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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스키장들
2018.03.12 11:33

레벨스톡 스키장 여행기: 여섯째 날 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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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청명한 하늘이다. 오늘 아침식사시간에는 처음 보는 부부가 합석했다. 미국에서 왔는데 뉴멕시코의 집에서부터 은퇴기념으로 여행중이라고 한다. 뉴멕시코? 미국 최남단? 남편과 함께 운전해서 미국의 여러 스키장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고, 캐나다를 돌아서 다시 남하하면서 옐로우스톤을 거쳐서 돌아갈 예정이란다. 대단하다. 아침에 스키보관실에서 보니 오래된 투어링부츠와 오래된 투어링 스키가 있다.

 

오늘도 날씨는 파란 하늘이다. 아직은 그제 내렸던 파우더가 남아있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스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요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스키를 탈 수 있는 날이 단지 이틀뿐이라 힘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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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면 눈이 남아있을까 고민 끝에 역시 North bowl이 제일 나을 것 같아 다시 Lemming line으로 스키를 둘러메고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다 살짝 뒤를 보니 낯익은 모습이 보인다. 어제 같이 스키를 탔던 독일가족이 서있었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다시 걸어올랐다. 약간의 횡활강 끝에 Sweet spot 입구에 다다랐다. North bowl에 들어서니 제법 파우더다운 눈이 남아있다. 쉽게 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피로가 누적되어있는 것이 느껴진다. 가장자리로 크게 돌아서 Big woody로 내려왔다.

이제는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어제의 숙제인 파우더스킹을 연습하기 위해 아무도 밟지 않은 파우더가 남아있는 Upper south bowl로 향하기 위해 Subpeak로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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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스키를 매고 산을 오르는 것에 질색하는 아내는 정말로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올라가려면 보통 30분정도 걸린다기에 큰 마음을 먹고 스키를 질끈 동여메었다. 한 열 발자국 정도 올라갔을까, 벌써부터 숨이 차오른다. 문제는 밟을 때 마다 무너지는 연약한 발판과 두 손 두 발로 기어 오르는게 낫다 싶을 정도의 경사도였다. 자주자주 쉬고 싶어도 길이 한 줄 뿐이라 뒷사람이 추월하게 할 수도 없고, 옆으로 비켜주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깊은 눈과 가파른 경사가 체력을 자꾸 빼앗았다. 처음에는 옆으로 비켜주며 돌앉아서 쉬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웃으며 인사를 했으나, 이내 기어오르던 자세 그대로 옆으로 두 세걸음 게걸음으로 비킨 다음 엎드린 채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최대한 품위를 유지하려 애썼으나 아내는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 몇이 나를 보고 아내를 가리키며 저사람 괜찮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냥 저렇게 쉬는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조금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편하게 쉬고 싶었으나 소변자국이 몇 개가 있다.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측은한 마음이 먼저 밀려온다. 이제는 지나는 사람들도 인사따윈없고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기 바쁘다. 그 와중에 스키 두 대를 짊어지고 올라오는 사람이 있어 유심히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스키강사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어디든 먹고살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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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고행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30분정도가 흘렀다. 드디어 Subpeak에 올랐다.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스키장 전체가 파노라마로 보인다. 맞은편을 보니 더 멀리 걸어가서 Powder assault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암벽이 즐비한 가파를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긴 점프를 해서 내려오곤 한다. 대단들 하다.

한참을 휴식한 후에 약간의 횡활강 후에 Upper south bowl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다. 초행길이니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왠지 꺼림칙하다. 조금 더 나와보니 아무도 밟지 않은 파우더가 나온다. 환호성을 지르며 파우더를 날리면서 내려왔다. 아내도 파우더 스킹 연습을 하면서 내려왔다. 어제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내려오지 않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첫째는 의식의 사각이다. Subpeak에서는 North bowl로 내려가던가 끝까지 걸어가서 Upper south bowl의 동쪽 끝부분을 타고 내려온다. 올라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을 가로지르는 루트를 잡고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더 많이 걸어가서 Upper south bowl의 동쪽 끝쪽을 타면 조금 더 길게 탈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길이는 단 두 턴 정도이다. 게다가 그쪽이 더 많은 사람이 내려왔기 때문에 파우더가 많이 무너져있다.

