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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17.09.07 11:49

정우찬씨? 제발~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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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한국에서 찾아온 스키어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정우찬씨이신가요?"
"네, 정우찬입니다."
"저, 저희 좀 살려 주세요~"

너무나 황당한 말에 저는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하지만 전화 통화를 하면서 곧바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일 오후에 블랙콤 산에 올라갔던 한국인 네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해가 지면서 더이상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이리저리 수소문하다가 결국 저에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저는 바로 휘슬러의 경찰과 스키패트롤에게 연락을 하고 구조를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뒤라 구조대원들이 출동하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지요. 구조대원들이 산 위로 올라가 수색과 구조 작업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은 다음날 해가 뜬 뒤에라야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다행히 실종된 지역이 절벽이나 깊은 계곡이 아니기에 조심해서 하산을 시도한다면 몇 시간 뒤면 휘슬러 빌리지로 내려올 수 있을거라는 조언과 함께.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는 그 분들에게 어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해 조심해서 하산을 시도하라는 조언을 전해주었습니다. 앉아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그 분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밤새도록 한 시간 간격으로 통화하면서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휘슬러의 경찰들과도 계속해서 연락을 나누며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실종자들이 도착할 만한 곳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경적을 울리며 대기하도록 하였습니다. 

몇 차례나 전화가 와서 '너무나 힘들다', '정말적이다' 라는 호소를 하였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집에서 전화통화만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새벽 4시경에 차를 몰고 그들이 도착할 만한 곳으로 꿀차를 타서 마중을 나갔습니다. 기다리던 경찰들도 지쳐서 슬그머니 차로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경찰들을 다그쳐 실종자들이 내려올만한 곳으로 수색작업을 나갔습니다. 

약 이십분 뒤 어둠을 밝히는 조명들이 어슬렁 거리며 숲속을 헤치며 나옵니다. 경찰들이 내려오는 모습이 먼저 보이고 뒤이어 그들 뒤로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가 따라 나옵니다. 마침내 실종 전화를 받은 지 12시간만인 다음날 오전 6시 30분경 무사히 휘슬러 빌리지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이면 내려올 수 있을거라는 예상과 달리 꽤 오랜 시간을 힘들게 눈 속을 헤치며 내려왔지만 탈진한 것을 제외하면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습니다. 차 속에서 준비해 온 꿀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는 순간 살았다는 것을 실감한 그들의 눈물도 녹아서 터져 나왔습니다. 모두들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지요.
 

 

SANY0118.jpg

<세계적 스키장인 휘슬러의 보안과 안전을 담당하는 스키 경찰들의 모습>

 


생명이 달린 긴박한 구조의 상황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휘슬러에선 이렇게 실종되어 큰 위기에 처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합니다. 휘슬러는 한국의 스키장과 달리 너무나 거대합니다. 한국의 스키장을 생각하시면 휘슬러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라산보다 높은 두 개의 산 위에 몇 개의 곤돌라와 리프트만 설치해 놓고 맘껏 타라고 스키어들을 풀어 놓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스키장의 관리영역을 벗어나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2005년 1월 12일 한국의 젊은 스노보더가 실종되어 동사한 사고도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실종 사고처럼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경우도 몇 차례나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한국의 유명 스키선수가 길을 잃어 헬기로 겨우 탈출한 경우도 있고,  전지훈련왔던 한국의 스노보더가 절벽에서 추락해 큰 부상을 당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해외 스키장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과 용어들을 정리해 보았으니 휘슬러를 찾는 분들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휘슬러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스키장에서는 충돌사고에 의한 사망보다는 위와 같은 실종 사고나 눈사태에 의한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스키장에서 지정한 아웃 오브 바운더리(out of boundary) 밖으로 나갈 경우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러므로 백컨트리 스킹은 철저하게 경험많은 가이드와 함께 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휘슬러에서는 아무리 경험많은 사람이라도 절대로 혼자서 아웃 바운더리로 들어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2) 휘슬러 지역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겨울동안엔 해가 짧습니다. 그러므로 겨울동안(11월~2월중) 대부분의 리프트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운행합니다. 4시면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기 때문입니다. 해가 짧을 때는 4시 30분이면 캄캄한 어둠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므로 스킹속도가 느린 초보자들은 반드시 3시 이전에 스킹을 마치고 내려오기 시작해야 합니다. 능숙한 스키어들일지라도 폐장이 가까운 시간엔 트리런이나 외진 코스 등으로의 스킹을 삼가고 메인 코스를 이용해 산을 내려 가야 합니다.

