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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애의 Naver 블로그 "디카로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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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준비 과정 및 문화유산 탐방기
    9월 19일
    9월 20일 : 1-1. 불굴사
                     참조  1) 불굴사
                           2) 불굴사 삼층석탑
                           3) 불굴사 석조입불상 [佛窟寺石造立佛像]
                1-2. 환성사
                     참조 1) 환성사
                          1) 환성사 대웅전
                          2) 환성사 심검당

    9월 21일 : 1-3. 임당고분군
                     참조 1) 임당고분군
               1-4. 한 장군 묘지
                     참조 1) 한 장군 묘지

2. 여정을 마치고...

. 준비 과정 및 문화유산 탐방기

9월 19일 - 집에 내려가면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에 대한 리포터의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 '경산' 이라는 곳이 그리 유명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지 경산을 옛 우리 조상들은 세명의 성인이 태어났다고 해서 '삼성현'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세 명의 성인이란 일연, 원효, 설총을 일컸는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배경지식이었다. 처음 경산시청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문화재를 모아둔 곳을 찾았고,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가장 흥미있는 곳을 몇 곳을 찾기로 했다.





9월 20일 - 첫 번째 간 곳은 불굴사이다. 경산역(집 근처에 있음)에서 3시간을 운전해서 불굴사에 도착했다. 초행길이고 추석 전날이라서 차가 많이 막혔으며 불굴사에 올라가는 길이 상당히 험했다. 경사가 아마 30도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오랜만에 산의 공기를 마시니 몸에 있는 나쁜 기운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시원한 물로 목을 채우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첨에 눈에 띠인 것은 삼층석탑이었다. 시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힘들지만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히 자연속에 놓여진 석탑. 내가 본 석탑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석탑 속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석탑 옆에 있는 절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온 몸에서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인 즉 법당 안에는 부처님이 계셨다. 단순히 우리가 절간에서 자주 보는 부처님이 아니라 돌로 된 부처님이 있었다. 첨에 불굴사를 찾을 때 단순히 삼층석탑만 보고 왔다. 마치 불굴사의 전부가 삼층 석탑인냥 찾아온 난 사전답사가 이리도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 사실 절 안에 사진을 찍는 것은 스님에게 허락을 받은 뒤에 하는 것이라고 들었지만 자비로운 부처님이 이번 한번만은 용서해주실 것은 느낌이 들었다. 절밖을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산위에 있는 하얀 무엇인가가 보였다. 무작정 산위로 다시 올라갔다. 그 곳에는 내 키의 5배정도가 되는 하얀 부처님이 있었다. 문화재라고 보기는 힘드나 아마 최근에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아직 역사의 때가 묻지 않은 부처님 - 하지만 저 부처님도 시간이 지나 먼 후세에 하나의 유적물로 남을 것 같아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굴은 철문으로 막아두어서 그 안에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단지 멀 발치에서 보이는 작은 굴을 보면서 뒤를 돌아서야만 했다. 다시 절로 내려와서 보니 조금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스님과 시주하러 오신 여자분이 있었다. 추석전날이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셔서 많은 것을 물어보지 못했지만, 우기때 정말 석불의 몸에 습기가 가득한지에 대한 물음에 스님은 수건을 밑에다 깔아 놓는다는 이야기만 전하지 실제 그러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하셨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스님몸밖에서 나는 따뜻한 향내음에 취해 돌아가기 싫은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다음 행선지인 환성사로 향했다.



1) 불굴사 ( 첨 부 )  

불굴사(일명 '팔굴사') : 와촌면 강학리에 있는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창건한 것으로 흥성기에는 50여 동의 와가(瓦家) 12개의 부속암자, 8대의 물방아를 갖춘 대사찰이었다고 전해온다. 화광당 한옥희대사가 주석할 때 옥천암, 천성암, 청룡암 등 산내외 12군데 암자가 있었다. 조선조 중기만 하더라도 500동의 건물과 12암자, 8대의 물래방아를 갖춘 큰 사찰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에 의해 법당과 요사가 불타버린 뒤 여러차례 중창 불사를 펼쳤으나 중수 관계는 잘 아려지지 않고 있다. 거기다 영조 12년(1736) 병진 대홍수로 불굴사의 사찰이 거의 대파되었으나,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이 현몽(現夢)을 받아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또한 불굴사의 어원은 자연으로 이루어진 석굴 안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경내에는 보물 제429호로 지정된 불굴사 3층석탑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약사여래입상 부도 등이 있으며, 원효대사가 수도한 석굴이라 전하는 굴이 있는데 이를 '원효굴',불암(佛庵) 또는 중악석굴이라 부른다. 원효굴 안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신라 김유신 장군이 이 물을 마시면서 삼국통일의 염원을 기도하여 천신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받았다는 굴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불굴사 주변 일대에 우기가 있으면 불상의 얼굴부분에 땀이 나고 특히 큰 비가 오기 전에는 불상의 온몸이 흠뻑 젖는다고 한다. 지금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거나 하면 반드시 석불의 몸에 습기가 가득 찬다고 한다.



