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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17.06.17 02:01

장마루촌의 이발사와 조용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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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수), 이 날짜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읽고 불현듯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소위 "장마루촌"으로 불리는 파주의 장파리를 방문키로 한 곳이다. 나로서는 네 번째로 가는 것인데, 두 번은 차를 타고 이 마을을 지나치면서 보았고, 또 한 번은 차를 세우고 좀 더 자세히 보았으나 역시 주마간산격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파악을 할 수 없었고, 찾고자 하는 곳을 발견치 못 했었다.

 

찾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 하난 "장마루촌의 이발사"란 고전 영화를 찍은 장소였고, 또 하난 무명시절의 조용필이 노래를 했다는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였다. 그 두 장소가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글을 예전엔 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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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기사를 읽고 집사람과 함께 파주 장파리로 향하게 된 것이다. 기사의 주제는 "장마루촌의 이발사"란 영화가 촬영된 파주 장파리와 그곳의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에서 노래한 조용필, 그리고 현재의 "라스트 찬스"를 돌보는 두 예술가에 관한 것이다.

 

* 기사 전문은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 [박종인의 땅의 歷史] 그때 우리네 삶은 고단했었느니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3/20170613035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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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화석정

 

내가 드라이브 삼아 자주 가는 곳이 파주 지역이고, 파주에 가면 거의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있다. 그곳은 화석정이다.(주소: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 100-1 / 전화: 031-952-9233) 내가 역사 인물 중에서 큰 관심을 가진 이가 바로 율곡 이이인데, 화석정이 그와 관련된 유적이며, 이이의 호인 율곡이 바로 그의 고향인 율곡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같은 파평면내에 있는 자운서원은 율곡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거기에 율곡과 신사임당 등이 묻힌 가족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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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에 갔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율곡 이이의 유적 중 하나인 화석정에 들렀고, 먼저 화석정 내의 매점을 찾았다. 이유는 이곳의 관리인인 신동균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이다.(좌: 집사람 고성애, 우: 신동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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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여름에 처음 뵙고, 그 이후에 그곳을 자주 찾으며 친분을 쌓은 화석정 관리인 신동균 선생님. 이분은 올해 83세가 되셨다고 한다. 한동안 편찮으시다고 했는데, 다시 건강을 되찾으신 듯하다. 원래는 파주가 군(郡)이던 시절, 군청에서 문화담당관으로 계시던 분이다. 신 선생님의 은퇴 후에 파주군에서 이곳에 매점을 짓고, 신 선생님께 그걸 운영하시도록 특혜를 드렸는데, 그것은 이분의 문화유적 사랑이 워낙 깊음을 군에서도 인정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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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에 새로 만든 안내판이다. 여러 개의 길을 두고 지은 이름이 재미있다. "팔세마음길"은 화석정과 관련된 길임을 알 수 있다. 율곡 이이가 8세에 화석정을 두고 지은 시가 있기 때문이다. 여덟 살난 천재 소년의 마음에 담긴 심정이 그 화석정 팔세부 시에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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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주길 탐방로 중 한 곳인 이 화석정의 스탬프를 찍을 수 있도록 도장과 책자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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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리에 터를 잡고 살았던 율곡 이이의 5대조가 건립한 화석정도 이 땅의 전란을 우리와 함께 겪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시에 불탔던 정자를 1966년에 파주의 유림들이 복원한 것이며, 화석정 현판의 휘호는 역사인물로 이순신과 율곡 이이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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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판에 "병오 4월 박정희"라 쓴 것이 보인다. 군인이자 교육자 출신의 박정희가 가진 "문(文)"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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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보이는 임진강의 다리를 처음엔 북진교(리비교)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리비교처럼 진동면("동파리"쪽)으로 건너가는 다리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날에서야 다리 왼쪽 편으로는 민통선을 지나야 하기에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임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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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은 지도 하단의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이다. 가고자하는 곳은 상단의 장파리이고, 그곳이 바로 장마루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 지역이 3파리로 불리기도 한다. 장파리, 금파리, 동파리의 세 동네이다. 여기서 한자어 파(坡)는 언덕을 의미한다. 장파는 긴 언덕이오, 동파는 동쪽언덕을 의미하는데, 그럼 금파는 금광이라도 있는 언덕인가?^^ 동파리는 나중에 해마루촌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기사에 적혀있듯이 동파리가 "똥파리"와 비슷한 어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 세 개의 동네 이름 중에서는 금파리가 제일 나은 듯하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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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오랜만에 화석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 왼쪽 어깨 쪽에 신발 하나가 보인다. 웬 신발???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화석정 마루엔 관광객이 원하면 올라갈 수 있다. 신발만 벗고 올라가면 된다고 쓰여있다. 여름 한 철 무더위가 한창일 때도 이 화석정 뒤의 벤치에 앉으면 시원하다. 임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이다. 시간 여유가 많을 때 이곳에 책 한 권 가지고 와서 한적하게 독서하는 게 내 꿈 중 하나인데, 이 소박한 꿈은 내가 항상 드라이브에만 정신이 팔려 아직껏 이뤄지지 못 하고 있다.^^; 언젠가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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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정 바로 아래쪽엔 "화석정 가든"이란 식당이 있다.