3) 백컨트리 코스나 더블블랙 다이아몬드, 트리런 등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스킹을 갈 때는 반드시 동행이 있어야 하며 최소 3인 이상이 움직일 것을 권합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시 한 사람은 사고자의 주변에 머물고 다른 한 사람은 구조요청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처음 가보는 익숙하지 않은 코스에서 스킹을 할 때는 경험있는 사람을 앞세우고 다녀야 하며, 일행중 경험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엔 가급적 남이 먼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스킹을 합니다. 특히 파우더 스킹시에는 예측하지 못한 위험과 만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경험있는 사람과 함께 스킹을 해야 합니다.

5) 길을 잃고 조난 당했다고 판단되면 절대로 임의적으로 판단해서 움직이면 안되고 지나왔던 길을 되집어 가야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겠지만 이 방법이 생존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입니다.

 

 

death.jpg

 <가장 험하고 위험한 코스인 '더블블랙 다이아몬드' 코스입니다. 입구의 경고판조차 무시무시하죠?>

 

 

Black-Diamond-Boundary.jpg

<더블블랙 다이아몬드에서의 스킹 장면>


run 한국 스키장에서 '코스' 또는 '슬로프'라는 표현을 쓰는 대신 이 곳에서는 '런'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예를들면 groomed run은 '정설사면', bump(mogul) run은 '모글사면',  steep run은 '급사면', glade(tree) run은 '나무가 있는 사면' 을 말합니다.

green circle 런(run)의 난이도를 구분하는 표시중 '녹색의 원'은 비교적 평탄한 곳을 의미합니다. 한국 스키장의 초급~중급 정도의 경사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blue square 난이도를 구분하는 표시중 '파란색의 사각형'은 어느 정도 경사와 난이도가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한국 스키장의 중급~상급 정도 경사이며 적당한 경사에 펼쳐진 범프나 트리런 코스 등이 포함됩니다.

single black diamond 난이도를 구분하는 표시중 '검은색의 다이아몬드'가 하나가 그려져 있는 곳은 경사와 난이도가 꽤 심한 곳을 의미합니다. 한국 스키장의 최상급 이상의 경사이며 깊은 범프나 촘촘한 트리런 코스, 낮은 점프(1~2m정도) 등이 포함되는 코스입니다.

double black diamond 난이도를 구분하는 표시중 '검은색의 다이아몬드'가  두 개가 그려져 있는 곳은 경사와 난이도가 아주 심한 곳을 의미합니다. 한국 스키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경사이며 급경사에 펼쳐진 깊은 범프나 촘촘한 트리런 코스, 높은 점프(2~5m정도) 등이 포함되는 코스입니다.  

cliff 절벽

chute 추락지역

white out 강풍과 함께 눈이 많이 오는 경우나 너무 짙은 안개가 껴서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화이트 아웃'이 되면 세상이 온통 하얄뿐 명암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의 스킹은 마치 눈을 감고 스킹하는 것 만큼 위험합니다. 이런 날은 아무리 크레이지 로컬들이라도 스킹을 하지 않습니다. 

 

closed 여러가지 위험 요인들 때문에 코스가 폐쇄된 경우입니다. 이런 사인이 있는 코스는 이용하시면 안됩니다.

avalanche danger '눈사태 위험'을 알리는 사인입니다. 눈사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이런 코스는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휘슬러에서는 Avalanch Course라는 눈사태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며 자격증도 발급합니다. 이런 교육을 받으셔야 전문가라 할 수 있습니다.

ski area boundary 이 사인은 스키장의 관리영역 경계선을 나타냅니다.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이 사인의 바깥은 '아웃 바운더리'라고 통칭하는 곳으로 스키장의 관리영역이 아닌 곳을 말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위험들(눈사태, 바위, 절벽, 크레바스, 조난 등)에 노출되므로 전문적인 가이드와 함께 스킹하셔야 하며, 적절한 안전장비와 지식, 백컨트리 스킹장비 등을 구비하셔야 합니다.  

cat track only 여기서'cat'이란 caterpillar(무한괘도차)를 말합니다. 즉, 정설차가 다니는 곳을 말하며 이 곳으로 스킹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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