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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2015.02.20 18:19

시와 더불어 나누는 차(茶)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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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땅의 향기를 풍기며 봄비가 오기 시작하면 불현 듯 남도 땅으로 마음이 먼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차향(茶香)이 우러나면 그는 나에게 만큼은 기분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필시 멋과 여유를 아는 사람으로 항상 청아한 품격을 갖추고 지인을 편안하게 배려하는 이일 것이다. 이것은 어느 종류의 차를 막론하고 다 통용되어지는 것은 아니며 커피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인스턴트 화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두를 직접 갈아 차를 내는 사람이라면 그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오랜 숙련을 거쳐야 제대로 차를 우릴 줄 알 게 되는 엽차(葉茶)를 즐기는 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풋풋한 땅의 향기를 풍기며 봄비가 오기 시작하면 불현 듯 남도 땅으로 마음이 먼저 훨훨 달려가는 까닭이 바로 이 말갛게 돋아나는 여린 작설(雀舌)을 해를 넘겨 기다린 까닭이다. 생장조건이 비교적 까다로워 남도지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에만 그 존재를 알리는 품성으로 더욱 그리움에 애 타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햇차가 나온지 해를 넘기기는 하였으나 적당히 질 좋은 차를 만나는 일이 어려지 않지만, 우전차가 나오기 시작하는 4월이 멀지 않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의 시작인 1월을 맞고 보내는 맛이 그만큼 살가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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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이야기 하려면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나 다산(茶山)선생의 동다기(東茶記), 초의(艸依)의 동다송(東茶頌) 정도는 완독하여야 마땅하다 할 것이나 차생활을 가까이 하고 즐김에 있어서 곁들여 함께 할 시작(詩作)이나마 있으니 간간히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성급하게 차를 이야기함을 크게 탓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오랜 세월을 공들여 차를 연구한 이들에게는 우스운 일일 수 있겠으나 차를 즐기는 것을 그대들만의 품격 높은 멋 부림 쯤으로 생각한다면 단호하게 나는 ‘어찌 차를 한다는 사람으로서 그리 척박한 품성을 지녔느냐?’고 이야기 하겠다. 일부 어느 한 분야에 있어, 많은 공부를 한 이들 중에 그 문화를 자신들만의 전유물인양 주변에 불편을 끼칠 정도로 이야기를 하고 독점하려 하는데, 최소한 그 분야에 전문인이고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면 주위에 널리 알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참 된 도리가 아닌가. 

차를 마시고 즐기는 일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거늘 굳이 ‘차를 한다.’라고 못을 박고 그 틀에서 끼리문화를 구축하는 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때로는 불쾌한 감도 없지 않으나, 일부 그런 이들의 선의 적 활동으로 이만큼 차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고, 보다 풍부한 차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점도 있음은 부인하지 않겠다. 한동안 인사동 길목의 찻집들을 순례라도 하듯 매일 거치곤 하던 때도 있었으나, 어느 사이인가 대부분의 찻집들이 인간적인 맛이 적어지고 각박하게 변모하여가는 모습을 느끼게 되면서 그것도 아예 접었다.

몇 죽 다기를 준비하여 홀로 즐기는 맛을 길들여 마음 내키고 손 닿는 방향대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지금의 이 여유가 오히려 안정되어 좋기만 하다. 
어차피 그만그만한 이야기 이쯤에서 접어 한쪽에 묻어 두고 보다 많은 시간 뒤에 진각국사니 초의선사, 도은(陶隱), 목은(牧隱), 포은(圃隱) 등 삼은(三隱) 등의 차인(茶人)들의 이야기나 차의 역사, 우리나라의 차의 역사 정도는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저 차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즐거운 이야기 하나 풀어 놓기로 하겠다. 
 
많은 이들이 차에 관한 시를 남겨 놓았고 지금도 차에 관한 시들이 쓰이고 있는데 그 시들을 살펴보는 맛이 마치 좋은 차 한 잔 마시는 느낌이다. 싱그러운 봄바람 불고 제법 실록이 푸른 계절, 얼마간의 시간을 내어 조금은 여유로운 듯 한가로운 듯 찻상을 차려놓고 들판이 환히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정좌하여 보라. 그 때 비로써 차의 맛이 느껴지고 누구라도 차를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같이 시원한 바람이 그립고 너나없이 물 좋고 바람 시월한 곳을 찾아 떠나는 때라면 다기 한 죽 챙겨 찾아 간 그 당의 풍취를 담은 차를 즐겨 봄도 그윽한 향을 더 할 수 있을 테고, 바람  차갑고 눈이 적막강산으로 쌓인 산 중이라도, 화로에 솔방울이라도 주어다 지펴 찻물을 덥히며 눈 덮인 청송을 바라보는 멋도 높은 품격이 아니겠는가. 이런 정경 스스로 만들어 즐길 줄 알게 되면 절로 시가 익어 가리라.