 

위의 사진을 찍은 이유가 있다. 화석정 아래 사시던 한 예술인 부부가 장파리로 옮기셨고, 그곳에서 라스트 찬스란 예전의 미군 클럽을 2014년에 재건한 후 지금껏 돌보고(?) 계시다는 걸 위의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화석정 가든 자리는 원래 -- PC통신 시절 한 때 하이텔에서 날리던 글재주꾼인 pctools란 아이디의 -- 김현국 선생(http://goo.gl/uK6xME)이 태어난 집이있던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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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정 밑으로 연천까지 새로 난 도로(율곡로)를 달려 "리비 사거리"까지 왔다. 리비 사거리는 리비교(Libby Bridge)가 사진의 왼편에 있기에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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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이번 드라이브의 목적 중에는 리비교를 건너보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 사거리에서 녹색 신호가 나왔을 때 비보호 좌회전을 하기로 했다. 이 사거리의 오른쪽이 바로 내가 가보기로 한 장파리가 있는 곳이다. 이 길의 이름이 진동로인 것은 내가 달려온 율곡로를 가로지르는 이 도로가 왼편의 임진강 너머 진동면에서 시작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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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회전을 하자 안내판 하나가 보이는데 그게 "리비 중사 추모비"에 관한 것이다. SFC LIBBY라 쓰여있는데, SFC는 Sergeant First Class의 약자이다.(1948년 이전엔 중사가 Technical Sergeant이었으나 그 후에는 SFC로 바뀌었다. 리비 중사 관련 영어 글에 아직도 그를 "테크니컬 싸아전"으로 표기하는 게 있기에...^^;) 장파리에 대한 웹 상의 어느 글에서는 이 다리를 건설한 사람이 리비 중사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쓰여있기도 했다.^^; 그게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임을 후술키로 하겠다.

 

그런데 다리를 지키는 초소(검문소) 왼편에 내걸린 배너 하나가 나를 실망케 했다.-_- 2016년 10월 14일(금) 저녁 7시부터 통행을 전면 금한다는 내용이다. 그간 이곳에 와 볼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정말 아쉬웠다.(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나 아쉬워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다리는 민통선 통행증을 가진 일부 주민들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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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에 들어 실시한 리비교의 안전등급이 E등급으로 매우 불량하게 나온 바람에 이 다리를 폐쇄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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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말하는 북진교가 바로 리비교의 한글 이름이다. 부근에 주둔했던 미군 28연대 공병대(리비교를 건설한 부대)가 떠난 이후 주둔한 흑룡부대가 리비교란 이름을 북진교로 바꾼 것이라 한다.

