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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애의 Naver 블로그 "디카로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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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일본 화보집의 글 `고구려호태왕릉비(高句麗好太王陵碑)'-`삼국시대 고구려'

사진 연구가 정성길(60.경기도 화성평화공원 박물관장)씨가 22일 공개한 사진속의 주인공은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쓴 한복 차림의 조선인으로, 팔짱을 낀 채 눈 내린 산야를 배경으로 광개토대왕비 옆에 서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이 비는 비각 속에 갇혀 있고, 지난 해 12월 이후로는 한국인의 접근을 불가하고 있어, 예전의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하얗게 눈 덮인 산야를 배경으로 장엄하게 서 있는 비와 한복 차림의 조선인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다 시원하게 해 줌을 느낀다.

이 조선인은 추운 겨울임에도 가벼운 한복차림이어서 당시 비석 주변에 거주하던 화전민이 일본인 사진작가의 요청에 따라 촬영에 응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진은 1903년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의 명소와 유적’이라는 화보집에 실린 것으로, 일본어로 된 사진설명에는 `고구려호태왕릉비(高句麗好太王陵碑)'라는 제목 아래 `삼국시대 고구려'라고 돼 있어, 1세기 전 당시 일본인들도 고구려를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의 하나로 보고 있었음을 나타냈다.

얼마 전, 민간단체가 제작한 광개토대왕비 복제비가 명칭과 학술적 가치 등에 대한 이견으로 독립기념관 겨례의 집 광장에 포장에 쌓인 채 방치되 있다는 보도에 가슴 아팠다.

민간재단인 계룡장학재단은 2001년 10억원의 비용을 들여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대신할 복제비를 제작, 독립기념관에 기증키로 했다.

기념관측은 이 비석이 실제 광개토대왕비와 크기가 다르고 금석학자들로부터 “비문 일부가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 돼 ‘복제비’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술연구가치가 떨어지는 비석에 복제비란 명칭을 부여할 경우 기념관의 위상과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또한 비석 옆에 세워 질 설명비에 기증자가 요구하는 내용을 그대로 담을 경우 향후 독립운동가 어록비나 기념비 기증 시 개인이나 단체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임순형(49)씨는 12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광개토대왕비의 실물 크기와 같은 비를 주문 제작, 자신의 음식점 앞마당에 세웠다.



임씨는 지안에서 2천㎞나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취양(曲陽)의 한 중국인 석공에게 제작을 의뢰, 2차례를 실패한 끝에 2년여만에 높이 6.39m에 한자 1천800여자를 새긴 비를 복원했다.

임씨는 "지린성에는 광개토대왕비와 같은 종류의 돌(오석)이 없어 허베이성까지 수소문해 같은 색깔의 돌이 생산되는 것을 알고 현지 석공에게 제작을 부탁했다"며 "1999년 처음 광개토대왕비를 본 뒤 국내에 들여올 생각을 하게 됐고 현지를 5번 답사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장군총 등 고구려 고분도 복원해 국내에 세우고 싶다"며 "현대인들이 고구려인의 기상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마어마한 사비를 들여서 백두산의 돌을 옮겨 만들었다는 그의 끔찍한 고구려 사랑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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