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줄 수 없다니요.^^*
어머니께서 열이 자꾸 나시는데 병원에선 별 일 없다고 괜찮다고 말한다. 할 수 없이 사촌 오빠가 운영하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부근의 비로한의원에 갔다.
이 오빠가 우리 집안의 인물이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씨와 친구이니 나이가 꽤 되신다. 서울대 인문대 수석합격에 4년간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수석졸업을 하셨다. 이 오빠의 명언이 있다. "1등은 행복한 자리가 절대 아니다. 밑에서 언제 치고 올라 올 지 모르니 항상 불안하다."
오빠는 나중에 한의대로 들어가 다시 공부를 해 평생을 한의사로 사신 분이다. 이번에 오빠를 9년만에 찾아 간 것이다.
어머니를 다 진찰하고 약을 보내 주겠다고 하셔서 나도 진찰해 주시고 약 좀 지어달라고 했다. 오빠 왈 "너는 지금 약을 지어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11년 전에 왔을 때 운동을 많이 해 몸이 아프다고 했었고, 9년 전에 왔을 때도 운동을 지나치게 많이 해 늘 아프다고 했었다. 근데 11년이 지난 지금도 몸이 너무 아프다고 약을 지어달라고 한다. 그 때 분명히 운동을 반으로 줄이고 몸을 편하게 두어야 남은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줬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테니 약을 먹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니 너의 그 지나친 몰두, 집착을 다 버리고 몸이 편안해 질 때까지 이제까지의 생활습관을 다 버리고 고칠 때까지는 약을 지어줄 수 없는 거다.
그리고 지금 6학년이 훨씬 지난 나이에 20-30대도 잘 못 하는 모글 스킹을 잘 한다고 그거 하~나도 자랑할 일이 못 된다. 내 몸이 편안하고 안 아파야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거냐."고...
헉! 이 오빠 한의사가 맞는 건가?^^*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덧붙여 내가 물었다. 내가 소음인이 맞느냐고. 알려줄 수 없단다. 그거 알려주면 이거 안 먹고, 저거 안 먹고 야단을 할 테니까. 그저 골고루 잘 먹으면 그게 보약이란다.
아이쿠나, 졌다. 한의원에 가서 원하는 한약을 못 짓고 나온 사람이 있으려나요?^^*
실은 내가 한약을 먹으려고 약을 지어달라고 했던 건 절대 아니다. 오빠가 "고모님, 약 값은 안 받습니다." 이러시길래 미안해서 나라도 약을 먹어 어머니 약 값은 보충해 드려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심 앞으로 오빠의 따끔한 일침이 먹혀 운동을 확 줄여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나이를 잊고 정말 너무 심하게 운동을 하는 건 사실이므로.
아래 사진은 한의원 귀퉁이에 잘 모셔져 있는 클래식 기타이다. 오빠의 유일한 취미이다.
사진 속의 작은 액자는 오빠가 아침마당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의 모습이란다. 우리 집안의 특이 사항은 여자는 물론 남자들도 모두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 가족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