 

www.dmook.co.kr의 "6.25 한국전쟁참전기념비" 리스트에서 "리비 추모비"를 검색하니, 911번째로 "고 중사 리비 추모비"란 것이 나온다.(https://goo.gl/e5mN3X) 이 추모비는 흑룡부대 내에 있는 것이라 그 비를 직접 볼 수는 없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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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일련번호가 재미있다. 내가 이 날 타고간 차가 노란색 911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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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의 리비교 사진. 이 다리는 1953년 7월 4일(미국 독립기념일)에 완공되었다. 이 사진은 다리의 동쪽인 장파리 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리비교는 1953년 7월 4일을 기해 1950년 7월 20일에 대전 전투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죠지 달튼 리비(George Dalton Libby) 중사에게 헌정되었다. 리비 중사는 한국전 최초의 미 정부가 주는 Medal of Honor(명예훈장)를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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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산의 벙커에서 내려다 본 리비교. 건너편 동쪽에 있는 마을이 1969년 당시의 장파리이다. 현재는 동쪽 검문소에서 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좌우로 길게 뻗은 국도(율곡로)가 있고, 리비 사거리가 있지만, 당연히 이 사진을 찍을 당시는 그 도로가 생기기 이전이다. 예전에도 좁은 국도로 율곡로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보이는 넓은 국도는 내가 이 지역을 드라이브하기 시작한 2000년 초반에는 없었고, 당시엔 다른 도로를 통해 연천, 철원 등지로 향했었다. 이 넓고 잘 포장된 도로는 몇 년 전에 새로 개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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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로를 따라 리비교 사거리에서 좀 더 진행한 곳인 장파 사거리에서 장파리로 향하는 길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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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편에 "여기는 '장마루 먹거리촌'입니다."라고 쓰인 간판이 중앙에 보인다.

 

장파 사거리에서 전과는 또다른 기대로 장마루촌을 향했다. 네 번째로 들른 이곳에서 이젠 뭔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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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리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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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발견한 동영상 중에서  캡춰한 사진이다. 이곳 장파리에서 촬영한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ㅜ.ㅜ 장파리를 한 바퀴 차로 돌았는데 장마루 이발소도 예전의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도 찾지 못 했다. 하긴 지난 세 번의 기회에서도 별다르지 않았던 것이니까...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집사람과 나는 리비 사거리에서 진입한 장파리 중앙통 도로(장파로)를 장파1리에서 2리 끝까지 달려갔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 해 참담한 심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율곡로로 들어서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파 2리 끝의 막혀있는 농로까지 왔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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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농로 끝에서 본 집을 짓는 장면. 집을 짓는 방식이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 미국식으로 뼈대를 세워 올리고 있다.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에 대하여...

 

도대체 "장마루촌의 이발사"가 어떤 영화이기에 58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까지 내가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1959년에 첫 번째로 영화화되고, 10년 후인 1969년에도 영화화된 바 있어서 한국영화사에서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당시는 한 개의 영화가 두 번이나 영화화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춘향전이나 이순신에 관한 영화말고, 이런 전쟁 멜로물이 여러 번 영화화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던가?

 

물론 내가 가진 그 관심은 지금 생긴 것이 아니고, 이미 17년 전에 생긴 것이다. 당시에 내가 첫 포르쉐(Porsche Boxster)를 구입했고, 그 때부터 이 파주 일대를 자주 드라이브했었던 것이다. 그 때 장파리가 장마루촌으로 불리는 마을이며, "장마루촌의 이발사"란 옛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아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인 KMDb 등에서 구해 본 이 영화에 대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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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루촌의 이발사(A barber of village Jangmaru), 1959

 

원작: 박서림(KBS 라디오 방송극 <장마루촌의 이발사>의 영화화)


감독: 최훈
각본: 최요안
제작: 한성영화사

배역: 최무룡, 조미령, 김지미, 이동원, 황정순, 이민, 박노식, 문정숙, 추석양, 조석근, 허장강

 