2) 불굴사 삼층석탑  

높이 7.43m로 ,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올린 형식으로 신라석탑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넓고 긴 돌로 탑의 구역을 마련하고, 바닥돌은 사방으로 하나씩 4장의 돌을 붙여서 짰다. 아래층 기단의 맨윗돌은 꽤 두꺼운 편이며, 돌의 가운데에 2단의 괴임돌을 두었다. 위층 기단의 가운데돌에는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을 새겼으며, 맨윗돌은 얇지만 그 아래에 윗돌과 반듯하게 한 단을 붙여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들을 각각 하나의 돌로 짰는데,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모두 4단씩으로 줄어들었고 추녀밑은 반듯하지만 마무리 부분에서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 역시 완만한 경사를 보이다가 마무리부분에서의 치켜올림이 상당히 크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있다. 돌의 마무리에서 정연함을 보이고 있어 탑 전체적으로 뚜렷한 비례가 돋보이는 탑이다. 그러나 탑의 규모가 작아진 점이나, 지붕돌의 치켜올림이 지나치게 큰 점, 각 부분의 밑에 새긴 괴임돌의 표현을 강조한 점 등에서 형식적인 면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 통일신라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시기의 탑으로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3) 불굴사 석조입불상 [佛窟寺石造立佛像]  

2001년 4월 30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401호로 지정되었다.

불굴사의 석조입불상은 조선 영조 때 사찰이 파괴되어 흙속에 묻혔다가 송광사의 승려가 불굴사를 재건할 때 꿈속에서 보고 발굴한 불상이라 전해지며 최근 법당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이 불상은 전체높이 233㎝, 어깨폭 75㎝, 머리높이 53㎝이다. 땅 위에 있는 화강암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운 형태이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단은 네모난 형태이며 각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고, 윗단은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다.

서 있는 모습의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머리부분이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어 있다. 머리에는 굵고 둥근 육계가 솟아 있고, 머리모양은 민머리 형태이나 얼굴과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지었다. 얼굴의 눈·코·입·귀는 훼손되어 큼직한 얼굴에 맞게 다시 새겼고, 굵은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다. 양어깨에 걸쳐 입은 법의(法衣)는 길게 발목까지 덮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도 옷주름이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목 아래쪽과 머리쪽에 큰 구멍이 있어 광배(光背)를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앞으로 향한 모습이고 왼손은 없어져서 수리하여 보주를 들고 있다.





두 번째 간 곳은 환성사이다. 불굴사에서 환성사로 들어가는 길은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구불구불한 곳을 계속 올라가다 보인 곳. 이 곳은 절이라는 이미지보다 주민들과 함께 숨을 쉬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큼 했다. 시골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일단 절 앞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다 보니 사람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돌탑이 있었다. 소원을 빌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정성들여 쌓아놓은 돌들을 보면서 나도 그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올리고 절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불과 100m도 되지 않지만 작은 관심속에 놓여진 음식물이 보였다. 절이라는 곳이 인간의 맘을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이곳에서 안식을 찾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과거 절이라는 곳은 속세와 불리 되어진 것으로만 여겼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절에 올라서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개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릴 때 개에게 물린 적이 있던 나는 절간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그 앞에 계신 스님에게 개를 치워달라고 하니 이 개는 사람을 물어본 적이 없는 개라며 오히려 나에게 사내자식이 개를 무서워 하냐며 핀잔만 들었다. 환성사에서 불굴사와 다르게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절전체가 하나의 가옥처럼 옹기종기 붙어 있어서 나름대로의 묘미가 느껴졌다. 나는 우연히 그 곳에 오신 두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은 한옥을 짓는 분들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법당의 구조나 이 곳의 역사적으로 이 법당의 중요한 양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 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분들은 여러 문화재를 통해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그 문화재를 지키려는 사람인데 비해서 나는 단지 리포터를 쓰기 위해서 여기에 온 내 자신이 정말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것을 얻었고 그 분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절을 마치고 환성사 절을 나섰다. 그 분들은 매년 겨울마다 이 곳을 찾아오신다고 하던데 올 겨울에 꼭 다시 한번 뵙고 싶다. 눈 덮인 환성사를 생각하며 맨 처음 올라왔던 길에 놓은 돌탑에다 작은 돌 하나를 다시 하나 올렸다.



