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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17.06.17 02:05

장마루촌의 이발사와 조용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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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443 추천 수 3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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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효선 아뜰리에"의 마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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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찬스 건물 왼편의 마당이다. 차 두 대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있고, 그 안쪽에 컨테이너 두 개를 세워 만든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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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저 컨테이너 건물이 "김효순 아뜰리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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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라스트 찬스 건물내로 들어갈 수 있는 뒷문이다. 컨테이너 건물 맞은 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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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 한 켠에 거북이 한 마리가 있다. '예술가가 아니면 이런 작품이 가능하겠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P.S. on 2017/06/20(월) 이 무식을 어찌할 것인가? 이 사진에 위와 같은 캡션을 붙였었다. 그런데 라스트 찬스의 윤상규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다보니 이게 거북이가 아니고, "대왕달팽이"라고 하신다.ㅜ.ㅜ 이제 다시 보니 머리가 달팽이 머리구만...-_- 달팽이의 등을 거북의 등처럼 묘사하신 분의 책임도 있다.^^; --> 윤상규 선생님의 사진: https://goo.gl/1RVS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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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같은 열혈 스키어의 눈에는 이런 게 바로 띈다.^^ 랭(Lange) 부츠에 뵐클(Volkl) 스키가 보인다. 물론 오래 전의 컨벤셔널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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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서 읽은 바 있기에 호기롭게 아무도 없는 라스트 찬스의 문을 열었다. 2015년에 이곳에서 신촌블루스(https://goo.gl/Pkh58f)의 공연이 있었음을 Adieu 2015 포스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포스터에 이 밴드를 대표하는 인물, 엄인호 씨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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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앞문 쪽으로 가봤다. 앞문은 원래 닫혀있었음을 알았지만,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저 앞 의자의 오른쪽에 정문이 있다.)

 

이 건물의 벽면이 예술적으로 장식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미군 장병들을 위해 공연을 하고, 술을 파는 곳이라 시원찮은 클럽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하긴 장파리는 -- 일제 강점기에 백화점이 있었을 정도의 -- 임진강을 건너는 대표적인 포구였었고, 미군 주둔 후에 더 번창했었다고 하니...

 

위 사진의 장식 중 전면에 보이는 것들은 아무래도 나중에 만들어진 듯하고, 왼편의 서양의 용(dragon)을 부조(浮彫)로 만든 것이 원래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인들이 찾는 클럽이어서 그들의 눈에 익숙한 용을 돋을 새김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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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작품의 형태나 좋은 상태로 볼 때 분명 오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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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벽에도 저와 같은 벽화가 만들어져 있다. 2013년에 창고에 쌓인 물건들 너머로 저런 장식을 봤을 때 윤/김 부부는 마치 호메로스 신화의 트로이 유적을 터키에서 발견한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이만과 같은 심정이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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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을 든 그리스 전사의 모습도 보이고...

 

참,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정황에 대하여... 집사람과 내가 건물 내로 들어왔을 때는 조명이 켜지지 않아서 내부가 아주 어두웠다. 그런 상태에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약간의 빛에 의존하여 사진을 찍여야만 했다. 플래쉬도 터뜨리지 않은 상태에서 "어둠에서 최고로 강한 사진을 찍어낸다."는 소니의 RX100 M4가 제대로 성능을 발휘한 것이다.

 