시놉시스(Synopsis): 장마루촌이라는 마을의 청년 동순(최무룡)은 이웃의 구장(區長)의 딸인 여대생 순영(조미령)과 사랑하는 사인데 6ㆍ25 전란으로 동순은 북한군에게 잡혀간다. 그 뒤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그는 군에 입대하여 격전 끝에 부상, 성불구가 되어, 몇 해를 두고 죽은 것으로 알려진 동순만을 생각해오던 순영과 만나나 눈물을 머금고 그를 멀리한다. 하지만 사실을 안 순영은 그의 힘이 되어 장마루촌의 재건을 돕는다. by KMDb(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신문평: 통속적이나 건전한 주제/ 「장마루촌의 이발사」  조선일보 1959-10-12

 

1959년 영화의 각본: http://www.parkseolim.pe.kr/장마루시/장마루1.html(출처: 1959년 '年刊 시나리오 선집' 成文閣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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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터의 맨 위에 실린 캐치프레이즈가 대단히 고전적이다.^^ "성불구자의 가련! 애통! 고뇌를 아낌없이 파고드는 문제의 초대작!" 아마도 신세대들은 주인공 최무룡이 누군지 모를 것이다. "배우 최민수의 아버지"라고 해야할 배우이자 가수였던 당시 최고 배우 중의 하나. 포스터 오른쪽 하단의 남자 배우는 박노식인데, 그 역시 "배우 박준규의 아버지"라고 해야 신세대들은 알 것이다.^^

 

포스터에는 이 영화가 "건국10주년기념현상모집 1등 당선작, HLKA 연속방송극"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HLKA는 현재로 치면 KBS 라디오의 호출부호이다.) 시놉시스를 보면서 '뭔 놈의 극 주제가 이렇게 촌티가 나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지만, 이 극본이 쓰여진 것이 1958년, 즉 한국전쟁이 끝난 지 겨우 5년이 지난 시점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라디오의 연속 방송극으로 방송될 당시에는 드라마의 주제곡이 없었으나 1959년에 영화가 제작될 당시에 최훈 감독이 주제가를 작사하고, 김광수 KBS 악단 지휘자가 작곡하였으며, 당시의 인기가수인 박재란이 노래를 하여 크게 히트했다고 한다.(노래를 들어보시려면 유튜브에서... --> https://goo.gl/TEHVsB)

 

장마루촌의 이발사(주제곡)

 

별빛처럼 빛나는 그리운 눈동자
푸른 꿈이 어리어 다정하여라
향기로운 꽃바람 불어오며는
사랑도 잎이 피네 꽃이 피어나네.

강물이 흘러가듯 세월이 흘러가도
나무잎이 흩어지는 겨울이 와도
우리들 마음에 피어난 꽃잎은
세월이 다하여도 영원히 빛나리.

아~~~아~~~.....아~~~아~~~
아~~~아~~~영원히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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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최무룡, 중앙: 김지미, 우측: 조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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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추석양(한자로 "가을의 석양"이란 의미이니 멋진 예명이 아닌가?^^), 황정순, 김지미, 최무룡. 처음엔 최무룡이 안고 있는 여자를 안인숙으로 보았는데, 젊은 시절의 김지미임을 뒤늦게 알았다. 1969년작의 동 영화에 다시 출연한 김지미의 얼굴은 낯이 익은데, 그보다 10년 젊은 김지미의 모습은 좀 낯설다.^^;

 

위는 1959년작 "장마루촌의 이발사"에 관한 자료였고, 아래는 1969년작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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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와 허장강은 10년 간격으로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에 다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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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루촌의 이발사, 1969


원작: 박서림
감독: 김기
각본: 김강윤, 문명관
제작: 연방영화주식회사
시간: 98분

 

배역: 신성일, 김지미, 남정임, 이대엽, 허장강, 최남현, 한은진, 이낙훈, 백일섭

 

