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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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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제목 : 함께 가자고 했는데... / 박순백 - 2001-07-12 15:01:42  조회 : 2078 

함께 가자고 했는데...

미국 NCSA의 김용빈 선생
지니 쪽지를 주고받다가 울었다.

지연이 고등학교 때 미국 아닌
영국 연수를 보내
섭섭했다는 얘기.
현근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일리노이로 보내라는 얘기.
오면 거기서 많은 자극을 받아,
살아가는 데 큰 도움되리란 얘기.

연이 얘기가 나온 바람에
갑자기 연이와 나눈 얘기가 생각났다.

연이 떠나기 겨우 사흘 전 일요일,
둘이서 영종도 신공항에 갔을 때,
거기서 늦은 아침을 먹으며,
이번 여름에 함께 미국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이 아빤 그렇게나 많이 외국엘 갔어도,
가족과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함께 나가지 못 했었다.

심지어는 아르헨티나 처갓집에 갈 때조차...
난 함께 가지 못 했다.
난 나대로 일 때문에 여행하고,
세 사람이 해외에 갈 땐 나 혼자 집을 지켰다.

그 셋은 나 없이 많이도 나다녔다.
가장이 여행에 함께 못 가는 게,
난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내가 여행 경험이 가장 많고,
내 영어가 그들보다는 훨씬 낫다.
내가 함께 갔더라면
가족들이 훨씬 편하고,
더욱 즐거웠을 텐데...

가족과 함께 했어야 하는데...
연이 살아 생전에,
어떡해서든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난 그들을 위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장 역할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았는데...

공항에서 함께 아침을 먹으며,
이번 여름 휴가엔 그렇게 하기로 했었다.
내가 함께 가기로 했었다.
라스 베가스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기로...

"백 투 더 퓨처관도 좋고,
주라기 공원 테마 파크도 좋지만,
워터 월드가 짱이란다.
그게 영환 시원치 않았지만,
테마 쇼는 정말 재미있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제일 재밌어.
거기 가자.
라스 베가스에 갔다가
아리조나의 그랜드 캐년까지 가자.
아빠가 그 멋지고 기나 긴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를
직접 운전해서 데려가 주지.
재밌을 테니 기대해라."

이제 그 약속은 어떡하나?
그 못 지킬 약속을 어떡하나?

아이는 외가집에 가고 싶어했다.
비행기에서의 체공 시간만
무려 27시간이 걸리는 아르헨티나.
한 번 갔다 오곤 힘들다고,
그 후에 다시 못 갔던 곳이다.

"그래, 곧 한 번 가라.
외할머니도 외로우실 텐데...
거기 갔다가 브라질 외삼촌에게도 들러."

지연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외할머니 걱정을 많이 했었다.
제가 가서 위로해 드려야 한다고 했다.

외할머닌 아직 지연이가 떠난 줄 모르신다.
도저히 알려 드릴 수 없었다.
전화만 하면 애들 좀 보내라던
처남에게도 얘기하지 못 했다.

가족 잃은 슬픔이 제일 크다.
이걸 뒤늦게야 알게 되다니...
연이 떠나고 나니 가족 귀중한 걸 알겠다.
세상에 그보다 더 귀중한 건 없다.

그걸 뼈저리게 깨달았는데...
이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기회가 단 한 번에 지나지 않는다니...
그게 죽음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일은 두 번,
혹은 세 번의 기회가 있는 게 아닌가?

말만 꺼내고 지키지 못한 약속들.
결국 내 무덤까지 가져갈 약속들이다.


- 99년 2월 2일 제 생일 날 케익을 앞에 두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연이. Click하면 나오는 사진의 난 왜 그리 뚱한 표정이었던지?


- 18살의 촛불이 켜져 있다. 즐거운 표정의 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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