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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7 22:58

해 줄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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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제목 : 해 줄 수 없는 일 / 고성애 - 2005-10-17 22:58:37  조회 : 3354 

며칠 전, 세종문화에서 하는 볼쇼이 발레 공연을 갔었다. 공연을 보러 오가며 난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연이(娟)가 경희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친한 친구 경화가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가자고 하는데 꽤 비싸다고 하며 말을 꺼낸다. 5만원이나 하는데 보내 줄 수 있느냐고... 연이는 그 때 정통 클래식 발레라는 그 공연이 꽤나 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5만 원이라면 꽤 큰돈이기도 했었고, 나와 남편 둘이 대학원 박사과정을 공부하느라 책값이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던 때였던지라 선뜻 보내 주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 번에 연이가 좀 크면 그 때 엄마가 꼭 보내 줄께."

그런 거 보내 달라고 떼쓰던 아이도 아니었는데 '그 때 보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속이 저려온다. 연이가 있었더라면 이런 공연들은 두 모녀가 손잡고 찾아다니며 마냥 즐거워했을 일이다. 만 4년 만에 그 동안 열어 보지조차 않던 연이의 책상 서랍을 정리하니 그간 줄곧 기억을 더듬어 내가 찾던 귀한 사진들이며, 자신이 모아 놓은 학교 갈 때 엄마가 넣어 주곤 하던 쪽지 편지가 한 묶음 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 빛 바랜 콘서트 티켓 한 장이...

연이가 산 박효신의 라이브 콘서트 티켓

'박효신 라이브 콘서트'

장소: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
일시: 2000년 11월 4일 토 오후 4시
좌석: 1층 12열 6번
가격: 25,000원-박지연


그 때 엄마가 한창 좋아하던 박효신의 콘서트라고 자신이 인터파크에 예매를 해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안겨 준 콘서트였다. 입장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다들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네. 엄마 나이 또래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도 없다. 엄마가 최고령 박효신 팬인가 보다."

깔깔 웃던 연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래 엄마는 그 때 그의 '해 줄 수 없는 일', '바보' 등의 노래들을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부르며 무척이나 좋아했었지. 근데, 생각해 보니 티켓 예매 값이 학생이 지불하기엔 꽤 비싼데 연이에게 갚아 주지도 못했다. 그런 걸 달라고 할 아이도 아니었지만, 지금이었다면 싫다고 해도 두 배는 쳐서 주었을 텐데... 연이가 발레 공연 가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함께 가 주었을 것을...



연이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콘서트 공연이기에 누렇게 변색된 이 낡은 티켓을 버릴 수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서랍 속의 티켓을 꺼내 보게 된다. 세월은 '이 다음에...'라는 말을 현재의 상황을 넘기기 위해 애써 남발하지는 말라 가르쳐 준다. 지금은 그 애가 함께 할 수 없기에 무엇하나 '해 줄 수 없는 일'이 되고 만 것을...

 



한병국 - 가끔 따님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그냥 코끝이 찡하네요. 그마음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도 다음에..."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보고 사용하겠습니다. 2005/10/12 18:01:25
221.158.236.249 x
박순백 - 뭐, 기회가 있겠지. 가끔 '그 게 단 한 번의 기회였을 거다. 우리의 현세의 삶은 이 단 한 번 뿐일 거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왠지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기약해 본다. 하릴 없는 기약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꼭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님에, 그것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삶 자체가 한낱 꿈인지도 모르는데, 그 꿈에서 깨어나 '진짠줄 알고 깜짝 놀랐네.'하고 웃음지을지도 모른다. 아직 누구도 삶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없고, 또 죽음에 대해서도 제대로 얘기한 일이 없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데도... 그래서 기회가 있을 것 같다. 2005/10/17 22:53:32

 

 

 

 

 

From : 211.45.66.133

 

 

 

 

 

박중규 딸의 아빠가 되어 어떻게 키울까 항상 걱정하는데 글을 읽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딸을 사랑하는것 참으로 중요하다는것을 배우게 됩니다. 2005/10/19 17:00:09
210.124.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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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유인철_ 처음 접했을 때는 왜 이런 칼럼을 추가하셨을까, 의문도 가져보았습니다.
이승과 이별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미지(未知), 고통, 그리고 잊혀짐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님은 이제 세가지 다 해당이 안되니 다른세상에서도 행복할 것입니다.
전혀 모르던 나같은 사람도 가끔씩 들어와 추모와 기억을 해주니까요. ^^
이 칼럼을 만드신 이유를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
2005/10/21 08:51:05
58.230.1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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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호 사모님께서 쓰신 글을 읽다가 가슴 한켠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가 요즘 jini에게 더욱 잘 대해주는 것은 영애 연이(娟)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生)에 앞서 가시는 두분의 고통과 기쁨을 옆에서 체득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르침'이란 것은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아도 이렇듯 글만으로도 어느 스승 못지않게 때로는 아프게도, 또 때로는 행복하게도 사랑의 채찍질이 되나 봅니다.두분께 늘 존경의 눈길을 보내며 연이(娟)는 영원한 내 조카로 비좁지만 그러나 박효신 콘써트의 좌석보다 넓게 자리 잡았습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조카를 그려봅니다. 늘 행복 하소서.. 2005/10/24 10:35:06
211.55.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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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철 다음에.. 언젠가는.. 이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사람의 삶이라는 건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만 하겠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2005/10/26 23:43:48
203.250.10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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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에쓰제이 형수님의 글을 읽고 내일은 만사 제쳐두고 애들과 백화점 쇼핑을 같이 가주렵니다. 사는것이 그런것을... 2005/12/23 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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