시놉시스: 애달픈 사랑의 옛전설을 간직한 '사랑 바위' 앞에서 불같은 사랑을 맹세한 두 남녀가 있었다. 이발사인 사나이는 6.25에 남침한 괴뢰군에 납치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생환하였으나 폐인이나 다름없는 성불구자의 몸이었다. 성불구자인 그는 자연 애인을 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인은 한때 오해도 했었지만 그가 성불구의 몸인 것을 알고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전보다 더욱 그를 열열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두 남녀는 다시 '사랑 바위' 앞에서 영원토록 변치말고 사랑할 것을 굳게 맹세한다. by KMDb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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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은 김지미, 맨 오른쪽은 이대엽.(이분은 나중에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초대 성남시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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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허장강 씨는 "배우 허준호의 아버지"라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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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에 이낙훈 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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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백일섭 씨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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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에 이르러 시쳇말로 "졸혼"의 개념을 최초로 소개한 이 영화의 주인공 신성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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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미와 남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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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전장의 장면은 강원도의 어딘가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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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 차림의 이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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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미와 이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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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와 같이 자료가 명확히 남아있는데, 이상하게도 원작자인 박서림 선생께서는 본인의 홈페이지( http://www.parkseolim.pe.kr)에서 1959년과 1969년의 작품이 둘 다 최훈 선생의 것이며, 김기 감독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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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루라는 것은 긴(長) 마루이다. 마루는 순 우리말이며 "하늘이나 산꼭대기"를 의미한다. 긴 산마루가 있는 곳이 장마루인 것이고, 그것이 장파리의 또다른 이름인 것이다. 경기도 포천군과 경기도 파주군에 장마루란 지명이 있으나, 이 영화의 제목에 있는 장마루는 작가인 박서림 선생의 고향인 "충남 서천군 서천읍 신송리"이며, 이 동리가 장마루로 불려 왔다고 한다. 그래서 2004년 10월 28일 충남 서천읍 신송리 장마루에서 <장마루촌의 이발사> 문학비 제막식이 있었다. 주민들은 축사에서 “이 고장 출신 박서림 선생은 청춘시절부터 백발이 된 지금까지 문학에만 전념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며 “그 업적과 뜻을 기리고자 문학비를 세워 영구히 보존하고자한다”고 했다. 이 해에 박서림 선생의 연세는 74세였으므로 13년이 지난 현재는 87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선생님은 현재까지 상기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계시다.

 

작가 박서림 선생의 "장마루촌의 이발사" 관련 글(https://goo.gl/UyHxKq)에 의하면, 이 영화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이름인 동순과 순영은 작가 주변인의 실제 이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임동순 씨란 분은 잡지 [자유세계]의 창간 멤버로서 작가와는 동년배요, 술을 함께 좋아한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호인으로서 "동순"이란 이름이 부르기 좋고 선량한 인상을 주는 이름이기에 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 석순영은 [자유세계]에 있다가 [주부생활]로 옮겨간 석진희 양과 군에 있을 때 알았던 여군 황순영, 두 사람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 얘기를 마치고, 다시 현실 세계의 장마루촌으로...

 

