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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2002.06.07 14:08

그렇게 잊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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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제목 : 그렇게 잊혀지겠지. / 박순백 - 2002-06-07 14:08:22  조회 : 3138 


나와 연이 엄마는
추억이 두려워
비목 문화제에 가지 못 했다.

뻔히 그날 6월 6일, 현충일.
1년전 그 날에 연이와 셋이서
화천의 비목 문화제에 갔었던 걸 기억하고 있음에도...
그리고 "우리 내년에도 이날 여기 와보자."고,
셋이서 약속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데도...

6월 6일은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인 것처럼
그에 대해 난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연이 엄마도 내게 그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 얘긴 없었던 것처럼
언급하지 말자는 묵계를 한 것처럼...
우린 그냥 현충일을 넘겼다.

여느 공휴일처럼,
여느 일요일처럼,
좀 늦게 일어나고,
늦은 아침을 먹고,
월드컵에 대해 얘기하다가
모른 척,
난 인라인 스케이트 장비를 꾸리고,
올림픽 공원에 가서
밤 늦도록 스케이팅을 하고,
12시 가까이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서며
"프랑스가 탈락할 위기라며?
우르과이와 비겼다니,
프랑스가 가여워 어쩌냐?"
공연한 너스레를 떨며,
그렇게 그 하루의 마지막 몇 분을 넘겼다.


- 지난 화요일에 한계령에 갈 때, 난 지연이가 썼던 이 모자를 쓰고 갔다.(한계령 2, 한계령 3)

오히려 우리를 대신해서
내 친구 둘이 그곳에 갔다.
참 좋은 사람들.

가서
나라를 지키다 먼저 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거기서
지연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렸었겠지.

뜨거운 날씨 속에서
평화의 댐을 바라보며
금강산 댐에 관한 얘기를 하고,
아직도 6.25의 상흔이
생생히 남은 걸 보며
그걸 잊고 살아온 것에 놀라겠지.

지연이 얘길하며,
겨우 초등학생의 모습으로만 그들에게 기억되는 게
아쉽다고 하겠지.
어쨌건 연이가 그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니, 다행스럽다.

다시 1년전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 이곳을 방문해 준 분도 있다.
화천에서 기다리셨을 그 분을 내 죽기 전엔 만나보겠지만...

뭐, 지연이도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모두에게 잊혀지겠지.
아니,
그래도 동생 현근이가 있으니
그 애에게 기억되다가
현근이까지 가면
아무도 기억 못 하게 되겠지.

"너희들에게 고모가 있었단다.
착하고 예뻤지.
고모와의 어린시절이 그립구나."

단지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우리 손자들에게 전해 졌다가
다시 그것마저 잊혀지겠지.

그렇게 인간의 망각이 쌓이고 쌓여
인간의 역사는 없이, 단지 사건의 역사만 남아,
그렇게 흘러가겠지.

그렇게 잊혀져 가는 과정에서도
아직은 내 슬픔이 생생하니

그게 차라리 위안이 된다.
내 살아있을 동안 그렇게 기억되고,
내가 떠나 기쁨으로
널 다시 만나게 되기를...

 



번호 #1966 /1968 날짜 2002년 6월 6일(목요일) 23:55:39
ID migokim@dreamwiz.com 이름 김현주
[리본] 장미의 자리
URL http://my.dreamwiz.com/migokim

어릴 때 아버지께서 가끔씩 꺼내 반짝 반짝 닦으시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참 예뻐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언지를, 또 누구 것인 지를 알고 있다.
아버지 바로 아래 동생, 흑백 사진 속에 친구들과 웃고 있는 윤호 삼촌의 훈장이다.
삼촌은 베트남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찾아가는 국립묘지에는 현충일 며칠 전이면 근처의 유치원에서 단체로 와서 꽂아 놓는다는 작은 꽃송이들이 있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늘 그 앞에서 새 꽃다발을 사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곳은 깊은 산을 한참 올라가야 있는데, 삼촌이 있는 곳은 6월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국립 묘지, 누군가가 심어 놓은 붉은 장미가 꽃망울을 틔우고 있는 곳이라고 어린 마음에 으쓱했다.

누군가 그 구역의 맨 앞에 초여름이면 온통 푸른 잔디 위에 화려한 꽃잎을 터뜨리는 붉은 장미를 심었다.
다른 구역에는 그런 것이 없으므로 그 묘역 유족 중 누군가가 심었음직한 그 붉은 장미빛으로 우리는 삼촌이 있는 곳을 멀리서도 금방 찾을 수가 있었고, 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외우라고 하셨다: 서쪽 4번 구역 장미 있는 곳.
아버지가 못 오게 되면 너희가 삼촌을 찾아 와야 한다고.

몇 십년 전만 해도 현충일이면 베트남에서 유명들 달리 하신 분들이 계시는 그 묘역은 온통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홀로 키우신 외동 아들을 잃어 버린 어느 할머니는 혼자서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뵐 수가 없었고 이런 식으로 해가 갈 때 마다 오는 사람의 수가 줄어 간다.
삼촌이 계신 곳 건너편에는 6.25 참전 용사들이 계시는데 그 곳에는 이제 찾아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들과 같은 곳에 있는 지 그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다 그 곳으로, 조금씩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과 만져지지 않는 것에 관해 조금씩 잊어 갈 권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이었던 것 같다.
삼촌에 있던 곳에 있던 붉은 장미 나무가 없어졌다.
나는 장미를 찾는 편이 훨씬 좋았는데.
계단식으로 된 묘역의 제일 앞자리 공간에 멀찌감치 있어서 묘비를 감는다든가 하는 피해를 주지도 않게 누군가 공들여 심은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장미를 심은 사람의 뜻을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묘역을 찾는 모든 이들이 이를 보며 길을 잘 찾을 수도 있었는데.
온통 똑 같은 비석들만 보이는 곳에서 붉은 장미는 특별함마저 느껴졌는데.
언젠가 더 이상 찾아 오지 못할 사람들과 시들어 버릴 꽃다발의 자리에 그 붉은 장미가 있기를 바랬던 건 나 뿐이었을까…

이제 번호를 잘 기억해야 되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오늘 가 보니 묘소는 그대로지만 구역 번호가 다 바뀌었다.
장미의 자리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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