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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애의 Naver 블로그 "디카로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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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 유일의 통일신라 목조불상
해인사 비로자나불 국내 最古 확인
새 금칠 위한 내부 개봉과정서 명문 발견
'중화 3년 계묘년 여름 금칠 해 완성' 쓰여
"머리크기·옷 주름 등 전형적 9세기 형식"


- 해인사 스님들이 비로자나불의 복장을 조심스럽게 개봉하고 있다. 바로 이 복장 내부에서 국내 최고 목불 임을 확인시켜주는 선명한 명문이 발견됐다. / 해인사 제공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전의 목조 비로자나 좌불상(毘盧舍那 坐佛像)은 추후 정밀조사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미 이 불상을 본 여러 문화재전문가들이 통일신라시대라는 제작연대에는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워낙 분명한 연대 표기가 불상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올해 1월3일 문화재청과 불교 조계종이 고려 충렬왕 6년(1289년)에 보수된 것으로 발표한 충남 서산 개심사의 목조아미타불이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목조불상으로 인정 받아 왔다.

이번 해인사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는 여기서 무려 4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이번 명문 발견은 한국 불교미술사를 다시 쓰도록 하는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당연히 이 불상은 필요한 과정을 거쳐 국보로 지정될 전망이다.

연대 추정의 근거가 된 명문(銘文)은 지난 달 해인사가 이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기(개금불사.改金佛事) 위해 불상 내부의 복장(腹藏) 유물을 개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불상 내벽에 붙어있는 나무 판자에 기록된 명문에 나타난 ‘중화 3년(中和 3년)’은 중국 당나라 희종(僖宗)의 연호로 서기 883년이다.

우리로서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 9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막연히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돼 1972년 경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을 뿐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 불상이 이 명문으로 인해 일약 현존 유일의 통일신라 목조불상으로 판명된 것이다.

명문의 좌측에 적힌 ‘중화3년계묘차상하절칠금착성(中和三年癸卯此像夏節柒金着成)’이란 구절은 ‘중화 3년 계묘년 여름에 이 불상에 금칠을 해 완성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위원인 진홍섭 고려대 명예교수는 “명문으로 보아서는 중화 3년에 불상을 제작해 칠을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제작한 불상의 금칠을 이 때 다시 했다는 것인지는 애매하다”고 밝혔다. 물론 어느 경우든 국내 최고 목불이기는 마찬가지다.

우측에 적힌 ‘서원대각간주등신○미우좌비주등신○(誓願大角干主燈身○彌右座妃主燈身○)이란 구절중 대각간(大角干)은 신라의 고위관직명이다. 전 해인사 박물관 학예실장 성공스님은 “해인사 창건 전부터 있었던 원당암에 각간 위홍과 진성여왕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이 구절이 관련돼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는 해독 불가)

이번에 명문 발견과 함께 새삼스럽게 확인된 것이기는 하나, 이 비로자나불의 모습도 8~9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띄고 있다.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불상의 머리가 신체에 비해 크고, 옷 주름이 유려한 것이 신라 후기의 사실주의적 불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서 “양식으로도 9세기 불상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높이 127cm인 이 비로자나불 좌상은 반달 모양을 표현하고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목에는 3개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고, 주름은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은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도 하며 법신불(法身佛)을 말한다. 법보전의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각각 높이 47㎝ 가량 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법보전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장경각 내 불단이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곧 문화재 지정신청을 한 후 8월말까지 불상의 개금을 완료해 9월부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 2005년7월4일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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