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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2004.06.14 16:07

혜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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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제목 : 혜성처럼... / 박순백 - 2004-06-14 16:07:38  조회 : 7884 


아직도 우린,
나와 성애와 현근이는,
우리 부모님과 내 형제의 가족들은,
우리 친척들은,
그리고 우리의 친지들은,
지연이란 이름을 대화 중에 잘 올리지 못 한다.

담담히 얘기하기엔
너무도 처절한 아픔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아 그러지 못 한다.
어서 세월이 더 가서
우리 모두가 지연이가 함께 하던 때의 얘기를 마음 놓고 했으면 좋겠다.
삼년이면 많이 잊혀진다더니 그도 거짓말.
'그럴 리 있겠나?'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럴 리 없고, 그럴 수 없다.
잊는다는 건 도피일 뿐,
먼저 보낸 애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아파도 기억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야 한다.

아직도 그 애를 생각하면 숨을 몰아쉬게 되고,
옆에선 그 게 한숨으로 들릴 거다.
한숨이 다른 게 아니다.
큰 숨이니, 아이의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해 지면
어쩔 수 없이 난 큰 숨을 쉬어야 하고,
그 게 옆에서 들으면 바로 한숨이다.

아직도 그 나이를 생각하면 아깝기만 하다.
가기엔 너무 일렀다.
뭐가 그리 바빴었나?
81년 생이란 것만 기억하고,
그 애가 곁에 있다면 이제 몇 살인가를 따져보지 않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그 중 한 여직원이 81년 생이란다.
'81년 생이 벌써???'하고 생각해 보니
그 나이면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빠른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시작할 나이란다.

나이를 따져 보지 않았었는데,
따져 보니 지연이가 곁에 있었다면 이제 스물셋이다.
내 딸의 나이와 같은 여직원을 대하니
왠지 모를 회한이 생긴다.
하긴, "왠지 모를"이란 얘긴 자기 기만일 뿐이다.

스물셋이라면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할 나이이다.
그런 나이에 이르기도 전에 갔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그 게 너무 안타깝다.
힘들여 공부한 여고시절을 갓지나서
꿈많은 대학시절이 시작된 걸 좋아하던 애였는데...
정말 기막히게 좋은 시절을 맞이해
많은 꿈에 부풀어 있었을 때인데...

어차피 가야하는 게 인생인데,
먼저가고 늦게 가고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순서를 지켜서 갔어야지.
아빠가 먼저 갔어야하지 않았겠나?
그리고 제가 먼저 간 아빠 생각에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게,
도리가 아니었겠나?

여행을 갈 때면 항상 그 애의 빈자리로 허전하다.
언제나 우린 한 가족이 아니었던가?
그 비어있는 한 자리를 대신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둘이 있을 땐 느끼지 못 하는 허전함이
가족 셋이 모이면 더 커지곤 한다.
가족 중 두 사람이 비어있는 자동차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허전함이,
오히려 한 사람이 비어있음을 느낄 때는 더 큰 허전함으로 변하고,
끝내 그것은 슬픔이 된다.

가끔, 가족들이 없는 자리에서
난 나리에게 묻곤 한다.
"나리야 지연이 언니 기억나니?"
대답할 리 없는 나리는
큰 눈만 굴리면 나를 쳐다볼 뿐이다.
워낙 똑똑한 마르티스 종의 개라서
말을 안 해도, 눈치만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나리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특별한 반응이 없다.
지연이가 우리와 함께 할 때는
언니를 찾으라면 그 애의 방으로 달려가던 나리다.
지연이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았을 때는
지연이란 이름이 불릴 때 그 나름의 의아한 반응을 하던 나리다.

하지만 지금은 나리의 그런 반응이 없다.
하긴 나리에겐 그 이름이 잊혀질만도 한 세월이다.
벌써 세 해가 흘렀지 않은가?
사람으로 친다면 인생의 1/4이나 되는 긴 세월이 지난,
아주 오래전에 자주 들은 이름일 뿐이다.

