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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애의 Naver 블로그 "디카로 그리다", 캐시미어 코리아 블로그, 캐시미어 코리아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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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미의 순례, <송림사 전탑의 꼰> 중에서

무더운 여름 우람한 당(堂)나무 그늘이나 마당 한 귀퉁이에서 고누(꼰)를 그려서 말놀이를 하는 유희는 예전부터 있었다. 말을 많이 따기도 하고 말 길을 막는 것을 다투는 이 놀이는 장기나 바둑처럼 일정한 도형이나 엄격하고 조직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손을 멈추고 잠시 쉬는 동안 아무런 부담 없이 짧은 시간에 승부를 끝내고 마는 놀이지만 그 대신 반복성이 매우 강하다. 장기, 바둑이 사대부 양반들의 오락이라면 이 '꼰두기'는 머슴이나 목동, 농부들의 오락이었다.

꼰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간편하고 소박한 놀이인 것 같다. 꼰을 두는 판은 땅바닥에도 마루에도 종이 조각이나 아무데고 금방 그릴 수 있고 말도 주변에 뒹구는 돌멩이나 나뭇조각, 풀잎을 따다 자기편의 말로 삼을 수가 있어 편리하다. 사전의 번잡한 준비도 필요 없고, 격렬한 승부의 세계도 없다. 잠시 마련해 잠깐 열중하고 마는 가벼운 놀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여름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아무런 스스럼없이 활짝 핀 표정으로 떠꺼머리 총각 두 녀석이 웅크리고 마주 앉아 '꼰두기'하는 풍경을 이제는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주 앉은 두 떠꺼머리 총각, 신이 나면 엉거주춤 앉았던 궁둥이를 치솟으며 환성을 지르기도 하고 물러 달라고 떼를 써 보기도 하는 이 놀이는 둘이 어울려 승부를 가린다는 의미에서 '꼰'이라는 이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속어에서 둘이 겨루어 보는 것을 '꼰아본다'고 하기도 하므로 겨루어 상대의 실력을 헤아려 본다는 의미나 패를 나누어 승부를 가린다는 의미에서 '꼰아본다'가 '꼰'의 이름으로 된 것은 아닐까?

꼰 두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장면이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에 있다. 아이들이 꼰을 두며 노는 풍경이 김홍도의 눈에는 매우 흥미롭게 비추었나 보다.

꼰의 역사는 오래된 것 같다.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칠곡 송림사의 전탑(塼塔), 그 탑을 쌓은 전(塼)의 하나에서 이 꼰이 그려져 있음이 발견되었다. 꼰이 그려져 있는 전이 신라 때 만들어진 것인지 중년의 개축 때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전문가들은 그 전이 신라 때의 작품임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따른다면 신라 시대에 이미 꼰 놀이가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전공(塼工)들이 꼬챙이로 전에 꼰을 그려 구어 냈을 때 장공(匠工)들은 히죽거리며 왁자지껄하였으리라. 둥그렇게 둘러싸고 앉아 꼰 두는 사람, 훈수하는 고함소리가 시끌 벅적하게 퍼졌을 것이다. 그러다 이 꼰전은 전장(塼匠)의 손을 떠나서 전탑을 세우기 위해 송림사로 옮겨졌을 것이다. 조탑공들이 이 꼰전을 발견하고 동료를 소리쳐 불러 꼰두기를 하였을 터 였다. 감독의 호통 소리에 엉겁결에 꼰전을 숨기느라 부산하다 보니 어느덧 탑을 세우는 전으로 쓰여져 천년의 세월을 그렇게 지나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밝은 태양 아래 이 티 없는 행위는 우리에게 끝없는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영원한 한국 상(像)의 일면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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