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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生者必滅)과 요양병원 의사의 현명한 판단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한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죽는다."는 얘기. 하지만 우린 그걸 알면서도 짐짓 아닌 척, 의도적으로 그런 현실을 무시한 채로 살아간다. 

 

어제 새벽 집사람(고성애)이 장모님께서 한 달간 입원하고 계신 집부근의 요양병원으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위급상황이 왔던 것이다. 난 세수를 하고 곧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상황이 좀 나아지는 바람에 난 집사람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나갔고 미리 아침을 먹은 처형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장모님은 1924년생(96세)이시다.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성악과 17회생으로서 당시의 전조선콩쿨대회에서 우승을 하신 일도 있는 음악인이다. 목사인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시고 중고교의 음악교사직에 계시면서 손위 처남과 집사람 두 남매를 키우며 거의 평생을 혼자 사신 장한 분이다.

 

연세를 고려하면 건강히 병도 없이 오래 사셨으니 언제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상할 리 없다. 그래서 남들은 호상(好喪)이라 할 것이나, 사람이 죽는데 어찌 호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장모님의 위급상황을 대했을 때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집사람에게는 그게 큰 아픔일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개 요양병원에 들어간 환자는 다시는 그 병원을 걸어나오지 못 한다고 한다. 워낙 삶의 말기에 이르러 일반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해지면 환자의 가족들이 편하잡시고 들여보내는 곳이 요양병원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 하겠다. 그러니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서양의 지하감옥(dungeon)과 같은 절망적인 장소이다.(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c)Brain이 속에 감춰놓고 있던 말, Welcome to the Dungeon!"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 으스스한 글귀가 등골을 서늘하게 때렸었는데...)

 

요양병원에 갈 때마다 난 착잡했다. 병상이 많은데 그 병상이 다 꽉 차 있다. 당연히 거기 젊은 환자는 없다. 모두 연로한 환자들 뿐이다. 그들이 병상에 누워 기다리는 게 뭔지 뻔히 알 수 있다보니 그들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이다. 다인실의 환자들은 주변의 환자가 위급상황을 맞고, 혹은 죽어나가는 걸 보며 체념하고, 달관하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부터가 지옥의 한 단면이 아닌가?

 

요양병원 환자의 가족들은 자기들 편하잡시고 환자를 간병인에게 맡긴다. 그러다 보면 아주 위중한 상황에서는 가족이 임종을 지켜보지 못 하는 상황에서 간병인이나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환자 혼자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뒤늦게 달려온 가족들은 효자, 효녀인 양 오열을 하고...

 

아래는 한 요양병원의 의사가 한 말이다. 그 안에서 본 걸 있는 그대로 쓴 것이라는데 백 번 고쳐 생각해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병원에 오는 가족들을 보면 그 각자가 누군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아래와 같이 쉽게 구별된다는 것이다.

 

"아들"은 머리 싸매고 한숨만 쉬고 있고,

"며느리"는 문 근처에서 휴대폰만 만지고 있고,

"사위"는 음료수나 마시고 있고,

"딸"만 엄마 손을 잡고, 얼굴을 만지며 울고 있단다.

 

아들은 속상하나 표현이 서툴고,

며느리는 시월드에서 한 치 건너에 존재하며,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끝내 남이다.

딸만 자식 노릇을 한다.

 

난 음료수나 마시고 있다는 사위이고, 집사람은 끝까지 엄마를 챙기는 딸이다. 실로 그렇다.

 

어제 아침도 우리 둘이는 아침식사를 하고 와서 약간 상태가 나아진, 눈도 못 뜨고 혼수상태에 계신 장모님을 보았다. 집사람은 장모님의 귀에 대고 혼잣말을 많이 했다. 어머니를 위로하고 잘 살아오셨다는 치하를 하고 있었다. 근데 요양병원 의사나 간호사의 전언에 의하면 그런 상태의 환자도 의식이 있고, 귀가 열려있어서 대개 그 말을 알아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소리만 해야한단다. 말 못 하니 듣지도 못 할 것이라고 환자가 들어서 섭섭할 그런 얘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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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집사람은 지난 한 달간의 요양병원 경험을 통해 그걸 실감했다고 한다. 호흡기를 달고 숨을 몰아쉬시는 상황에서도 귓속말을 하면 호흡이 진정되어 편히 쉬시는 듯하다고...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하면 힘 없는 장모님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가끔 눈물이 흐르는 식으로 반응이 온다고... 항상 그 귓속말 대화에 대한 응답이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10/18까지 그룹사진전시회를 해야하는 집사람이 손님을 맞기 위해 갤러리에 가야했다. 장모님의 상태가 좋아지셨기에 집사람은 그런 귓속말 얘기를 어머니에게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 귓속말에 잘 다녀오라는 듯이 장모님이 편한 숨을 쉬시는 걸 보며 안심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4층 엘리베이터 옆의 요양병원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우리가 사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이고, 그 뒤로 파아란 가을 하늘이 보인다. 항상 전설처럼 아름다운 가을의 하늘이다. 하지만 어제의 복잡한 심상을 통해 보는 그 풍경은 왠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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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오히려 더 무디어지는 감이 있다. 그건 젊을 때처럼 그걸 애써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에 적응하고 그에 순응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장모님을 곧 떠나보내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도 그에 익숙해지지 않은 내 자신을 보았다. 

 

딸은 엄마의 평생친구이고, 사위는 남이다. 내 부모님을 떠나보낼 때보다 더 담담한 마음이다. 오히려 이 때 더 나서서 정신 없을 처나 처남을 위해 좋은 사위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걸 아는데 난 그렇지 못 한 사위인 것 같다. 항상 여걸처럼 나서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집사람이 역시 제일 큰 몫을 하고 있다.

 

장모님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 집사람이 어제 저녁이 고비라며 요양병원에서 밤을 새웠는데, 새벽에 집에 들어서며 "엄마 돌아가셨어요."라고 했다. 집사람이 어제 처남에게 연락하여 둘이 임종을 했다고 한다. 집사람은 또 귓속말로 마지막 대화를 했는데 "아주 훌륭하게 남을 위해 베풀면서 잘 사셨고, 수고 많으셨다. 엄마에게 그걸 배워 그렇게 살아올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한다. 그 말씀을 들으셨는지 그 후에 가쁘던 숨이 잦아들면서 영면에 드셨다고... 

 

장모님께 잘 해 드리지 못 한 무뚝뚝한 사위로서는 죄송할 뿐이고,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계시게 되길 빈다.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오신 분이니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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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6'
  • profile
    조용훈 2019.10.16 17:56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고인께서 주님의 축복으로 평안한 천국에서 안식하시길 기도합니다.
     

  • profile
    박순백 2019.10.18 18:34
    감사합니다.^^
  • profile
    윤세욱 2019.10.17 02:38

    고인의 명복을 삼가 기원드리며,

    상심이 크실 유족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 profile
    박순백 2019.10.18 18:35
    고마워. 올리자마자 이 글을 읽고 텔레그램을 보냈던 거구만...
  • ?
    김복중 2019.10.17 13:28
    글을읽고 나니 내가 처한 상황과 하나에 다름없어 남에 일 같지 않습니다.
    부디 원하시는 곳으로 가시기를.. .
    고인에 명복 빌겠습니다.
  • profile
    박순백 2019.10.18 18:35
    예,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겪는 일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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