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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17.09.07 15:41

인수봉 등정-내 삶의 입산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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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수도(修道)를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을 "입산(入山)"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산에 오른다는 물리적 행위의 입산과 명확히 구분되는 정신적인 영역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인수봉을 오른다"는 것은 나에겐 등산(登山)이라는 행위가

내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價値)를 획득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이룬 두번째 꿈은 "인수봉 등정"입니다.

여기서 인수봉 등정의 의미는 단순히 북한산의 세 개 봉우리 중의 하나인 인수봉을 올랐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수봉을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인수봉을 오른다는 행위가 가지는 내면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불도(佛道)에 입문하는 사람이 승려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누구나 이발소나 미용실에 가서 "머리 빢빢 밀어주세요."라고 말하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안에 포함된 정신적인 영역에는 극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수도(修道)를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을 "입산(入山)"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산에 오른다는 물리적 행위의 입산과 명확히 구분되는 정신적인 영역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인수봉을 오른다"는 것은 나에겐 등산(登山)이라는 행위가 내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價値)를 획득하였다는 의미이자 전문등산인으로 입문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산(山). 나는 그 산에 오르는 행위를 즐기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외로움속에서 더욱 극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 백운대에 올라보면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휘돌아 들어오는 한강 줄기가 서울의 한 복판을 지나 서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바위 위에 앉아 바라보며 즐기다가 때론 드러누워 하늘 위에 펼쳐진 구름들을 바라보거나 스쳐가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건너편으로 바라다보이는 인수봉에 매달린 사람들이 눈에 띄면 "저 사람들은 왜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를까?"하는 막연한 궁금증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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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인가 백운대에 오르는 일이 식상하다고 느낄 때쯤부터 인수봉을 건너다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그들의 모습이 더 잘 보이도록 가능하면 인수봉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바라다 보게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그들의 등반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릴적 서커스 공연에서 보던 곡예사들의 곡예처럼 그것은 구경의 대상이지 '나도 해볼까?'하는 엄두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기만 했던 산에 대한 애정은 2년간의 군생활을 통해 좀 더 구체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육군 모사단의 수색대에서 군생활을 하였는데 군생활이라는 것이 대개의 사람들에게 추억거리로나 적당하지 직접 겪기엔 고통스러운 일이듯이 나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대의 특성상 봄부터 가을까지는 각종 훈련으로 많은 시간을 산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군생활이라는 것이 대개 어느정도의 상실감과 박탈감을 가슴에 품고 사는 기간이지만 적어도 산에서 훈련하는 동안엔 이런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그런 훈련을 힘겨워하고 싫어한 반면 오히려 산에서의 훈련과 야영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내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산과 나와의 어떤 숙명적인 관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동안의 산이 내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와 안식의 대상이었다면 군에서 만난 산은 정면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나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 "그 자체로서 대상(對象)"인 산이었습니다. 즉, 몸은 산으로 들어오면서도 눈길은 세상을 향했던 단계에서 이제 정면으로 산을 마주보며 산을 오르는 단계가 된 셈이었죠.


그러한 깨달음 뒤에 다시 마주한 인수봉은 이제 더 이상 나를 가만히 구경만 하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제대한 뒤 한 동안 술과 친구들때문에 잊고 지내다 우연한 기회에 오른 북한산. 그리고 숙명처럼 나는 다시 인수봉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인수봉은 나의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뜨거운 느낌이 가슴속을 가득채우더니 어느덧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 달구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인수봉은 나의 꿈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그 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아닌 그와 하나가 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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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95년 가을 등산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6주간의 등산학교를 통해서 산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고 마지막 주의 졸업 등반에서는 꿈에 그리던 인수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소중한 나의 두번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자 본격적인 입산(入山)의 삭발식을 거행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학입학과 마찬가지로 산(山)에의 입문은 나의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의 이 자리에 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직 채 깨닫지 못했지만 산을 알게 된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죠. 바로 산사람들의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알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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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이면 자신의 키보다 높은 배낭을 메고 마치 반딧불처럼 헤드랜턴을 빛내며 땀에 젖어 올라오는 산 사람들.
밤 늦도록 산과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소주잔 기울이던 그들.
자일 하나에 서로의 생명을 묶고 자일의 느슨하고 팽팽한 그 작은 움직임에 하나가 되던 자일파티.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산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는지 모릅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모릅니다.

 

산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면 산이 그저 높이 솟아오른 지각변동의 소산물 그 이상이 되고,
나아가 꽃과 단풍 그리고 설경의 아름다움 때문에 산을 찾는 것 그 이상의 또 다른 이유를 만나게 되면,
그 때부터 산은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단순히 그 존재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등산은 단순한 오름짓 이상의 의미를 획득합니다.
물리적인 높이는 다시 산을 내려옴으로써 제로가 되지만 정신적인 높이는 오를수록 더욱 높아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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