율곡로를 달려 되돌아 온 후에 다시 장마루촌으로 향했다. 이번엔 기사에 실려있는 라스트 찬스의 새 주소(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진동로4, 031) 958-9240)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놓친 것이 있을 듯하여, 이번엔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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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타고 들어가다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주차시킨 후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녔다. 집사람 역시 자신의 DSLR인 Canon EOS 5Ds를 들고왔고, 카메라 장비가 가득한 백팩까지 메고 왔다. 하지만 이 글 속의 사진들은 모두 내가 사용하는 하이엔드 카메라인 Sony RX100 M4로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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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생각은 없이 '장마루촌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겨 보자!'며 그곳의 시골스런 풍경들을 찾아 셔터를 눌렀다. 시골 담벼락에 흔한 끈끈이 대나물이 여기저기서 뵌다. 벌써 꽃이 많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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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의 나리꽃도 매우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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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시인 덕분에 잊지 않게 된 꽃, 접시꽃이다. 큰 길가에 이렇게 풀이 자라고, 꽃이 있는 동네라니...^^ 역시 멈춰야 보이는 게 많다. 자동차로 이 길을 지나면서는 보지 못 했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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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로 큰 길가의 밭에는 이렇게 옥수수가 자라고 있고, 뒤엔 트랙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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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옥수수 밭 뒤엔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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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쌓아 만든 담장 너머로 보이는 교회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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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빛을 의미하는 한빛교회의 십자가 탑 아래엔 기독교의 상징인 "오병이어(五餠二魚)"가 네온사인으로 그려져 있다. 예수가 빵(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명을 먹인 후에도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신약성서의 복음에 의거한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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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 옆의 줄장미와 시골 교회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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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가다가 이런 벽화를 발견했다. 능소화등의 꽃이 있고, 농부의 모자를 쓴 발의 모양이 있는데... 농부의 걸음이 꽃길을 만든다는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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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루로 211호 벽에 그려진 그림이 뭘 의미하는지 적어놓은 작은 액자가 있었다. 차로 지나면서 이런 걸 볼 수가 있었겠나?-_-(실은 저 벽화도 못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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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그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이 쓰여있었다. 글에서 장마루 주민으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보이고, 그들의 자존심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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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또 뭘까???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장파중학교란다. 그래서 중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담벼락엔 이 중학교를 지은 사람들에 관해 영어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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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2사단 장교와 사병들의 힘으로 장파중학교가 세워졌음을 알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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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신문 사진, 2015. 장파중학교의 예전 사진이다. 여기엔 벽화가 없고, 벽은 갈라져있으며, 지붕도 엉망이다. 장파중학교를 현지인들은 "재건중학교"라 부른다. 전란으로부터의 재건(reconstruction)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이 사진으로 판단할 때 당시나 지금이나 이 건물은 폐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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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중학교 건너편엔 장파초등학교가 있었다. 6월, 호국보훈의 달 배너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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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람이 다른 곳을 촬영하는 동안 난 장파 초등학교 정문 쪽으로 걸어내려갔다. 여기도 화려한 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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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초등학교 담 밑엔 이렇게 나무와 풀이 우거져있다. 빨간 열매가 달린 저 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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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게 보리수 나무였다. 그런데 거기 달린 보리수가 엄청나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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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니 거기도 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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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초교 담밑의 돋나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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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초교 정문 건너편 집엔 예전에 그 자리에 있던 문방구를 벽화로 그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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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그걸 피해 찍었다. 지금은 이 건물에 사람이 살지 않는가 보다. 중간에 "매매"를 알리는 노란 배너가 붙어있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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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초등학교 정문 앞이다.

 

다시 큰 길가로 나왔다. 장파중학교 건물 부근에 장풍 정미소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벽에 아래와 같이 옛날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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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풍이란 이름은 이제는 북한의 관할 지역이 된 장풍군과 관련되는 듯하다.(북의 개풍군, 연천군 지역을 합쳐 장풍군이 만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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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있는 사진은 지금도 건재한 천주교 성당(천주교 장파공소)이다. 아래 사진은 장파리에 달러가 넘치던 시절에 그곳에 있던 여러 미군 클럽이나 바들 중 하나인 Lucky Bar의 사진이다. 미군들이 장파리를 떠나기 전에는 이곳에 메트로홀, 럭키바, 나이트클럽, DMZ홀, 블루문홀(흑인병사 전용 클럽), 라스트찬스의 여섯 군데 미군 클럽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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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파리는 한 때 주민이 5천 명이나 되고, 유동인구가 3만 명이나 되던 전성시절을 구가했는데, 그것은 주변의 미군부대들(특히 미군 28연대, 공병대) 덕분이었고, 그들이 떠나간 1974년 이후에 쇠락(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미군이 완전히 떠난 것은 1977년이라고 한다. 골드 러쉬가 지나간 곳은 어차피 그러기 마련이니...

 

그 덕분에(?) 쇠락한 장파리의 모습은 그 시절의 모습을 담은 채 얼어붙었다. 마치 1970년대의 거리 모습을 재현해 놓은 영화 세트장처럼 그 시대의 화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어찌보면 이것은 장파리의 좋은 관광자원이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은 영화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고, 조용필이 무명 시절에 절치부심하던 곳이기도 하니 멋진 스토리 텔링이 가능하지 않은가? 여기에 관광의 최근 경향인 체험까지 추가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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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 걸린 사진들은 시쳇말로 "추억 돋는" 풍경들을 담고 있다. 당시에도 "국제결혼"이 성했는지, 그런 간판도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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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장파리의 추억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건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어느 마을에 그 마을의 옛 사진들이 걸려있단 말인가??