앞에 보이는 노란빛을 띄는 모자이크 같은 기둥 장식은 내 눈에 아주 익다. 아주 오래 전(60년대 말) 내가 살던 천호동에 최초로 지어진 2층 집인 우리 집의 외벽 장식을 저 돌로 했었기 때문이다. 저 화강암은 전체적으로 노란빛을 띄고 있으면서 돌에 수많은 돌비늘, 즉 규산염 광물인 운모(雲母)들이 박혀있는 것이다. 당시엔 고급 건물에 저런 장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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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의 모든 시설들은 윤/김 부부에 의해 새로이 꾸며넣어진 것이다. 70년대 이후 2013년까지는 이곳이 물건으로 가득 찬 창고였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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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멋드러진 카페의 모습이다. 조명이 들어오면 더욱 휘황찬란할 듯한 곳인데 아쉬웠다. 언제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을 예정이다. 윤/김 예술가 부부에게 미리 전화를 하고, 그곳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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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드래곤이 그려져 있던 벽면 뒤에는 저런 사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앞의 벽면엔 이집트풍의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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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위에는 조용필에 관한 자료들이... 이곳은 살아있는 조용필 박물관이다. 장파리나 리비교가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만큼의 대중문화 박물관인 것.(리비교는 철원의 승일교처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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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ieu 2015 신촌블루스 콘서트 당시의 엄인호 씨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분은 현재 이곳 라스트 찬스의 주인장이신 윤상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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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의 한 편엔 이렇게 소파가 놓여있고, 안쪽엔 TV와 오디오 세트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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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은 이렇게 새어 들어 오고 있었을 뿐인데, 소니 카메라에 내장된 CCD의 성능이 참으로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이걸 찍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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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켠엔 손님 스스로 커피를 타 마실 수 있게 생수와 전기 포트, 그리고 다양한 커피잔들이 준비되어 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읽었던 바 이곳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으니 먹을 것, 마실 것을 손님이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고...-_- 여기서는 준비된 커피나 차를 마시고, 왼편에 있는 통속에 적당히 헌금을 하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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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문으로 들어와서 볼 때 맞은 편 먼 곳에 위치한 무대이다. 뒷문으로 들어오면 들어오자마자 왼쪽에 서가와 화장실이 있고, 그 옆이 바로 이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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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의 부조 옆엔 조용필의 CD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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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코드(LP) 장 안에 탄약통이 놓여있고, 여기에도 조용필의 사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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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가 보니 탄약통이 아니고, 연막 수류탄 상자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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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훤하게 비쳐 들어오는 곳이 뒷문이다.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중간의 열린 문이 화장실 문이다.(그리고 이 사진의 오른쪽에 무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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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 오른편에 있는 사진 액자들이다. 라스트 찬스의 황금기에 찍은 사진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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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의 위안부들(comfort girls)들과 미군 장병들의 기념사진(?)이다. 오른편의 병사들은 오늘날의 룸싸롱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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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엔 미군 위안부들을 "양공주"란 명칭으로 불렀었다.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위 사진의 중간에 있는 분이 몇 년 전에 라스트 찬스를 찾아온 일이 있다고 한다. 저렇듯 푸르른 젊음이 이젠 할머니가 되어... 그 할머니는 그곳에 들러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생각에 그 회한의 장소를 찾으셨을까? 그 전설 같은 이야기에 우리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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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남자와 세 여자의 표정이 대조적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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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풍 정미소 벽에 걸려있던 흑백 사진의 원본인 듯하다. 럭키 바의 모습이 담긴... 오른편엔 서울 여인숙이 있고, 중간엔 사진관인 "장미 사장"이... 장파리의 황금기에는 우사(소 키우는 외양간)를 방으로 개조하여 세를 놔도 먹고 살 만큼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사람이 넘쳐나는 동네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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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편이 오래 전의 장파 성당 모습인데, 현재와는 달리 그 앞이 공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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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찬스를 만들 당시에 이곳이 클럽이었기에 이집트 벽화에 나옴직한 그림를 저와 같이 응용한 듯하다. 술잔, 술병, 그리고 먹을 것이 보이는데, 좌측에서 두 번째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혹 술 안주로 쓸 바비큐를 해서 들고 가는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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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나 로마의 전차병의 모습이다. 좀 엉성한 부조이기는 하지만 반짝이는 돌을 박아 만든 것이라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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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의 장인들 만한 솜씨는 아니지만, 어설퍼서 더 의미가 있는 클럽의 벽장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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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오디오 세트가 있는 곳. 좋은 CD들과 이제는 값이 나갈 만한 많은 LP들도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방치하듯 개방하고 있는 윤/김 예술가 부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마음을 비우고 사는 도인 같은 분들인 듯하다. 꼭 만나보고 싶은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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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박종인 기자의 "땅의 역사" 기사가 나간 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06/21, 수), 종편 TV조선에서 "박종인의 땅의 역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그 내용 중에 "읽어버린 추억의 땅 장파리"란 부제목의 내용이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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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의 윤상규 선생님이 현재의 라스트 찬스를 재건해 낸 분이다.

 

장마루 이발소를 찾아서...

