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조회 수 2794 좋아요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1) 제목 : 행복한 시간의 길이 / 박순백 - 2001-08-10 13:35:18  조회 : 2529 


행복한 시간의 길이(length)

그저께 이정순 박사님과 통화를 했다.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는 책의 제목처럼
그분은 정말 강한 분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의 친분을 통해
여러 번 그분의 강함을 확인한 바 있다.

"별일 없죠?" 물으시는데
'무슨 얘길해야 하나?'
묵묵부답으로 잠시 머뭇댔는데,
"무슨 일 있어요?"
다시 물으신다.

할 수 없이 지연이 얘길하니,
그 강한 분이
내 말이 떨어지기 전에
막 우시는 거다.
통화 내내 우시는 거다.

"아니 그럴 수가 있어요?
그 애가 왜 가야 돼.
착한 사람들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돼?
......"

이런 말씀들로
통화 내내 우시는 거다.
나도 참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어느 순간부터는
울먹이며 얘기했다.

하긴 내가 달래 전화드렸던 게 아니다.
집사람이 오랜만에 집어든 책에서
빠져 나온 석 장의 사진 때문에
그 분 생각에 전화했던 것이다.

집사람의 글 중 일부이다.

"어디를 둘러 봐도 그 애를 생각나게 해 혼자 눈물짓곤 하지요. 어제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꺼내다가, 그 속에서 알프스 스키장에 갔다가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이걸 어쩌니?' 혼잣말하며 슬퍼했더랍니다. 현근이가 초등학교 4학년, 연이가 중 2 때였는데 '내사랑 알프스'의 이정순 박사가 살던 집 앞 마차에서 찍은 다정스런 그 사진들을 보며 또 서러워지더군요."

그 사진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 94년 8월 7일 알프스 스키장의 원조가 된, 김성균/이정순 부부의 알프스 산장 앞에서...

송지호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우린 알프스 산장에 들렀었다.
거기서 석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앞바퀴가 빠져 버린 마차 위에서도 찍고,
새로이 지어진 티롤 스타일의 호텔을 배경으로도 찍고...



우리 가족에게 친절히 대해 주시는
그 두 분,
그리고,
명종이, 나미가 살던 곳.
그 알프스 산장 앞에서 우린
그들 가족의 동화 같은 삶을 얘기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었다.



그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정순 박사님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그 가족의 극적인 삶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머잖아 김성균 선생이 돌아가셨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단한 알피니스트,
꽤 잘 알려진 사진가,
우리 나라 최초로
오스트리아에서 스키 강사 자격을 획득한 분.
그리고 알프스 스키장을 만든 분.
못 하는 일이 없어 팔방미인으로 불리던 분.
그 분이 암으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작년 가을에 알프스 스키장에
들른 일이 있다.
통일 전망대와 양양의 법수치에 가는 길에
알프스 가족에 대한 좋은 기억을 찾아...
그런데 거길 가보니 가슴만 아프다.

[가을 여행] 법수치에 다녀오다.란 글에서
이렇게 쓴 일이 있다.

"진부령의 이름이 진부해서인가,
그 바로 옆 알프스 스키장은 쇄락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주말에 한적한 그 모습이 왠지 처연했다.
싸아한 햇살에도 가을의 쓸쓸함만 느껴졌다.
주인 잃은 곳이라 여기저기 손볼 곳만 많이 늘어난 그 곳.
가끔 보이는 주인의 흔적으로 마음만 아팠다."



- 94년도에 우리 가족이 갔을 때는 앞바퀴는 빠져 있었지만, 마차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양이 되다니...


- 김성균 선생이 아들 명종이와 딸 나미를 생각하며 직접 그렸던 그림이다. 그런데 이조차 색깔이 많이 바래 있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다.


- 뒤에 보이는 벽화도 이젠 색깔이 선명치 않다. 이젠 알프스 산장의 동화도 빛이 바랜 것처럼...

집사람과 나는 알프스 산장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다녀와 이정순 박사님과 통화를 했었다.
그 알프스 산장의 모습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나 저나
이젠 거길 안 가고 있어요.
가면 생각나는 게 많아서...
다 가슴아픈,
아름다운 추억들이예요."