1) 환성사 ( 첨 부 )



환성사는 신라 흥덕왕 10년(835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으나, 고려말에 불타고 조선 인조 13년에 신감대사가 증수하였고 광무원년에 긍월대사가 다시 고친 후 1973년에 해체 보수하였다. 이 절이 불탄 사연은 다음과 같다. 절이 날로 번창하여 수백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밥을 해대기도 힘든 터에 이 절에서 대선사가 나 기념으로 일주문을 세우고 대웅전 앞에 연못을 파 수월관이라 했다( 환성사에서는 우선 커다란 네 개의 돌기둥이 눈에 띈다. 일주문의 기둥으로 일주문은 보통 2개의 기둥만으로 건설하는데, 이 환성사의 일주문 기둥은 예를 찾기 드문 특이한 것이다.) 하며 만약 이 못을 메우면 절이 쇄락 할것이라 예언했다한다. 그 후 이절에 게으른 노주지승이 오게 되었는데,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겨 어느 거지객승의 말을 듣고 연못을 메우니, 다 메우자마자 절에 불이나 절이 불에 타버리고 그후 찾아드는 신도도 없고 절도 쇄락하게 되었다 한다.



2) 환성사 대웅전

보물 제 562호로 지정된 경산시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고려 말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인조 3년(1635)에 중창, 광무원년인 1897년에 삼창한 건물이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고려말 내지 조선 초기의 건축양식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그 규모는 8칸 2줄배기로 웅장하고, 전면은 자연석 축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배흘림이 강하고 인쏠림을 두었으며 귀 기둥을 높여 귀속음이 뚜렷하다. 약 1.6m 높이의 석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장광이 맞먹은 평면을 이루고 약간 배흘림이 있는 높지 않은 기둥을 사용하였다. 어간, 협간의 간살이 모두 같은데, 4개의 우주상에는 현저한 귀솟음이 있으며 기둥높이와 간 길이에 비해 많은 포를 가진 처마의 높이는 높고 또 길다. 정면 5칸 모두 정자 살 분합으로 개방되고 측면은 처음 간에만 좌우대칭으로 외짝 정자살이 있으며 후측은 어간과 좌우 협간에 정자살 분합과 판문을 달았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로 후방에서 한칸 격간으로 3간통의 불단을 안치하였고, 4개의 높은 기둥이 일자로 불상의 뒷벽을 이룬다. 기둥머리에 평방, 창방이 있고 기둥 중간, 기둥머링 위에 각 1개, 각 기둥 사이에 1조씩의 공포를 짜올리고 외삼출목 5포, 내사출목 7포로 하였으며, 첨차마 구리는 사절되고 우설은 방두앙설이다. 곧 공포는 외출삼목, 내출삼목을 두었으며, 쇠서는 앙서형으로 비교적 강직하다. 고오 내부의 제공, 첨차는 모두 교두형으로 조각 되었다. 포간은 벽체로 하고 연, 보상화문을 장식하고 내포 제 4 출목상에서 대량 위로 충량을 걸고, 출목 위에는 각간 1매씩의 방형화반을 얹고 충량 위로 우물반자를 올렸다.



3) 부속건물인 심검당

1975년 12월 30일 지방유형문화재 84호로 지정되었다. 그 밖의 이 사찰에 부속된 건물로는 명부전, 수월관과 대웅전뒷산록 8부 능서에 위치한 성전암이 있다.





