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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짊어진 돈키호테_정우찬의 스키 오디세이(4)

by 정우찬 posted Dec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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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찬의 스키 오디세이] 스키 짊어진 돈키호테

③평창 올림픽과 스키문화

기사 원문보기: http://v.media.daum.net/v/20171208082724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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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당시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축구팬이 됐다. 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낯설었던 피겨스케이팅의 각종 기술을 접했다. 히딩크, 박지성, 안정환, 김연아 등은 고유명사를 뛰어넘어 보통명사가 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목전이다. 동계스포츠는 수많은 종목이 있다. 필자의 전문 분야인 스키의 경우 한국의 환경이 열악하고 국민적 관심이 적어 올림픽이 선수만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스키어가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킨 적이 없고 전국민의 관심을 받아본 적도 없다.

 

◆ 평창올림픽과 한국스키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스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스키를 타본 적이 없거나 일년에 한두번 스키장을 찾는 현실이 필자로선 아쉽다. 엘리트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목표지만 스키의 대중화는 나와 같은 전문적인 스키강사의 몫이다.

스키가 얼마나 매력적인 운동인지 알려주고 초보자가 스키를 탔을 때 안전하고 즐겁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스키강사의 역할이다. 또한 스키를 평생 즐길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기술의 향상을 이끌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스키의 중급 단계를 벗어나 마니아 단계로 들어선 스키어에겐 엘리트 선수보다 국가대표급 스키강사인 스키 데몬스트레이터(Demonstrator, 스키 데몬)가 더 유명하다. 스키 데몬의 스킹을 보면 감탄하고 그처럼 스키를 타기 위해 기술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기 힘든 꿈이다. 일반 아마추어 스키어는 가히 꿈꿔보기도 어려운 경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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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재명 작가

 

 

◆ 늦깎이 스키어와 돈키호테

 

스물여섯에 처음 스키를 알았다. 주말 스키어로 지내던 필자가 그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게 된 것은 운명처럼 접한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그것은 ‘스키의 신’(GOD OF SKI)이라 불리는 캐나다의 레벨4를 한국인 최초(동양인 두번째)로 취득한 양성철 감독(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장애인스키선수단)에 대한 기사였다. 세계 최고의 스키장으로 꼽히는 캐나다 휘슬러(Whistler) 스키장에서 신나게 스키를 즐기는 그의 모습은 화인처럼 나의 머릿 속에 강하게 새겨졌다. 마치 젊은 베르테르가 처음 로테를 만났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왕 스키를 탈 거면 세계 최고의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야지. 이거라면 한번 내 모든 인생을 걸어볼 만하겠는 걸.’ 마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을 때 할 법한 감탄을 내뱉으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가슴은 터질 것처럼 벅차 올랐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나이가 몇살인데 이제 스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거야. 서른이면 남들은 선수생활 다 끝내고 은퇴할 나이야.” 주변에선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필자 스스로 고민을 거듭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스키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현실은 차갑게 그 꿈을 외면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키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하얀 설원 위에 나만의 궤적을 그리며 달려갈 때의 느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의 극치다. 지구의 중력이 나를 끌어당기고 나는 그 중력을 희롱하며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자유롭게 설원을 누빈다. 자유의 느낌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라 만차(La Mancha)의 기사가 그의 집을 나설 때와 같은 심정으로 스키를 어깨에 둘러메고 캐나다로 떠났다.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였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창을 든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질주하고 본인은 만신창이가 됐듯 필자는 거대한 휘슬러 설원의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의 별처럼 느껴져 한참이나 눈 위에서 하늘만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영어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책을 보고 또 보던 밤이 지속됐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 또 다른 돈키호테의 꿈

 

그리고 10년 만에 꿈을 이뤘다.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CSIA’( Canadian Ski Instructor Association·캐나다 스키강사 협회) 레벨4를 취득한 것이다. CSIA 레벨4는 최상위 레벨로 완벽한 스킹과 체계적인 티칭 능력을 갖춘 극소수의 스키어에게만 부여하는 어려운 자격이다. 순수 아마추어 스키어로서 늦은 나이에 스키를 시작했고 선수 출신 스키어들도 이루기 힘든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돈키호테 같은 도전을 마치고 16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캐나다의 발전된 스키강습 시스템을 도입해 누구나 안전하고 즐겁게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스키문화를 만드는 꿈이다. 인맥과 학맥 등으로 얽히고설킨 한국에서 나의 도전은 돈키호테의 여정처럼 무모한 것일 수 있다.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그런 사람이 미친 거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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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찬 프로(스키칼럼니스트, CSIA 레벨4)


☞ 본 기사는 <머니S> 제517호(2017년 12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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