잠깐의 파우더스킹 후에 Hot sauce를 지나 glade로 들어갔다. 너무 많이 힘이 빠져서 재미있게 내려갈 수가 없었다. 이후로는 평이한 슬로프로 내려가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Mackenzie outpost로 갔다. 여전히 파니니는 맛있고 스프는 훌륭하다. 휴식공간에서 빵을 먹으려고 했는데 안에 리처드와 하비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반갑기는 한데 왠지 좀 불편하다. 게다가 안에 자리도 없는 듯 해서 밖에서 일광욕을 하며 점심을 먹었다. 새들은 사람이 무섭지 않은지 근처에서 날아다니고, 그 중 한 마리는 내 무릎에 얼마간 앉아있다가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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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후 스키를 탈 시간이다. 그런데 아내는 많이 지쳐있다. 그래서 아내는 오후 스킹을 쉬고 Revelation lodge에서 쉬기로 했다. 나는 힘을 내서 한 번 더 Subpeak를 오르기로 했다. 그 곳은 일찍 입구를 닫는지라 힘이 있을 때 한 번 더 오르고 싶었다. 이번에는 거추장스럽게 캐리어로 묶지 않고 그냥 어깨에 둘러매고 올라갔다. 오르는 입구를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급한 탓도 있었다. 오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도 없어서 왠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서둘러 입구를 지나니 다행히 발판은 좀 더 단단해져있었고,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꾸준히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중간에 뒤를 돌아보니 분명 마감시간이 지났는데도 몇 명이 올라오고 있다. 이미 힘이 많이 빠져 있어서 빠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면서 올라갔다. 정상에 다시 올라 시계를 보니 약 12분에서 14분만에 올라왔다. 이것이 마감시간에 쫒기는 인간의 힘인가....다시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Upper south bowl을 다시 한 번 내려왔으나 혼자서 타니 재미가 없다.

 

이제는 아내를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인데, 또다시 도전의식이 고개를 든다. 바로 Kill the banker 슬로프였다. 레벨스톡 스키장의 상징적인 슬로프이다. Revelation곤돌라 바로 아래에 위치한데다가 중간에 약 3번의 암벽을 낀 급경사가 있는 더블블랙 슬로프다. 이 슬로프는 눈사태의 위험성이 높은 편이라 닫는 경우가 많다. 마침 오늘 열려있는 것을 봤기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오늘을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슬로프에 들어선다. 몇 몇 사람들이 관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좀 더 멋지게 타면 좋으련만 다리는 이미 3번의 하이크업으로 경련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몇 몇 상급스키어들이 멋지게 나를 지나쳐가서 루트를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이 슬로프는 보이는 것 만큼 어렵지는 않다. 암벽이 있는 급경사구간의 경우 잘 보면 돌아서 내려오는 루트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쪽으로 내려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먼저 내려간 사람들과 곤돌라에서 4일간 눈여겨 봤던 정보를 취합해서 가파른 루트로만 골라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느낀거지만 이 난이도의 슬로프가 정말로 길다. 곤돌라 탑승장은 멀리서부터 보이건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곤돌라 탑승장을 지나 Revelation lodge로 향하는 동안 환호성이 저절로 나왔다. 아내는 멀리서 보고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향하려는데 누군가가 앞에 서있다. 이게 누군가, 캣스킹 동지인 퀘벡 부자와 혼자온 미국인이 같이 서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오늘 셋이 우연히 만나 오후에는 같이 Kill the banker를 내려왔단다. 나도 자랑삼아 3번의 하이크업과 1번의 Kill the banker슬로프를 탄 이야기를 했다. 그보다도 어제 같이 캣스킹을 했던 사람들을 이렇게 다음날 모두 만나다니. 이것도 정말 인연이구나 싶었고, 어느새 서양인이던 동양인이던 상관없다고 느끼는 나 자신도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제 숙소로 향하는 시간. 숙소가 편하게 느껴질 때 쯤 언제나 다시 집으로 갈 시간이 된다. 이제는 스키를 탈 시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오늘은 다시 마카로니 치즈와 생맥주 한 잔을 위해 Bierhaus를 재방문했다. 아내는 시금치가 들어있는 뽀빠이와 부르투스, 나는 치즈버거 마카로니 치즈를 주문했다. 오늘도 이 술집은 손님들이 줄을 서있고 맥주는 맛있다. 그래도 처음에 마셨던 2번 맥주가 더 나았다. 가볍고 향이 풍성한 맥주를 원한다면 여기서는 2번 맥주를 드시라!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걸 들으니 이 스키장이 너무 재미있단다. 그래서 자기는 Last spike를 일곱 번 탔다고. 일곱 번? 최소한 90에서 100km를 그 코스만 탔다고?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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