9월 21일 - 세 번째로 간 곳은 임당고분군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옛 말이 있듯이 이 곳을 찾는데 40분정도 걸렸다. 처음 이 곳을 도착했을 때 여기가 쓰레기 투척장소인지 아님 태풍으로 인해 쓰레기가 여기로 다 오게 되었는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말 그대로 난지도였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이 곳을 유심히 봐라 보았다. 무덤 같게 생겼으나 무덤의 형태가 너무 이상하게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무덤이라면 크기의 차이는 있겠으나 두개의 무덤이 붙어있는 형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형태가 옛 시대를 보존한 것인지 인위적으로 그렇게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두개의 무덤이 붙어 있는 곳에는 작은 길이 있는 걸로 보아선 최근에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한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도굴을 한 흔적인지 아니면 그 속에 들어있던 유물을 들어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는 건지 의하한 마음이 생겼다. 사실 임당고분군 근처에는 빌라 및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관리소흘이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어머니와 함께 뒤를 돌아섰다.



참조 1) 임당고분군

삼한시대 부족국가의 일국이였던 압독국이 자리했던 경산은 당시 부족장 또는 지배자(王)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고분이 임당동과 인근 조영동일대에 산재해 있다. 1983년 국가문화재 사적 제300호로 지정보존되고 있으며, 1982년 6월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차조사 발굴을 하였고, 1987년 2차조사 발굴한 결과 약 5,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금동관 2개, 금귀고리, 모자 장식품, 은허리띠, 곡옥목걸이, 금동신발 장신구, 각종 마구류, 토기류등 이다. 매장형태는 횡혈식 석실묘, 대형목곽묘, 옹관묘등으로 확인되었고 부곽묘광 2기가 발견되는 등 순장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발굴된 유물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이 고분군 바로 앞에 있어 쉽게 관람할 수 있다





넷 번째 찾아 간 곳은 한 장군 묘터이다. 사실 경산에서 한 장군을 모르면 간첩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장군 묘터를 가지보지 못했고, 실존인물인지에 대한 생각 또한 해보질 못해서 한번쯤 찾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 이유는 아버지의 추천이었다. 그 이유가 매년 단오때 마다 행사가 이루어지는데, 꽤 큰 행렬 속에서 진행되기에 우리 문화재로써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때 그 행렬 속에 파묻혀 있었던 기억이 아련히 났기 때문이다. 그 때를 떠올리며 한 장군 묘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묘터를 찾는 과정에서 경산에는 한 장군 사당이 많은 곳에 잔재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많은 곳에 잔재해 있는 것은 한 장군이 경산에 끼친 영향이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장군 사당을 가는 곳보다 묘터를 찾으로겨 했던 이유는 전설로만 되어 있는 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며 나름대로의 문화재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가게 된 것이다. 집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한 장군 묘지에 다다랐다. 한 장군 묘지는 경산 계정숲이라 곳에 있었다. 일단 계정숲을 지나야 한 장군 묘가 나오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곳에는 역대 군수 및 현감들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100m를 채 걸었을까 한 장군의 묘비가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웅장함이 하늘을 찌를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임당 고분과 다른 느낌이었다. 임당 고분군은 죽어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 장군 묘는 묘안에서 흙을 헤치며 한 장군이 나올 듯한 느낌이 들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묘 자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자연속에서 묻혀 있는 묘이며, 묘터 자체가 제공해주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에 누군가가 오더라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묘터앞에서 비석을 들여다 본 뒤 묘터옆에 작은 길을 따라 한 장군 사당쪽으로 향했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운치와 멋은 과거 TV로만 보던 신라 시대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사당은 추석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속에 있을 한 장군의 뒷그림자가 나를 사로잡았다. 과거 한 장군의 위상을 되새기며 하늘을 한번 쳐다본 뒤 뒤돌아 섰다.


참조 1) 한 장군 (韓將軍)  

한장군은 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의 실존인물로서 왜구의 침입에 높이 열자의 화관을 쓰고 여원무라는 춤을 추어 왜구를 섬멸하였다 전한다. 한장군의 인물에 대해서는 구구한 전설이 많이 있다. 한장군의 '한'은 '한없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신라 또는 고려 때의 실존인물이라고 전할 뿐 확실한 연대와 출생한 곳은 알 수가 없다. 또 임란때 사람으로 의병이 되어 그의 누이와 같이 서울로 올라가다가 왜적을 만나 물리치고 자인 고을을 구했다고도 한다. 그 이유는 대종사(大宗祠)와 현내리사당이 한장군누이의 사당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구전된 설화일 뿐이지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 발생동기에 있어서는 먼저 밝힌 바와 같이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구하려는 일념에서 적을 무찌르고 자기를 희생하며 국민의 의무를 다한다는 애국

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물의 성분은 남매로서 남자와 여자이고, 신라 또는 고려 때의 실존인물로서 시민 전체는 이 고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추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2. 여정을 마치고...

