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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제목 : 살다 보면 후회도 있다. / 박순백 - 2004-03-15 17:15:50  조회 : 4266

살다 보면 왜 후회할 일이 없겠는가?

가끔 우리 지연이의 전화번호가 궁금한 적이 있다.
011-xxx-1936으로 통일된 우리 가족의 휴대전화 번호였는데...
지연이가 떠난 후,
난 자꾸 지연이에 대한 생각을 떨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 아이의 번호를 잊기로 했다.

잊혀질 리 없는 번호인데도 잊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 걸 잊으려고 내가 가진 모든 수첩에서,
또 Palm 주소록에서도
그 아이의 이름을 지웠다.

그러다 어느 땐가 갑자기
난 내가 그 애의 전화 번호를 잊어 버렸다는 걸 알았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그 때 얼마나 그 애에게 미안했던지...
그래도 지우려고 노력했던 그 숫자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우연히라도 생각날 만 하지 않느냐고 조그맣게 절규도 했는데...

그 번호를 가족들에게 물을 수도 없어서
난 아픈 마음을 지니고 그냥 살았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이제야
난 그 애의 전화 번호를 찾았다.
모두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그 걸 잊을까 두려워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감춰둔 게 하나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은 Palm에서도 지워졌지만,
집사람의 전화 번호를 적을 때,
거기에 남겨놓은 지연이의 전화 번호를 보고
Palm의 화면을 캡춰해 놓은 게 있었던 거다.
지금은 집사람의 이름 아래,
그 아이의 전화 번호가 있을 리 없다.

잊기 위해 폴더까지 감춰놓았었음을 이제 알았다.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그 걸 되찾게 되었다.



'그래 9939!'
그 애의 일부를 되찾은 것 같아 기쁘다.
모든 걸 잊을까 두려워 저 화면을 캡춰해 놓은 거였다.
그 게 지금은 위안이 된다.

그 감춰진 폴더에는
다른 걸 스캔해 놓은 것도 있었다.
주말이면 사용하곤 하던 박스터의 연료대이다.

그 애가 떠나던 해의 6월.



그 아이와의 드라이브도 포함된 5월.
그 아이를 떠나 보낸 6월.
정신을 차리려던 그 후의 몇 달.
지연이 일로 상심하셨던 아버지를 살려내고자
아버지와 함께 드라이브하던 10월.

그런 세월의 기록이
저 한 장의 종이 위에 낱낱이 나타나 있다.

살다 보면 잊혀질 수 없는 걸
억지로 잊으려 노력한 걸 후회할 때가 있다.
잊으려는 비겁함보다 품으려는 노력이 더 낫다는 걸,
살면서 깨닫게 된다.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내 아이를...

 

From : 211.45.66.133

 

 

 

 

최성우 박사님의 글을보며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네요. 지연님도 아버지가 지연님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기를 더이상 바라시지 않을 것입니다 내세가 있다면 다시 만날것이고 전생과 미래의 생이 있다면 이생에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었으니 틀림없이 다음생에 만나실겁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평안 하셔서 지금처럼 많은 인라이너의 정신적 지주로 오래 계셔 주시기를.. 2004/03/22 14: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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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 안그래도 와인 한 잔 하고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데 박사님 마음에 눈물이 흐릅니다. 어떻게든 산자는 살아야 겠죠. 글과 말이 짧아 무슨 위로가 되드리겠냐마는 박사님 힘내세요 2004/04/02 20:05:00
220.79.9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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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소 잊으려 하실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프실겁니다..자연스럽게 떠나갈때까지 기다리신다면...마음이 조금이남아 덜 아프시겠죠..힘내세요.. 2004/04/14 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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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현 딸자식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이기에 그 맘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거라 생각해 봅니다. 처음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 눈물을 흘린후론 의식적으로 안들어오려 합니다. 또다시 눈물 나는 것이 두려운 까닭에... 더불어 오픈되어 있지만 은밀한 곳인양 느껴지기 때문에... 망각이 신이 주신 가장 큰 행복이라지만 절대로 잊을수 없는것이 있는듯 합니다. 2004/04/23 18: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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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현 아이의 사진을 추억하며 맘대로 꺼내 볼수있을때까지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아이를 생각하면 슬픔과 아픔만이 떠오르는게 아닌.. 아름다운추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게 되려면 또 얼마나 많은시간 가슴을 아려야 할까요. 제 마음이 미어질것만 같습니다. 지연양은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빠가 딸을 사랑하는것만큼 지금도 아빠를 사랑하고있을것입니다. 2004/10/28 16: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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