 

라스트 찬스에서 나와 아직까지 찾지 못 한 장마루 이발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예전에 내가 장파리에 들렀을 때는 이곳에 가왕 조용필의 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기에 장마루 이발소 만을 찾는 게 내 목표였었다. 그리고 세 번에 걸쳐서 그 시도가 불발되었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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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찬스에서 중앙통으로 나와 왼편으로 조금 더 가면 이 장파 성당이 나온다. 성당 건물 위에 PX처럼 보이는 두 개의 글자는 희랍어 χρ로서 "카이-로"로 발음된다. 카이는 영어의 Ch에 해당하고, p는 r에 해당하는 그리스도(Christ)의 첫 두 글자의 시릴릭(Cyrillic) 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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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담 너머의 성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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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중앙통의 끝자락이고, 오른편의 벽돌담은 장파 성당의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이정표처럼 생긴 것이 장파 사거리의 "장마루 먹거리촌" 간판이다.

 

장마루 이발소를 찾기 전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참게장 백반을 먹고 싶었는데 참게는 9-10월에나 나온다고 하여 다른 걸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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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나왔다. 갈치조림이라 쓰인 걸 보고 들어가 그걸 시켰는데, 정말 맛이 있었다. 다시 찾아가도 좋을 만큼의 맛이었다.

 

장마루 먹거리촌에는 아래와 같은 식당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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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이곳에 왔다. 장승 부근에 서 있던 차가 사라졌기에 다시 사진을 찍었다. 장승 이마에 "안전 마을"이라 쓰여있다. 전엔 몰랐는데 안전 마을로 지정되는 일이 쉬운 게 아닌 듯하다. 이 동네의 자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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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사진. 70년대까지는 중앙통이 이런 모습이었는데... 도로가 말라있을 때는 먼지 깨나 날렸겠고, 비 온 후에는 온통 진흙밭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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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 John Cosgrove 사진. In front of her store, Miss Sue. 당시 Sue란 이름을 가진 그녀는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미군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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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본 사진인데 역시 66-67년 사이의 사진으로서 Bob Juchno란 병사가 찍은 사진이라 한다. 장풍정미소 벽에 걸린 이 사진 원본은 이렇게 칼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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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찬스의 옛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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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교 서쪽단에서 본 리비교와 장파리의 라스트 찬스.(길옆 흰 2층 건물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왼편에 장파 성당이 보인다.) 이 당시에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원근감이 없어보이는 사진이다. 혹, 선명도가 높은 사진의 일부를 잘라내서 이런 효과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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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아래 쪽의 배수로는 2015년 안전 마을로 지정된 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집 앞에 화분을 내놓은 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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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앞의 화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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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가꾸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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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덕방(부동산 소개소)에 붙어있는 "파평 스킨스쿠바"(동호회??)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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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리비 사거리로 향하는 3거리에 왔다. 저 "임진강 황포나루"란 민물 매운탕집 바로 왼편이 라스트 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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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람이 이 일대 사진을 더 찍겠다면서 라스트 찬스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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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리비 사거리 건너편의 리비교 검문소가 보인다. 검문소 초소 뒤로 환하게 보이는 것이 리비교이다.

 

집사람이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혼자 가 봤던 장파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여러 개의 벽화를 찍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다시 한 번 그곳에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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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초교 앞의 문방구 자리 공터에 있던 차가 사라졌기에 다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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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의 벽화 그리기 행사"를 통해 수많은 벽화들이 조성된 것이다. 뒤는 장파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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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 속엔 이형옥 교장 선생님도 계시고, 여러 "쌤"들이 계시며, 특히 그 중에는 잘 생긴 박주영 혹은 최관웅 쌤도 계시다.^^(아니면 잘생긴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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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벽화도 있었다. 벽 앞엔 블루베리 나무가 서있었고... 민들레 꽃의 흔적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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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찍지 못 한 이런 벽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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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이 묻어나는 자전거 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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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건물의 형태로 보아 정미소 자리였던 것 같은데...(앞서의 장풍 정미소는 중앙통 건너편에 있고, 이곳은 장파초등학교 정문 부근이다. 오른편 끝에 보이는 건물이 중앙통 건너편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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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좀 잘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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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장파초교 담 아래쪽의 보리수 나무 쪽으로 왔다. 큰 열매가 신기해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열매를 하나 따먹어 봤는데, 맛이 달콤하면서도 뒷끝은 텁텁한 묘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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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집인데 담이 없다. 안전 마을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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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옆에 놓인 이런 부서진 문짝은 아무래도 전에 장파리 개선 사업을 할 때 버려진 것 같다. 근데 그걸 안 치우고 이렇게 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 때의 흔적을 일부러 남겨두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장파리를 살펴보고 있는 내게는 이마저도 기록의 일부라 사랑스러워 보였으므로...^^