나는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지만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떠나가 본 적은 그리 많치 않다. 단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친 맘을 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고 왔을 때 항상 그 여운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번 여행에서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내 맘과 정신은 보다 깨끗해져서 돌아온 느낌이다. 또한 문화재탐방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여행을 한 것이게 보다 더 가치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이번 여행도 많은 여운을 안게 하는 여행을 한 것 같다. 한 곳을 가서 많은 것을 아는 것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고향에 대해 다소 깊이는 떨어지지만 폭 넓은 문화를 체험했다는 것이 지금 나에게 뿌듯한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내 고장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곳을 가든지 그 곳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번 여행이 교수님의 과제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삶을 윤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교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참고사항



경산시 - http://100.empas.com/entry.html/?i=10384&Ad=enpeople



불굴사 - http://100.empas.com/entry.html/?i=186692&Ad=photorental

       - http://100.empas.com/entry.html/?i=79790&Ad=enpeople

       - http://100.empas.com/entry.html/?i=764793&Ad=photorental

       - http://www.gyeongsan.go.kr/tour/mun_list.html?uid=10&page=1&code=1&mode=1&pro=1

       - http://news.empas.com/show.tsp/20000623n00262/?s=277&e=457

       - http://www.livetourcast.com/travel_info/kyongbuk/kyongsan/bulgulsa/bulgulsa.html

       - http://www.eunhae-sa.org/_malsa/_mal_main_2f.html

       - http://www.knto.or.kr/Korean/gabol/gabol_200201.htm

       - http://www.stupa.co.kr/kungbuk/kungsan_1.htm

       - http://gsic.co.kr/html/mun02.html

       - http://www.kyongbuktour.or.kr/kyongbuk100sun/kyongbuk100/71.htm

       - http://www.daegustory.com/daegu-budd/jinul-02.htm



환성사 - http://www.gyeongsan.go.kr/tour/mun_list.html?uid=12&page=1&code=1&mode=1&pro=1

       - http://www.eunhae-sa.org/_malsa/_mal_main_2o.html

       - http://www.tour123.co.kr/tour/area/kb/sachal/whansungsa.htm

       - http://www.kbise.or.kr/%C8%A8%C6%E4%C0%CC%C1%F6/moonhoa/HTML/T10007.htm

       - http://www.taegumall.co.kr/infor/tour/kyongbuk/kyongsan/honsa.htm

       - http://www.kyongsan.kyongbuk.kr/tour/tour2-4.html



임당고분군 - http://www.gyeongsan.go.kr/tour/list.html?uid=19&page=1&code=1&mode=2

           - http://www.taegumall.co.kr/infor/tour/ky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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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해인사~! 그곳을 갔다 오다~! - 전모 고성애 2012.02.18 86
41 지니의 금산사 답사기임다. 고성애 2012.02.18 125
40 추사(秋史)의 가득한 숨결을 느껴보세요.^^ 고성애 2012.02.18 219
39 [전시회] 대한민국 종교복식전에 다녀와서. 고성애 2012.02.17 81
38 [012 MT] 진전사지 답사 - 2 고성애 2012.02.17 55
37 탑. 늘 그 앞 까지만 가게 되는 자리... 고성애 2012.02.17 74
36 [012 MT] 진전사지 답사 - 1 고성애 2012.02.17 62
35 부여와 공주를 다녀 오고 나서 - 원진희 고성애 2012.02.17 75
34 신륵사를 찾아서. - 김한수 고성애 2012.02.17 75
33 [Re:32] 지하철/수혈주거지에 대한 의문점 고성애 2012.02.17 76
32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역사기행 - 김형규 고성애 2012.02.17 71
31 현이의 미륵사 답사기~♡ - 강현 고성애 2012.02.17 85
30 [Re:29] 동해신묘 - 가슴아픈 얘기 하나 고성애 2012.02.17 54
29 동해신묘 고성애 2012.02.17 67
28 삼성각(三聖閣)이란? 고성애 2012.02.17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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