이제 우리 집에서는 그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부르고 싶어도 애써 부르기를 주저하는 이름이다.
말 못 하는 나리에게 그 이름을 얘기하다가도
그 이름을 입에 올린 내 스스로를 어색해 할 때도 있지 않은가?

무심한 나리를 서운하게 생각하다가
난 나리에게 미안해 진다.
나리, 이제 8세의 나리.
그들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이제 길어봐야 4년,
나리는 벌써 삶의 2/3를 산 셈이다.
이렇게 헤어질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지연이와의 이별은 정말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아니, 나는 언제나 죽음이란 것을 멀리 두고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별을 생각한 적은 많다.
하지만 순서가 뒤바뀐 그런 이별은 꿈도 꿔보지 않았었다.
그렇게 대비하지 못 한 이별을 현실로 맞이했으니
그 게 현실감이 있을 리 없었고,
아직도 난 지연이와 관련된 것들이 눈에 띌 때마다
다시금 이 현실의 실로 비현실적인 면에 대하여
분노할 뿐이다.

지연이가 쓰던 일어 참고서의 앞 장에
지연이가 써 놓은 이름이 보인다.



지연이는 자기 이름이 너무 흔해서 싫다고 했었다.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것도 미안해 진다.
예쁜 이름이라 생각하고,
한자로 Intellectual Lady의 의미로 지은 이름이었다.
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가 되라고...

지연이가 스스로 택한 이름은 "혜성"이었었다.
언젠가 집사람에게 그런 이름을 지연이가 좋아하여,
친구들에게 그렇게 불린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사실 그 땐 그 게 혜성인지, 해성인지조차 별 관심이 없이
"원 별로 좋은 이름도 아니고, 꼭 사내 놈 이름 같은 걸
걔가 왜 좋아하지???"하고 지나치듯 얘기했을 뿐이다.

그러다 그 애가 사용하던 일어 참고서의 저 이름을 보면서
그제야 걔가 말한 혜성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애 떠난 지 2년 반 정도가 되었을 즈음에야 그 의미를 안 것이다.
Comet의 혜성(彗星)이었다.
토성과 같은 환 위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성" 자의 "ㅇ" 자 대신 별이 그려져 있다.

지연이가 99학번이란 걸 따로 생각해 본 일은 없었는데,
그 이름 위에 쓰여진 숫자를 보며,
그 애가 99년에 대학에 들어갔었다는 걸 새삼 생각해 본다.
99년이라면 왠지 벌써 머릿속에서 먼 햇수로 생각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2001년은 뇌리에 너무나도 프레쉬하다.
햇수로 겨우 3년이라니,
아픔만 가지고 생각하면 그 열 배 정도는 세월을 산 것 같은데...

삶이라는 건 끊임 없는 반복이다.
그 삶의 반복처럼
"혜성"의 삶도 반복된다.
지연이도 혜성처럼
한 번 간 것으로 그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찾아오는 별이기를 바란다.

하긴 안 오면 어떻겠는가?
가지 않고 마음에 있는 걸...
흐르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변화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어제, 6월 13일.
지연이의 3주기.
작열하는 태양을 보니
지연이가 떠난 비오던 날의 음울한 추억보다
그 사흘전까지 우리와 함께 하던 아이를
화장하고, 한줌의 재로 변한 그 애를 가슴에 안고,
선산(先山)을 향하던 때의
어리둥절함,
비현실성,
비통을 참고 달관한 듯 담담하려 했던 어리석음,
막막함,
삶에 대한 회의,
신에 대한 원망 등이
다시 뇌리를 스쳤다.

마치 그 날이 지연이가 떠난 날임을 모르는 것처럼
그 애의 엄마와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대전에 갔다.
거기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뭔가를 성취한 사람들의 흐뭇한 미소를 보며,
애써 아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차의 지붕을 열고 달렸다.
어제 비가 오지 않아 그래도
맑고 화창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집에 돌아와 이젠 하나 뿐인,
키가 엄청나게 큰 작은 놈을 보며,
대견함을 느꼈다.
속으로만 그 애에게 물었다.
"현근아 오늘이 누나가 떠난 날이로구나.
넌 그 걸 기억하고 있니?"
그렇게 말없는 대화보다
거침 없이 지연이와 함께 하던 때의
아름다운 기억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면...

