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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가을이 오면...

 

왠지 모르지만 가을은 추억을 부르는 계절인 듯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산야가 노랗게 물들어 갈 때면 지나간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개는 자신이 살아온 궤적과 관련된 일들이고, 우린 되살아난 기억에 미소짓거나, 씁쓸한 표정이 되거나, 행복감을 느끼거나, 다시 생각하기 싫어서 머리를 젓기도 합니다. 이런 계절에 듣는 노래들 역시 추억을 돌이키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노래는 여러 개가 있을 텐데, 당연히 제게도 그런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 노래들을 찾아듣곤 합니다. 그런 노래들 중 하나를 유튜브 동영상에서 찾아 들었는데, 그에 대해서 어떤 분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더군요.

 

https://youtu.be/grjrjLAoIH4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참 좋다. 이런 영상을 보고, 옛 노래를 들으면..., 저 시대에 살아본 적도 없는데 저 시대가 너무도 그리워진다... 난 왜 이렇게 늦게 태어났을까.. 요즘엔 왜 이런 노래가 없을까...“

 

오, 이런 놀랍고도 풍부한 감성이라니... 저야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어서 당연히 그 노래가 좋다고 하고, 그게 추억의 일부이지만 그 시대엔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댓글만으로 보아도 그 노래가 던져주는 감성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게 분명하니 저런 댓글을 쓴 것이겠지요?

 

이 댓글을 쓰신 분은 BettyBlue란 아이디를 가진 분인데 부모님이 50대라는 걸 보면 20대 초반밖에는 안 되는 젊은 세대인 것 같습니다. 베티 블루. 1986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들은 노래의 원작은 1975년에 나온 것이고, 그 번안곡은 1979년도(5월)에 나온 것입니다. 90년대 말 정도에 태어난 분이 80년대의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것이라 하겠지요.

 

그 노래는 바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란 배인숙 씨의 노래입니다. 배인숙이란 이름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생소하겠지요? 그분은 저보다도 연상인 분입니다. 춤을 곁들여 노래하는 현대적인 걸그룹의 원조격인 펄시스터즈(Pearl Sisters)란 자매 2인조 중의 동생입니다. 이들은 이미 1969년에 ”커피 한 잔“이란 노래로 가요대상을 받은 유명한 걸그룹이었습니다. 소녀시대가 가요대상을 받은 최초의 걸그룹이라고 잘못 알고있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게 놀라운 일이겠지요? 게다가 노래 제목을 듣고 ”그 시절에도 커피를 마셨어요?“라는 얘기까지하는 젊은 친구들에 이르면...ㅜ.ㅜ(얘들아 그 시절에도 멋쟁이들은 포저스/Forgers라고 큰 깡통에 든 미제 원두 커피 마셨었어. 그 땐 믹스 커피도 없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1970N00221_i1[1].jpg

 

 

하여간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아름답고도 슬픈 노래입니다. 그 가사 자체가 이별의 추억을 그리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듯, 잔잔한 물결이 이는 듯한 부드럽고도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전 첫눈에 반하듯 처음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주 여리게 예쁜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 가수가 누군지를 궁금해하면서 그 노래를 들었고, 바로 그 노래에 반해 버린 거죠. 나중에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펄시스터즈의 배인숙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로서는 고무공처럼 팡팡 튀며 경쾌하면서도 흥이 나는 현대적인 감각의 노래를 부르던 신중현 사단의 배인숙이 그런 조용하면서도 감성돋는 노래를 불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가 담긴 LP 판을 두 장 구입했습니다. LP는 듣다보면 계속 잡음이 늘어나게 마련이기에 그에 대비한 일이었던 거죠.(젊은 아가들아, CD는 잡음이 없고, 많이 듣는다고 잡음이 더 늘어나지 않지만 아날로그 음반인 LP는 그렇단다.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노래는 많이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나서 노래까지 늘어지곤 했었어. 너희들에겐 이게 뭔 얘긴지 짐작도 안 가겠지만...-_-)

