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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2001.09.11 13:30

추억으로 그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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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목 : 추억으로 그리운 곳 / 박순백 - 2001-09-11 13:30:04  조회 : 2313
추억으로 그리운 곳

이제 연이가 간 지 석 달이 되어 온다.
많이 잊고 살게 된다는 석 달.
가슴 에이는 듯 강한 슬픔은 사라지고,
아련히, 은은히 그 슬픔이 멀어지는 듯,
가슴속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감을 느낀다.

'그래 많이 잊었구나.
처음의 그 아픔에 비하면 꽤나 많이 잊었구나.'

처음엔 가슴 한 쪽을 칼로 베이는 듯
강한 아픔과 함께 밀려오던 슬픔이었는데,
이젠 깊게,
온몸에 퍼진 슬픔 같은 것이,
가끔 다가올 뿐이다.

그럼에도 난 단 하루도 그 앨 잊은 일이 없다.
그래도 이젠 견딜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집사람 성애가 미국으로 갔다.
일주일간의 여정(旅程)이다.
지연이 잃은 슬픔을 잊게 하려고,
무리하게 권했던 국제인라인스케이팅협회의
프로 강사 자격증 시험.
집사람은 레벨 1 자격증을 땄고,
미국 미네소타에서 열리는 그 협회의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해 오늘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길.
연이 때문에,
아니 연이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집사람은 그런 자격증을 땄고,
그때문에 오늘 떠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항가는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아, 공항이라니......'

지연이와의 신공항 드라이브 이후에
처음 가는 길이다.
그 때 영종도, 신도, 시도, 모도에 다녀오고,
그로부터 겨우 이틀의 시간이 지난 수요일에
지연이가 홀연히 우릴 떠나가지 않았던가?

[June 10, Sun.] 신도, 시도, 모도 세 섬을 가다.

집사람은 신공항이 생긴 이래 처음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난 당연히 지연이 생각을 했다.
'얘기할까, 말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쓴 글을 읽었기에
지연일 생각하고 있을 집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척 지연이 얘길 꺼냈다.

"가다 보면 신공항 기념관으로 빠지는 길이 있지.
지연이와 거길 갔었는데, 거길 들렀다 갈까?"
다행히 잠잠한 목소리로
집사람이 그러잔다.
거기 들렀다.
지연이와 함께 차를 세웠던 그 자리에 차를 세우고,
그 애와 함께 올랐던 계단을 올라,
그 애 사진의 배경이 된 기념탑도 보고,
멀리 영종대교의 사장교각이 보이는 휴게소,
지연이의 사진을 찍어 줬던 그 자리 부근에서
집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지연이를 생각하면서...


- 지연이(오른쪽 사진)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선 성애.

'벌써 석달이라니...
벌써 하나의 계절이 흘러갔다니...'

연이를 떠나 보낸 후 정지한 듯 안 가던 세월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단 말인가?
하긴 이렇게 빨리 세월이 흘러야
그 앨 다시 볼 날이 오겠지.
이제 시간을 초월한 삶을 사는 그 애에겐
기다림의 지루함도 없을 터이니,
살아남은 우리들은 한껏
보람있는 삶을 향해 뛰어가고,
세월도 우리와 함께 뛰어
우리 모두 다시 만날 날을 향해 가리라.



공항에 가서도
난 집사람에게
지연이와 함께 아침을 먹었던
조선호텔 양식당 얘길했다.
그게 저기였노라고...
하지만 차마 그 자리에 다시 가자고 할 수 없어
파티오란 뷔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 애가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 오늘 우린 셋이서
공항 한 구석에 앉아 웃고,
떠들었을 거다.
그리고 난 그 둘을 배웅하고,
혼자 돌아왔을 거다.

간 길을 되돌아 혼자 오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지연이와 함께 갔었고,
지연이와 함께 돌아왔던 그 길을 밟아
나 혼자 되돌아왔다.

언제 한 번 기회를 내어
집사람과 함께
지연이와 내가 함께 갔던
그 신도, 시도, 모도의
삼도에 가 보기로 했다.

거기 가면 그 애의 모습이 떠오르겠지만
그래도 거긴
그 애의 추억으로 인해
그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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