그 말씀을 듣고,
법수치 여행에 관해 써 놓은 글 끝에
아래와 같은 글을 덧 붙였었다.

"김 선생께서 떠나신 후 유족들은 이 산장을 자주 찾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한 사람의 떠난 자리가 얼마나 크고, 또 허전한가?"

그 얘길 집사람에게 하니
집사람은 이런 얘길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분 가족들도
참 안 됐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건
명종이, 나미가 어렸을 때,
아주 어릴 때
그곳 흘리국민학교에 다니던
그때뿐인 것 같아요.
알프스 산장의 개척기라
힘은 들었겠지만 온 가족이 모여
알콩달콩 살던 시절이잖아요.
그 후에는 아이들 따로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두 분은 알프스 산장에 계시고,
그 후엔 다시 아이들이 오스트리아로 유학 가고,
이정순 박사가 뒤늦게 미술학박사 공부를 하러 떠났지요.
아이들 공부가 끝나 돌아오고,
학위를 끝낸 이 박사님이 돌아오고,
그 후 "내 사랑 알프스" 시절엔
다시 행복이 찾아왔던 거죠.
아이들은 돌아와 대학을 졸업했고,
새로 시작한 사업도 잘 되셨고,
이 박사님은 한 많던 가슴속의 회한(悔恨)을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로 털어놓으시고...
이제 모든 게 다 끝나고
행복한 재회를 했던 거잖아요.
명종이 결혼하고,
나미 결혼하고,
이제 정말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그런 땐데...
근데 김성균 선생이 돌아가셨으니......
우리가 동화 속의 가족이라고
언제나 부러워하던 가족인데...
사람의 행복이란 건
길지가 않은가 봐요."

이제 우리 가족이
지연이의 떠남으로 해서
큰 불행을 맞았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행복은
그래도 길었던 편이다.

알프스 가족의 짧은 행복에 비해
무척이나 길었던 편이다.
그렇게 위로해야 한다.

전화 통화 내내
지연이를 위해 애통의 눈물을 흘려주신
이정순 박사께 감사드린다.
그런 불행을 맞기는 했지만
오히려 우리의 행복은 길었었노라고
그로써 위로 받고 있음에 대해서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 했다.

"우리 가족들 한 번 곧 만나요.
우리 함께 손잡고
울어 봐요."
그렇게 끝내 우시던
이정순 박사님.

 



Mein Liebes Alps - Revisited by Spark
아이플 타워(Eiffel Tower)
중남미문화원 병설 박물관 방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좋아요
142 흔적을 지우려면... 박순백 2001.07.02 2345 0
141 혜성처럼... file 박순백 2004.06.14 8711 0
140 현실남매에 관한 누나의 글 - 초딩 1년생이 애증을 논하다. file 박순백 2022.07.01 525 2
139 현근이의 일기 박순백 2001.07.20 2937 0
» 행복한 시간의 길이(length) 박순백 2001.08.10 2794 0
137 해 줄 수 없는 일 박순백 2005.10.17 4199 0
136 항상 난 결혼 기념일을 잊는데... 박순백 2003.04.22 6640 0
135 함께 가자고 했는데... 박순백 2001.07.12 2173 0
134 한계령에서 돌아오던 길에... 박순백 2001.07.09 2602 0
133 한계령에 가면... 박순백 2001.07.07 2405 0
132 한(恨)으로 남으리라. 박순백 2001.07.25 1854 0
131 표현하지 않는다면... 박순백 2001.06.20 3938 0
130 추억은 아름다우나 돌이킬 용기가 없다. 박순백 2001.10.09 3024 0
129 추억으로 그리운 곳 박순백 2001.09.11 2455 0
128 추석을 맞아 지연이 곁을 찾았으나... 박순백 2001.10.04 2634 0
127 처음이자 마지막 메일 박순백 2002.09.16 5098 0
126 집터가 안 좋아서??? 박순백 2001.07.11 2757 0
125 지천명(知天命) 박순백 2002.02.28 3816 0
124 지연이의 빈자리 - 1 박순백 2001.07.18 2676 0
123 지연이의 빈 자리 - 2 박순백 2001.07.23 2183 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