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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애의 Naver 블로그 "디카로 그리다", 캐시미어 코리아 블로그, 캐시미어 코리아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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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대수필 봄 호로 등단해 수필가로서 처음 쓰는 글이어서 일까요? 조금 떨리네요.

이 글은 "청색시대 여름" 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사진은 제가 임의로 넣은 것이고 문예지에는 글만 실립니다.

 

 

봄은 어머니의 버선발이다.

 

 

고 성 애

 

 

어느 날 문득 창가에 붉게 핀 꽃,

어머니가 오셨나?

 

어느 날 창가에서 흰 빛을 발하는 우아한 꽃,

어머니가 또 오셨네.

 

이름만큼이나 곱디고운, 함초롬히 피어난 꽃,

봄이 오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찾아오시네.

 

봄은 사랑이다.

봄은 어머니의 버선발이다.

봄은 그리움이다.

 

시어머니가 살아생전 아끼시던 군자란이 예쁘게 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누군 어머니가 유난히 아끼시던 자개장을 가져가겠다거나 모피 코트들을 가져가 자신과 일하시던 아주머니와 나눠입겠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시던 화초 몇 그루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마루 위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사진첩 몇 권과 어머니 주민등록증을 챙겨왔다. 그 때 문득 나는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 아이들이 심란하지 않게 사진첩들을 미리 다 정리를 해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군자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노라니 잊고 있던 어머니가 새삼 그립다.

 

어머니는 2007년 3월에 돌아가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딱 1년 만이다. 그 때 어머니는 매우 건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세상과의 연을 더하고 싶지 않으신 것처럼 삶의 끈을 놓으셨다.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충격이 배우자의 죽음이고, 그 다음은 자식의 죽음이라고 했던가? 그 당시 왜 더 절실히 어머님을 위로하고, 삶의 기쁨을 드리지 못 했는가 지금도 후회스럽다.

 

연애 시절,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 있던 3년 동안 봄에 어머니를 찾아 가면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온 것 마냥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주셨다. “아이구, 우리 큰 애 왔구나!” 지금도 어머니의 맑고 청아한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게 늘 편안했다. 남자친구도 없는 집에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었던 건 맘이 편안해서였고, 한편으론 어머니가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던 때문이다. 아들이 군에 가고 난 후, 1년 동안을 끼니마다 밥을 지어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두셨다던 그런 어머니였기에...

 

김장때 오겠다고 하면 어머니는 한사코 뭐 하러 먼 길을 고생스레 오느냐고 오지 말라 하셨다. 그래도 나는 “김장 김치 먹으러 올게요.”하고는 그날 어머니께 달려가곤 했다.

 

결혼을 하고 배가 불러오면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버리신 친정어머니가 유달리 그리웠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친정어머니와 비슷한 모습이나,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만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어머니는 내게 필요한 것을 늘 챙겨주시고, 임부복까지 사 주시는 거였다.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 돌보랴, 가정 돌보랴, 박사과정 공부까지하랴 힘겨울 때도 어머니께서 친척 한 분을 보내주셔서 아이를 돌보게 배려해주셨다.

 

그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는 당연히 시댁에 대한 불평이 하늘을 찔렀지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죽은 체 있었다. 시어머니에 대한 자랑을 해도 한나절이 모자를 판에 다른 이야기를 할 계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아무리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고 해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결혼 전에나 결혼 후에나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불렀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것이었고, 내게 있어 그 어머니는 친정어머니 이상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대학원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자 냉장고가 새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머니가 냉장고를 배달시키신 후 기존의 냉장고 안의 음식들을 새 냉장고로 다 옮겨주고 가신 것이었다. 50대 중반의 어머니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어머니는 그런 일을 다반사로 해주시곤 했다. “공부하는 애가 언제 시간이 있어서 스테인 냄비들을 닦겠니?” 하시면서 싱크대 청소며, 후라이팬과 냄비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놓고 가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모시나 린넨으로 새 옷을 장만하실 때면 나를 불러, 내 옷을 하나도 아닌 두 개씩 맞춰주시곤 했다. 내게는 이미 아이 둘이 있었기에 아이들 뒷바라지에 내 옷을 새로 장만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아이 낳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새댁의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내 부족한 부분을 하나 둘 가득 채워주시곤 했다.

 

사실 그 때의 내 상태라면 구박받고도 남을 처지였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그런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더 많은 사랑을 부어주시곤 했다. "우리 큰 애, 우리 큰 애"하며 얼마나 큰 며느리 자랑을 하고 다니셨는지... 내 어머니 만큼, 아니 내 어머니 이상으로 더 많이 날 행복하게 해 주신 분, 그 어머니가 보고싶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들고 온 군자란, 스파티필름, 학란(Walking Iris)의 세 화분은 내게 어머니를 더욱 생각나게 한다. 눈 감으면 살아계신 듯한 그 모습, 화려하게 물든 단풍나무가 가득한 창덕궁 앞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찍으신 사진 속 어머니는 군자란과 많이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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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빛을 발하는 우아한 꽃, 스파티 필름. 한국적인 너무도 한국적인 여성, 한복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던 어머니는 그 단아한 모습이 스파티 필름과 흡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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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학의 자태를 지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학란은 흔하지 않은 화초이다. 1년에 딱 한 번 피고, 피었다가도 몇 시간 만에 시들어 떨어진다. 어느 해인가는 커튼에 가려 식구들이 보기도 전에 혼자 피었다가 꽃이 져버린 일도 있었다. 아름답고도 고고한 저 꽃의 짧은 생이 가져다주는 아쉬움만큼 귀하고 소중한 꽃이다. 워킹 아이리스란 영어 이름은 그게 꽃대가 올라와서 그 중간에 꽃이 피는데 그 꽃대가 땅에 늘어져 흙에 닿으면 뿌리가 내려서 옮겨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가시는 걸음마다 생명을 심는 꽃이라니... 살아생전 주위에 언제나 나눔이라는 사랑의 손길을 베푸시던 인정이 넘치던 분, 학란은 그런 어머니와 제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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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잊지 않으시고 11년째 변함없이 나를 찾아주시는 어머니. 나의 게으름 때문에 거름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는 꽃들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날 때면 숨겨 두었던 연두빛 그리움이 새 싹 올라오듯 쑤욱쑥 고개를 내민다. 올해는 꼭 좋은 거름을 사다 꽃들에게 뿌려주어야지. 어머니 만나러 먼 길 가는 수고로움마저 덜도록 매년 햇볕 가득한 창가로 어김없이 찾아와 주시는 내 어머니. 나 살아있는 동안 매일 고마운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살아오면서 이다음 세상에 남편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사람을 나는 단 한 명 보았을 뿐이다. 그만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속에서 스물여섯, 스물일곱 해 동안 전혀 달리 산 생면부지의 남들이 만나 함께 생을 살아내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다음 세상이 존재한다면 나는 어머니와 다시 만나 못 다 나눈 고부간의 진한 사랑을 더 오래도록 나누고 싶다. 나의 바람은 받기만 하던 위치에서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위치로 바뀌어 태어나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나의 별로 돌아가 고운 향기 나는 꽃으로 피어나 어머니 살아 계신 창가로 찾아가 뵙는 것이다. 어머니와 나의 새로운 첫 만남인 셈이다. 그 때 50대 초로일 그 분은 꽃인 날 알아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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