 

근데 이발소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미용실은 하나 있었는데... 그래서 구글(Google)에서 장마루 이발소를 이미지로 찾아봤다. 아래와 같은 사진 자료가 나온다. 분명 "장마루 마을 이용원"이라 쓰여있고, 이발이란 간판도 보인다. 근데 이게 장파리 중앙통 길을 몇 번이나 헤매도 안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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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사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이 "장마루 마을 이용원"은 찾을 길이 없었다. 분명 이런 모양으로 처음에 있었던 것인데... 이게 예전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장파리 개선 사업 이후에 바뀐 간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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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야 그 "장마루 마을 이용원"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걸 관련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간판이 좀 신식으로 바뀌었다.

 

이 사진을 보다가 '어??????'하는 생각을 했다.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발소 오른편에 노래방이 보인다. 톱스타 노래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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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TV에서 방영된 한 프로그램의 동영상에서 캡춰한 것인데, 이 때는 이발소 안에 이발 기구나 세면대가 예전 모습 그대로 있었다. 이 이발소 오른편엔 "톱스타 노래방"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앞서 중앙통 길옆에 주차를 하면서 건너편에 노래방이 있었던 것을... 그래서 이발소 찾기는 포기하고, 톱스타 노래방을 찾기로 했다. '노래방을 찾으면 이발소도 나타날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헤매다 결국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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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차를 주차했던 곳 길 건너편이다. 분명히 앞서 자료 사진들에서 보이는 톱스타 노래방이 건재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찍었던 그 이발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각종 전기공사를 하는 "영은"이란 전기방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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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거 참....ㅜ.ㅜ 기존의 의미있는 이발소가 없어졌다면 그 앞에 간단한 표석이라도 하나 세워놔야하는 거 아닌가?

 

그제야 예전에 내가 세 번이나 장파리 중앙통을 차로 지나면서도 그 이발소를 찾지 못 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참으로 허무했다. 작정을 하고 다시 찾아오니 이제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

 

장파리를 방문한 후에도 시간이 많이 남으면 집사람과 나는 연천의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를 다시 찾아갈 생각이었다. 고고학 박사인 집사람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님인 고 황용훈 박사(전 경희대박물관장)께서도 전곡리 유적지 발굴에 관여하셨었기에 그곳은 집사람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1978년에 동두천에서 근무하던 고고학 전공의 미군 병사 그레그 보웬(Greg Bowen)이 전곡리에 놀러갔다가 한탄강가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 석기를 발견하는 바람에 세계사의 한 장이 바뀌었다. 이 당시 그레그 보웬이 접촉한 분이 당시 서울대 박물관장이던 삼불암 김원룡 교수이고, 그 이후에 전곡리는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이 되었다. 현재의 유적지는 놀랄 정도로 잘 가꿔져 있고, 전곡리에서는 매년 어린이날로부터 어버이날까지의 사흘간 구석기 축제를 열고 있다. 우린 그곳에 여러 번 갔었는데, 올해의 제25회 연천 구석기 축제에 즈음하여 전곡리 유적지내의 김원룡 교수 추모비 옆에 흉상이 세워졌다고 하여, 다시 한 번 들러보려던 참이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집사람과 나는 장파리 옆 답곡리에 있는 적군묘지만 들르기로 했다. 적군묘지는 한국전쟁 당시에 죽은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체를 묻은 곳이라 한다. 이건 참으로 인도적인 일이 아닌가??? 서로 피흘리며 싸우다 죽은 원수를 예를 갖춰 묻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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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군 묘지로 가기 위해서 다시 리비교 사거리에 왔다. 길 건너편이 리비교 검문소이다. 그리고 역광이라 잘 안 보이지만 오른편의 높은 담에는 "여기가 장파리 먹거리촌입니다."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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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에 앞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본 짓고있는 집이 보였다. 그런데 이 때는 적군 묘지의 주소를 잘못 파악하여 거꾸로 가고 있던 때였다.^^; 답곡리로 가려면 리비교 사거리로 나왔을 때 우회전을 했어야 하는데 좌회전을 했던 것이다.

