸 푼 봄 여울 물풍금 치는데

살며시 물결에 몸 맡기는 몇 그루 나무

부둥켜안고 여전히 멈출 줄 모르는 걸

지켜보고야 알아차렸어 봄을

그렇게 잉태하고 있다는 걸

봄 여울이 바람에 몸을 맡겨

물풍금 치는 속내를

 osaekri2015-at0054.jpg


발자크는 배의 관능적인 동요는 영혼 속을 떠도는 사고를 어렴풋이 모방하고 있다골짜기의 백합에서 감정의 형태를 말하고 있다. 물의 이미지를 그려낼 때 자연스럽게 귀결되어지는 대상은 다양하나 ()’라는 장치는 유용하다. 발자크는 물결에 흔들리는 모습을 관능적인 동요로 대입시킨다. 이렇게 환치시킨 이미지는 다시금 영혼 속을 떠도는 사고로 전개시켜 확장성을 한 없이 넓은 범위로 가능토록 해 놓았다.

가스똥 바슐라르는 그의 시론 물과 꿈을 통해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어떤 물질적 원소, 어떤 자연스런 힘에 결부되는 모든 꿈과 몽상이 그렇듯이, ‘흔들리는몽상과 꿈은 증대된다. 이러한 것들 뒤로 다른 꿈들이 찾아와, 기이한 부드러움의 인상을 계속 줄 것이다. 그것들은 무한한 행복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구름 위를 노 저어 가고, 하늘 속을 헤엄쳐가는 것을 배우는 것은, 물가나 물 위에서다.”

 kyeong-ha bak2015-a1198.jpg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이리 끌어와 동행시키기엔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기막힌 감정표현에 감동했겠으나, 온전히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한 요구라 생각된다.

골짜기의 백합 내용은, 다정다감한 청년 귀족인 펠릭스가 우연하게 아름다운 백작 부인인 앙리에트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앙리에트는 왕실 귀족 출신이다. 그녀는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은 정숙한 여인으로 유부녀다. 펠릭스는 앙리에트를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지만, 앙리에트는 그 사랑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록 육체적 사랑은 거절했으나, 사랑하는 마음까지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앙리에트 쪽에서 더 열렬한 감정으로 펠릭스를 사랑했다. 육체적 사랑을 하지 않았을 뿐 그녀가 펠릭스에게 준 것은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폭넓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기회, 처세 및 그 밖의 온갖 면에서의 원조였다. 앙리에트의 그러한 지원을 받음으로 해서 펠릭스는 파리 사교계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되고 다른 연인도 생기게 되었다. 다른 연인을 만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펠릭스는은 한시도 앙리에트에게서 떠나는 일이 없었다. 이는 앙리에트 또한 마찬가지다.

두 사람 사이에 서로 교환되는 대화나 눈짓만으로 그들의 가슴에 품은 연심을 주변이 눈치 못챌 일은 아니었겠으나, 발자크가 골짜기의 백합을 쓸 당시 소설과 같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던 베르니 부인과의 이야기가 그대로 투영되었기에 복선을 깔지는 않았겠다.

앙리에트 부인은 돈도 정성도 마음도 모두 바쳐 사랑했으나 육체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앙리에트의 죽음으로 종말을 고한다. 죽음을 앞둔 앙리에트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펠릭스에게 자신의 사랑이 위선이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실은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인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백한 것이다.

왜 당신은 밤중에 나를 습격하지 않았던가요? 아아사랑을 모르고 죽어야 하다니! 그 화려하기 짝이 없는 사랑을 모르고 죽다니! 황홀한 가운데 영혼을 하늘에까지 이끌고 가는 사랑!”

물과 바람, 그리고 봄이라는 각기 다른 형태들이 한 곳에 모여 풍경이 된다. 여기에 사람의 감성이 자리하여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으니, 해량할 길 없는 무궁한 세계로 상상의 돛이 부풀려진 배가 된다.

지리산 시인으로 불리는 이원규 시인에 대해 만난 적도 없으니 안다고 할 일도 아니다. 이원규 시인이 어떤 인품인가에 대해서는 시노래 가수 박경하 씨를 통해 들은 게 전부고, 산지에서 본 글이 전부다. 산지에 기고했던 글 한 편 중 일부를 여기 소개하는 것으로 말로만 들었던 이원규 시인의 모습을 엿본다.