포은 선생께서 일찍이 주역에 능통하셨던 듯 다음과 같은 시 한 수 남겨 놓으셨는데, 이 시를 보노라면 마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한 가지씩 천지간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자연을 왜 스스로(自) 그러할(然)이라고 하였는지를 알아가는 이치와 같이 그 쓰임을 용처를 깨우쳐 가는 모습에서 연륜의 깊이를 배울 수 있으니, 사는 모양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씩 세상을 살피는 자연의 천리(天理)를 깨우치고 겸허하여져 가는가 보다.
포은(圃隱 鄭夢周 1337~1392)선생은 고려의 충신으로 일반적으로 단심가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으나, 성리학에 뛰어났으며 동방이학의 시조로 추앙받고 조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쳐온 유학을 주자학에 기초를 두어 고려 말에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진흥한 역사적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일반적인 다인으로써의 면모는 선생의 많은 시를 엮은 포은집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으며, 유교적 다례에 대한 풍습을 당시의 생활에 접목시켰다고 전한다.
주역을 즐겨 읽으며, 당시까지 국교로 우위에 있던 불교와 비교하여 삼봉 정도전이 끝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하신 포은 선생은 삼은 중의 한 분인 도은 이숭인과 삼봉 정도전과 함께 같은 스승을 두고 있다는 점도 이채로운 면일 수 있겠으나 역사 속의 일은 나중에 별도로 이야기를 하고 여기 그 분의 충직함과 차를 기는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시 한 수를 더 보기로 하자.  
 
나라에 보답할 아무 힘없는 늙은 서생이 
차 마시는 버릇이 들어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네. 
그윽한 집에 홀로 누운 눈보라 치는 밤 
돌솥의 솔바람 소리를 즐겨 듣나니  
 
―돌솥에 차를 끓이며(石鼎煎茶) 

기나긴 겨울밤이 그나마 청솔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라도 없었다면 더 삭막하였으리라.
근래 차인들이 찾은 옛 기록 중의 하나로 돌솥에 끓인 찻물은 그 기운이 자연을 그대로 닮아 마시는 이에게 이롭다고 하는데, 가만 생각하여 보아도 천지간에 가장 좋은 질서란 바로 자연 그대로의 품성을 지니고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기에서도 엿 볼 수 있다.
결국 차를 마시는 좋은 방법은 자연스러움이란 이야기다.
요즈음 찻집이 많은 인사동 골목에 들어가 보면 ‘솔바람차’가 있기는 하던데 과연 그 포은 선생께서 홀로 누워 돌솥에 찻물을 끓이며 듣던 솔바람 소리가 들릴까?  
 
누군가 지난날 우리민족의 모든 생활방법이 남자들만의 편리를 위한 것이고 그들만의 문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수합 서씨(令壽閤 徐氏)나 유한당 홍씨(幽閑堂 洪氏), 정조대왕의 딸인 숙선옹주(淑善翁主)와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같은 분들이 남기신 많은 시들을 통하여 여자들이라 하여도 때에 따라서는 좋은 교육을 받고 그만큼의 품격 높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살필 수 있다.
그 분들의 기록에서 남자들처럼 초명이라던가. 자, 아호 등의 이름이 없음을 보게 되니 얼마간은 당시의 여성들의 위치를 대변하는가 싶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남녀평등주의가 가장 잘 정착되어 있다는 서구에서도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상태다. 그에 비하여 끝까지 자신의 성씨를 지니고 있으며, 어느 부인으로 통할 때도 자신의 성씨로 불리는 점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진보적인 문화를 지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교적 여류 차인들은 많은 시를 남겨놓았는데 이로써 그들이 역사 속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아니한 여류 차인들 또한 많았으리라 생각 되나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문헌이나 사료로써 남겨진 것이 없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여류 차인들의 시의 세계에 들어오기를 바라며 다음 이야기는 여류 차인들의 시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며 오늘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정덕수 199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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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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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백 2015.02.20 21:41

    차, 저는 80년대 초 대만의 문화대학 교수인 임추산 박사(대만 국회의원도 지낸 분)와 홍콩 극동대학(Far East College) 라이 카 츄(Lai Kar Chiu) 총장 께서 한국에 오실 때마다 제게 우롱차를 선물로 주시는 바람에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이후 우리 집의 물은 우롱차를 우린 물이었죠. 가끔 그 때문에 제가 살이 안 찐 거라는 생각도 하는데...^^


    그러다 녹차도 마시고, 커피도 곁들여 마시고, 요즘은 오래 전부터 차 생활을 하는 도예가 동생 덕분에 가끔 말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합니다. 차를 우려 마시다마시다 그걸로도 모자라 아주 차를 갈아마시는 말차가 가장 화끈한 다도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초당에 오는 손님들에게 가끔 커피와 함께 말차를 대접하기도 하는데, 이 분들이 말차를 마시고 나면 그간 마신 차에 대한 생각들이 다 reset이 된다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언제 정 시인님과 마주하고 말차를 제가 만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오시면 무조건 제게 연락을 하시고 방이동에 한 번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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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덕수 2015.02.21 08:12
    맞습니다. 오래전 신촌으로 기억되는데 박순관 선생님의 도예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박순관 선생님께서는 말차를 오시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벽화를 보는듯 한 착각을 할 정도로 근사한 대형접시에 음식을 담아 내시는데 그 접시 모두가 박순관 선생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품을 생활용기로 사용하셨던 것이죠.

    중작은 다소 거칠어 잎을 먹기엔 무리가 있으나 우전과 첫물차인 세작은 차를 우려 마시고 남은 찻잎을 나물로 무치거나 밥을 지어 먹는데 그 맛이 참으로 근사합니다. 이때 밥을 지으며 말차를 조금 넣고 소금을 약간 넣으면 밥맛이 환상적인데 건강식으로 이만한 밥도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분 박사님의 근황 요즘 페이스북을 통해 늘 만나고 있습니다. 스키 시즌이 끝나면 말씀 드린 시노래 음반 들고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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