 

alain-barriere-and-noelle-cordier-tu-t-en-vas-ariola.jpg

 

그러다 이 노래의 원작이 외국곡이라는 걸 알고 약간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그런 좋은 노래는 그 자체가 원작이어야만 할 것 같다고 느낀 것이지요. 뭔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어야할 것이 처음부터 오염되어 있었다는 안타까운 느낌 같은 거? 그래서 원작을 들어봤는데, 번안곡 자체는 원작을 거의 해치지 않은, 거의 편곡이 안 된 상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프랑스 노래(샹송)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들 중 일부는 왠지 어색하기도 했고, 노래하는 기교도 낯설었습니다. 오늘 다시 그 두 개의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역시 세월이 가니 감성에도 변화가 오는지 Alain Barrière가 부른 원작인 Un Poète(시인)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그리고 감미롭고도 멋지게 들렸습니다. 역시 샹송이 가진 부드러움과 멋, 그리고 그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이 남다릅니다. 전에 딱 한 번 들어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처음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https://youtu.be/3SVaSLt0x88 <- Un Poète

 

그래서 그 내용이 궁금하여 가사를 찾아봤습니다. 고교시절에 배운 어설픈 프랑스어 실력으로는 제목과 극히 일부 내용밖엔 알 수가 없기에 그걸 구글 번역기를 돌려 영어로 읽어봤습니다.(그런데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뭔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번역이 나옵니다. 하지만 역시 계통이 비슷한 영어로 번역하면 대체로 의미가 통하는 문장과 단어로 바뀝니다. 물론 거기도 약간의 오류는 있지만...) 그 노래가 시인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 내용이 그처럼 철학적인(?), 인생에 관한, 삶을 관조하는 내용이라는 걸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통해 불어 원문에서 직접 한글로 번역된 내용이 있는가를 찾아보니 당연히 잘 번역된 내용이 있더군요.^^

 

그 길에 그 두 노래에 관한 글들을 살펴보니 역시 제 생각과 대동소이합니다. 배인숙의 노래가 번안곡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실망하는 것마저도 저와 비슷했고, "그래도 원작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가 더 좋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뒤늦게 알게 되었으나 원작을 들어보니 "원작 만한 번안곡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리메이크가 원작을 압도하는 흔치 않은 곡이라는 찬사를 하는 분들까지 있던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전자에 속합니다. 같은 노래에 서로 다른 가사가 붙어있는데도 멜로디에 대한 느낌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노래들은 가사가 은유적이고도 시적(poetic)입니다. 지금의 여러 노래 가사들처럼 직설적이거나 비속한 경우는 극히 드물지요. 그리고 이 노래는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는데, 자우림, 이수영, 이광조, 김희진 등의 다른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은 그들 나름의 감정과 노래의 기교를 담고 있어서 찾아 듣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추억을 부르는 계절에 이별의 찬란한 아픔을 감미롭게 노래하는 배인숙의 노래를 들으니 왠지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가슴까지 아파지지 않는 게 섭섭할 따름입니다. 어쨌건 이 노래로부터 자신이 살아보지 못 한 시대에 대한 그리움까지 찾아낸 한 젊은 친구의 놀라운 감성이 부러워질 뿐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잉크빛이란 말에도 갸우뚱하던데...(잉크를 본 일이 없어서 그 빛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고 하더라고요.ㅜ.ㅜ) 그래도 같은 노래를 듣고 우리를 스쳐 지나간 그리움에 물들고, 추억에 물드는 감성에서 지나간 세대와 공감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un-poete.jpg

https://ko.wikipedia.org/wiki/배인숙

 

 

참조: http://www.drspark.net/index.php?document_srl=4114104

위 링크의 글을 간단히 썼다가 페이스북에 위의 본문과 같은 글을 올렸다. 가을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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