 

좀 헤매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적군묘지의 주소를 파악해 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결국 적군묘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적군들만 묻혀있는 줄 알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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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자료에 의하면 묘역의 모습은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이 사진 역시 라스트 찬스를 재건한 예술가 윤상규 선생께서 찍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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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묘역의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작은 봉분들과 흰 팻말이 사라지고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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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알고보니 당국에서 5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서 재단장을 했다는 것. 서양의 묘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작은 묘석을 하나씩 도열해 놓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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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편의 연도는 뭘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2002년이라면 한국전쟁과는 관련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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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2000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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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1996년 6월 18일인데, 한국전쟁 시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한 북한군이고, 이름은 파악이 안 되는 병사였다는 것.

 

위의 묘석을 보고서야 묘석 우측 상단의 날짜가 병사의 사체를 발견한 날짜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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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 이건 1.21사태 때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공비인 권호신 소위의 묘석이다.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에 이 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사건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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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다른 지역에서 사살된 무장공비의...가슴아픈 일이다. 북한 동포 한 사람, 그 젊은 사람이 파르티잔으로 남한에 내려와 이름도 없이 죽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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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동해안 침투 무장공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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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 하류로 떠내려온 북한군의 사체를 인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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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군 묘지 옆에도 보리수 나무가 있었다. 역시 알이 굵은 보리수 열매가 달려있었다.(장파초교 담 옆의 것보다는 알이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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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묘역을 떠나 제2묘역으로 갔다. 그곳에도 북한군 묘가 있음을 알았다. 원래는 제2묘역이 중국군 묘지라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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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안내판이 이 모양.-_- 이런 건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니 보수해 놨어야 하는데... 누군가 이게 맘에 들지 않아서 아래위로 칼 같은 것으로 그어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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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람이 묘석의 내용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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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묘석 아래, 2014년 3월 28일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송환을 제안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결과이다. 중국에서는 이 인도적인 처사에 대하여 무척 고마워했다고 한다. 중국의 젊은 네티즌들도 이에 대해서는 꽤 좋은 평을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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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에서 나오는 길에 보니 밤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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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거기서 나오다 보니 관에서 오신 듯한 분이 망가진 안내판의 글자를 사진으로 찍고, 간판의 사이즈를 재는 등 작업을 하고 계셨다. 보수를 할 모양이다.

 

이렇게 나의 4차에 걸친 장파리 방문은 작은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현재의 장파리를 보고난 심정은 개운치가 않다. 70년대 이후에 급격히 쇠락한 장파리가 안전마을로 지정된 후에 많은 발전적인 개선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파리 주민들이 원했던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화석처럼 보존된 곳이나 일부는 일률적인 개선 사업으로 좀 훼손되었고, 관광지로의 개발 노력은 아직도 부족한 듯 보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먹거리 촌으로의 탈바꿈에도 아직 성공하지 못 한 것 같다. 지리적으로 서울 도심에서 멀다는 것이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와 조용필의 "라스트 찬스"로 대변될 수 있는, 근대 역사의 애환을 담은 동네로서의 장파리에 대한 홍보는 여전히 미흡한 듯하다.

 

그런 아쉬움에 적군 묘지에 묻힌 가련한 젊음들을 보면서 생긴 아픈 마음이 한데 엉켜서 우리 부부는 왠지 처연한 심정이 되어 그곳을 떠나왔다. 집사람은 "마을을 다 둘러보고 나니 왠지 허전해지고 마음이 아파서 나라도 나서서 장파리를 홍보해주고 싶을 정도"란 얘기도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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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웅 달력] 2017년 7월 "6.25전쟁의 호국영웅 조지 D. 리비"

자료: http://m.blog.daum.net/hidkki55/15702570 (구월산 유격대 전우의 방)

 

2017-july.png"미 제24사단 전투공병대대 소속인 조지 D리비 중사는 1950년 7월 20일 대전 전투 당시 산악철수가 불가능한 부상병을 한명한명 차에 태워 철수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철수 도중 북괴군의 사격을 받아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자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재빠른 상황판단과 살신 성인의 리더쉽을 발휘하여 때마침 철수 중이던 포병 M-5포차을 정지시키고 부상병들을 태운 뒤 포차 운전병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고 외쳤다. "내가 너를 책임지고 보호한다! 전속으로 달려라!"

 

포차의 속력을 최대로 올려 달리면서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길가의 부상병을 한 명도 빠짐 없이 포차에 태우고 철수하여 뜨거운 전우애와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운전병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 보호함으로써 많은 부상병들의 목슴을 구하여 사랑과 희생의 군인 정신을 보여준 리비 중사는 정작 자신의 몸을 보호하지 못 하여 전신에 수 많은 부상을 입고 말았고, 이로 인한 과다 출혈로 안타깝게 전사하고 말았다.