'그런 날은 앞으로 없으리라.'
그 걸 알면서도 부질 없는 희망을 되풀이한다.
한 번 간 혜성처럼
모든 게 되돌아 오면 좋으련만...

 



- Spark: 난 아직도 우리 드림위즈의 지연이 메일 계정을 지우지 않았다. 거기 몇 개의 편지가 있었다. 아래 편지를 보며, 그 애는 엄마의 친구로서 오래 함께 했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 아이를 잃은 슬픔은 성애가 가진 슬픔의 백만분의 일도 안 된다는 걸, 난 안다.



2000년 9월 15일, 제 엄마의 생일에 지연이가 쓴 편지이다.
생일 카드를 엄마에게 주고, 나중에 쓴 편지인 것 같다.
엄마가 백(bag)이 필요하다는 얘길했었나 보다.
내게 얘기했더라면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살 돈을 줬을 텐데...
지연이가 도자기를 전공하다 보니 비싼 과제 도구를 많이 샀던가 보다.
그래서 도자과도 미술대학처럼 들어가는 돈이 많다고 느꼈던 것 같다.
또, 그 때문에 부모에게 돈 달라기가 쉽지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는 가고 없는데, 그 아이가 제 엄마에게 썼던 글은
마치 그 애가 엄마 옆에 앉아 엄마에게 말하는 듯 하다.

그 말투와 몸짓이 그립다.
마치 엄마가 제 친구인 것처럼 얘기하던 그 애.

 

Jenny_9568.JPG

- Jenny Park at 19.

 

 

From : 211.45.66.133

 

 

 

 

장성철 이런 소중한 글에 댓글다게 부담 되네여 둘째 아들넘 태어나자 마자 길병원서 두번 서울대 병원서한번의 대수술후 엉덩이 전체를 덮는 수술을하는동안 수없이 흘렸던 눈물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말 격어보지 못한분들은 절대 알지 못합니다 항상 박사님이 부러웠썼는데 속엔 이런 아픔이 있었군요... 2004/06/15 23:52:17
220.126.1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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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철 그날이었군요... 2004/06/16 12:54:32
203.240.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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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욱 '나리'보다 못한 놈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개"만도 못한 놈도 이렇게 낯짝이랍시고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선 더욱 힘내시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날이 오면 지연이를 떳떳하게 만나실 수 있게 될 것이니까요. 용서 하십시오. 2004/06/23 03: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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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찬 ... 2004/06/23 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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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탁 제가 이곳을 잊지 않고 있는것이 별 위로가 되시진 않겠지만... 가끔 들러서 박사님과 함께 지연일 추모합니다... 2004/07/19 13: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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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아는분을 통해 우연히 들어와본 이곳에.. 연이아버님의 글을 읽고... 오전내 고인눈물 삼키느라 가슴이 뻐근합니다... 잠시들른 맘이 이럴진데.. 감히 상상을 해봅니다.. 가족을 이루며 갖게되는 행복과 사랑보단... 그걸로 인해 희생해야하는 내욕심들로.. 자칫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벼히 여김을 깊이 반성합니다... 혹 이런글이 다시한번 상처가 되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라며... 감사합니다.. 2004/07/26 14: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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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환 몇번씩이나 글을 올렸다 지웠다 반복하다 정작 하고싶은 말은 못하고 그냥.... 2005/04/12 14: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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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탁 예전에 Dr. Spar's에 많이 들러 좋은내용들 보다가...이곳에도 들러 몇자 남겼었는데...시간이 지나 또 생각나서...들렀습니다...잊혀지지 않는다는것이 위로가 될까요... 2009/07/28 14: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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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오랜만에 들렸어요. 지연이에 대한 기억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그리운 Jenny 2009/09/13 23:08:39
98.222.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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