담배를 끊고 여자만 붉은 노을 바라보다

세상 각박해도 둘러보면 아름다운 사람 있어 아직 살 만해

새해를 맞이하며 마침내 담배를 끊었다. 실로 30년 만의 일이다. 경북 문경의 산촌 하내리 출신이라 술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웠지만, 담배는 스물세 살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홍성광업소 막장 후반부로 일할 때 지하 700m에서 8시간씩 삽질을 하다가 막간에 한 대씩 피우다 보니 어느새 인이 박히고 말았다.

한때 젊은 시인으로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참 멋지다는 뭇 처녀들의 아주 훈훈한 시선을 받던 시절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추억도 옛말이니 결국 끊기로 했다. 사실 건강을 챙기려는 마음보다 멸시의 눈초리들에 굴복해 끊는 셈이다. 그동안 2,500원짜리 보헴시가 1mg(BOHEM CIGAR NO.1)을 피웠다. 그런데 새해 들어 세금이 1,550원에서 무려 3,318원으로 올랐다. 하루 한 갑이면 1년에 121만원이다. 연봉 4,745만 원을 받거나, 9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 내는 세금과 맞먹는다.

그런데 내 연봉은 1,000만 원도 되지 않고, 집도 없으니 감히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10년 동안의 도보순례길에서 얻은 면역성 결핍으로 결핵성 늑막염 판정을 받고 1년 동안 그 독한 약들을 먹으면서도 끊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담뱃값 인상을 핑계 삼아 두 눈 딱 감고 끊기로 한 것이다. 아마도 천하의 끽연가였던 공초 오상순 시인도 살아계셨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위해 보는 것이다.

그래도 30여 년 동안의 끽연자로서 담배에게 감사의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담배는 내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친구였다. 밤늦게 졸시를 쓰다 잘 안 풀릴 때, 산중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를 찍으려고 한없이 기다릴 때, 모터사이클을 타고 먼 길을 달리다가 잠시 멈춰 쉴 때, 멋진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술을 마실 때에는 위안과 소통,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는 멋진 구름과자가 아니었던가.

홍성광업소 지하 700m의 갱도 속에 웅크려 다이너마이트 폭발을 기다리며 휴우, 빨아들이고 내뿜었던 연기들. 비록 어둠 속에서 담뱃불, 그 붉은 여의주를 물고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용은 아니었지만 그 무의식의 지층은 한없이 넓고도 깊었다. 만약 내 인생에 담배가 없었다면 자주 폭행사건 등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나쁜 관계의 살얼음판에서도 담배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면 그나마 마음이 착 가라앉지 않았던가. 나도 모르게 움켜쥔 주먹에 스르르 힘이 빠지곤 했다.

그리하여 그동안 사랑했던, 언제나 애용했던 담배에게 마지막 예의를 갖췄다. 201412311155분에 마지막 담배 다섯 개비의 다비식을 치렀다. 그리고 그동안 사랑했던 만큼 가장 아름답게 찍어보고 싶었다. 금단현상을 어떻게 이겨낼지 나도 나를 잘 못 믿겠으니 이런 형식의 무슨 맹세 같은 것을 한 것이다. 새해 아침을 맞으며 그 어떤 계획보다 더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kyeong-ha bak2015-a1200.jpg


사진촬영에 시를 벗하며 지리산 자락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모습이나, 시가 아닌 글을 쓴다는 사실부터 닮아도 참으로 많이 닮았다. 그뿐이랴 지역은 어차피 설악산과 지리산만큼이나 다르지만 그도 탄광 막장에서 을 경험한 것까지거기에 박경하라는 가수까지 안다는 사실에 이젠 조금 궁금증도 생겼다.


동행


밤마다

이 산 저 산

울음의 그네를 타는


소쩍새 한 마리


섬진강변 외딴집

백살 먹은 먹감나무를 찾아왔다


저도 외롭긴 외로웠을 것이다


 

이원규 시인의 시 동행에 백창우 선생께서 곡을 붙이고, 정은주 연주가가 편곡을 해 박경하 가수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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