 

미국은 자신의 생명을 던저 동료을 구해낸 리비 중사에게 6.25 전쟁 최초의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아래는 나중에 찾아본 리비교 관련 사진들이다. 사진들은 http://www.2ida.org 사이트의 "Korea, A Tour of Duty"에 실린 것들이다.

 

libby-bridge-1953.png

- 완공된 리비교, 1953년 7월. 다리 서쪽에서 찍은 사진. 동쪽 길 끝의 장파리에는 60년대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많은 집들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libby-bridge-japari.png

- 리비교가 멀리 보이는 서쪽 산의 벙커. 다리의 오른편에 장파리가 있다. 1955년 사진. c) Marty O'Brien 이 사진에도 장파리의 집들은 보이지 않는다.

 

libby-plaque.png

- 리비교 동쪽에 건립된 리비교 명명탑. 1953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libby-tombstone-waterbury-conn.png

- 미국 Connecticut주 Waterbury에 있는 리비 중사 묘비.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제(2017/06/21) 방영된 TV조선의 장파리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엉뚱한 정보가 소개되고 있었다.

 

DSC05516.JPG

- 이건 누가 쓴 소설을 토대로 붙여놓은 캡션일까?ㅋ 리비 중사는 미8군 소속도 아니었다. 최초의 참전 부태는 Initial Army Unit로서, 급파된 미보병 24사단의 일원인 400명으로 이루어지고 포병대(Artillery bettery)의 지원을 받는 스미스특임대의 부대원이었을 뿐이다.

 

"리비 중사가 다리 일부를 폭하해 북한군 남하를 저지한 기념"이라니??? 도대체 전쟁 중엔 원래부터 없던 다리를 1952년 11월에 착공(다음 해 장마 이전 완공 목표)하여 1953년 7월에 완공한 것인데, 이 다리를 1950년 7월 20일에 대전에서 전사한 리비가 어떻게 폭파를 했단 것인지? 그리고 1953년 7월이면 28일에 휴전이 성립되는데 웬 북한군이 남하를 하고...-_-(참조: https://goo.gl/G1yeYG / 미육군 공병단 역사 사무실 관련 자료)

 

 

c3.png

- 1952년 11월 착공. https://goo.gl/G1yeYG / 캡션의 X-Ray 사이트가 바로 리비교가 놓인 자리이고, 리비교란 명명이 있기 전까지 미군들은 X-Ray Bridge라고 불렀다.)

 

c4.png

- 앞서 예시한 이 사진은 위 링크의 공병단 자료에도 그대로 나와있으며, 리비교는1953년 7월 4일 미독립기념일을 기해 완공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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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장파리에 관한 유튜브(Youtube)의 동영상들이다. 장파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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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상일 2017.06.18 01:28

     

    <장마루촌의 이발사>

    얼마 전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 쪽으로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장파리 사거리에서 '장마루촌'이라는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 영화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혹시 그 옛날 영화의 무대 장마루촌이 이곳 얘기였을까? 설마! ~ 그 영화 개봉한 게 얼추 60년 가까이는 될 텐데... 그럴 리 없을 거야... "

    그리고 잊어버렸지요. 그런데 박사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있다고.

    가히 고고학적 발굴이라 할 만합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18 09:09
    제가 시간이 부족해서 현재 사진만 올리고 설명을 못 썼는데, 나중에 글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20 02:20
    오상일 선생님,

    2017/06/20(화) 02:19에 이 글의 1, 2편을 모두 완성했습니다. 다시 읽어보시면 위에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완벽한(?) 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
    오상일 2017.06.20 19:12
    60여 년의 시간 차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교차 편집, 그리고 여러가지 주제를 하나로 꿰는 통일성 속에서도 생생히 살아있는 치밀한 세부 묘사...
    미시사 기술의 압권입니다.
    Two Thumbs Up!!!
  • ?
    이지하 2017.06.20 07:33

    아버지랑 한번쯤 가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네요.

    사진을 보면 제법 어렸을 때 저 쪽 지역 갔었던 거 같기도 한데...

    그나저나 수필 타입의 여행 안내서 하나 내셔도 완전 대박일 꺼 같습니다~

    '알쓸신잡' 에 센터'깜' 이신데~

    박사님하고 여행하면 정말 '네이버' 가 될 거 같습니다.^^

    얼른 bmw을 벗어나서! 엄마와 가보는 걸로 다짐!!!
     

  • profile
    박순백 2017.06.20 14:43 Files첨부 (1)

    ㅋ 이 글을 읽고, 네 댓글을 분 어느 고루한(?) 분이 네 댓글이 이해가 안 간다고...-_-

    그래서 내가 알쓸신잡이 종편(CATV)의 한 프로그램 이름임을 얘기해 줬고,

     

    tvn-pro.jpg


    네이버는 지식인 DB임을 얘기해줬고,
    또 BMW는 차 없이 걸어다니는 사람임을 얘기해 줬어.

    지하, 이제 남들이 알게 글을 써야겠다.ㅋㅋㅋ

     

    그리고 세상에 "알쓸신잡"은 없기 마련이지. 알아두면 다 쓸 데가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기심, 관심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과

    정에서 얻은 것들이니까...

     

  • ?
    김경호 2017.06.20 22:46

    박사님 덕분에 장마루촌에 담긴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곳의 현 상황이 못내 아쉬움과 무거움으로 느껴집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지역 주민들의 애환으로 이어져 오지않았을까 합니다. 슬픔의 역사를 넘어 희망과 교훈의 지역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합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21 12:19
    제가 별 걸 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죠.ㅋ 오지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종전 직후에 태어난 세대라서 어릴 적의 많은 어려움을 보며 큰 기억들이 있고, 전쟁이 가져온 참혹함이나 분단이 가져온 슬픔과 애환이 뭔지도 아는 사람이라 기지촌으로서의 장파리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도 장파리를 위해 발벗고 나선 윤상규, 김효선 부부의 노력에 정신적으로나마 지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
    김경호 2017.06.21 19:19

    제 조부모님과 부모님께서 북한에 사시다가 6.25 전에 월남하셨고, 형님들 모두 전쟁 발발 및 전후 세대라, 그분들의 영화같은 고생담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가 글을 웬만큼 쓸 줄 안다면 도움을 받아 가족사를 책으로 내고싶은 욕심도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가 봅니다. 박사님의 관심으로 끝나지 않은 정신적인 지원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집니다. 멋지십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21 19:46
    김 선생님은 글을 잘 쓰는 분입니다.^^
    그러니 시간이 나실 때마다 가족사에 대한 메모를 하세요.
    그것도 메모해 놓지 않으면 나중엔 기억이 스러집니다.
    그리고 기억을 스스로 각색해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
    가면 그 기억조차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아닌 극이 됩니다.
    그래서 꼭 메모해 놓고, 그걸 토대로 글을 써야합니다.
  • ?
    김경호 2017.06.21 21:31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가능한 글쓰기 방법까지 알려주시니 더 없이 감사드립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21 22:07
    글쓰기 방법이요?ㅋ 제가 대학 1학년 때 조병화 시인을 통하여 글솜씨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비국문과 출신으로는 발버둥을 쳐봐도 수필가가 고작이겠다.'고 생각한 후에 나름 수필가가 되려는 조직적인 노력을 하지는 못 했지만 꿈을 잃지 않고 살다가 실제로 [한국수필] 지의 2회 천료를 통해 수필가가 될 때까지 대략 20년 정도 걸렸습니다.ㅋ 90년도 초반에 그게 가능해 졌던 것이니까요.(근데도 뭐 글을 뛰어나게 잘 쓰지는 못 하는...ㅜ.ㅜ)

    그래서 제가 글쓰기 방법을 지도해 드릴 재목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전 글쓰기에 대한 꿈을 가진 이후 문장론 책을 가끔 한 번씩 읽어보면서 글쓰는 기본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근데 김 선생님이 글을 쓰시는 걸 보면 이미 잘 쓰시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일단 메모를 하시고, 그걸 토대로 생각이 바래지 않을 시간 안에 그걸 글로 정리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글을 여러 번 다시 보시면 됩니다. 첫 번째로 글을 되짚어 보면서 실수한 걸 고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윤문하고, 더 나은 표현이 있으면 그렇게 수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보세요. 그리고 그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아주 좋은 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 ?
    김경호 2017.06.22 00:05
    예전부터 박사님의 글이 롤 모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문외한인 저에게 적절한 방법을 알려주시고 응원해주시니 힘이 생깁니다. 고맙습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21 19:43 Files첨부 (1)

    Facebook에 올린 글.

     

    c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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