 

이렇게 달리는 차를 멈췄을 때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장파리 길가의 많은 집들 중 여러 개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나중에 알았는데, 그곳엔 실제로 많은 공가와 폐가들이 있었는데, 장파리가 정부의 안전마을 사업 대상으로 지정된 2015년 이후에 이를 재정리하는 공사를 했다고 한다.) 장파리는 뭔가 다시 살아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벽화를 그리고, 망가진 집들을 재정리하고, 추억의 사진들을 내건 것이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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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보나마나 장파리의 60년대의 풍경일 것이다. 포장이 안 된 이 중심 도로는 비가 오면 진창이 되었을 것이고... 그 당시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중소도시들이 그 모양이어서 어딜 가나 "우리 동네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장파리 주민들도 한 때 그런 소리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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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장파리의 새로운 세대들이 가진 전향적인 생각을 이 액자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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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초교 뒷길에도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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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옆에 보이는 트랙터들. 이곳은 기업 영농을 하는 농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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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를 저런 식으로 그려놓은 집도 있다. 상점 간판이 아니고, 민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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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그려넣은 그림처럼 꽃이 핀 수많은 화분들도 집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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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 집의 주인이 누군가를 저렇게 적어놓았다.^^ 아주 보기 좋은 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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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민통선 부근의 상점 이름답다. "북으로 진격한다"는 의미의 북진상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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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물점의 이름도 부근의 강 이름을 따서 "임진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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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희한한 것은 2015년 안전마을 지정과 함께 새로 정비한 이 동네의 간판들이 왜 저렇게 낡고, 녹이 슬어버렸는가 하는 것. 혹 안 좋은 자재를 사용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좀 낡은 느낌을 주기 위하여 일부러 저렇게 만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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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집들도 간판의 사정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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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이라면 대성공, 만약 그게 아니라면 세금이 엉뚱하게 사용된 것인 셈이다. 이 윤가네 식당은 간판만 있고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 식당은 길 건너편으로 옮겨 새로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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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것인데, 이 사진을 나중에 보고서야 이 부근이 매우 의미있는 장소임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기술토록 하겠다.(여기 차를 세우고, 길건너편에 노래방이 있는 걸 봤는데, 그 덕분에 중요한 걸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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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들이 다 이렇다. 핸드폰 전화가 적혀있는 걸 보면 간판을 만든지 오래 되지 않은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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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길가에 트랙터들이 많이 보이던데, 그게 이런 농업회사법인이 있는 까닭인 듯하다. 유한회사의 이름이 "동파리"이다. 장파리에서 멀지 않은 동네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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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구장의 장식도 이렇게 녹이 슬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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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점수퍼의 간판도... 종점 수퍼는 이곳이 버스 종점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장파리는 한 때 시외버스 터미널이 들어설 정도로 큰 동네였다고 한다. 70년대 초까지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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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파리의 길가엔 많은 간판들이 있지만, 그런 간판을 달고 있는 집들 중에 많은 것이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는 마치 영화 세트와도 같이 만들어진 것이었다.(길가의 집들 중 공가와 폐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나중에 2015년의 마을 정비 사업 관련 사진을 보니 다 무너진 폐가도 많고, 비어있는 집들도 많았다.) 위의 식당과 다방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카페란 이름보다 이곳에서는 다방이 더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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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단상회. 저 이름 역시 파주지역이 장단콩으로 유명한 곳이고, 과거에 장단군(長湍郡)이 경기도 북서부에 있었던 군이라 거기서 따 온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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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녹슨 간판을 달고 있던 "윤가네 식당"은 이렇게 원래의 식당에서 멀지 않은 길 건너편에 새로이 둥지를 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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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시골다운 풍경이다. 연탄재를 비료(?)삼아 밭에 던져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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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엔 흰꽃 조화들이 꽂혀있고, 뒤에는 "장마루촌 안전마을 쉼터"가 커다란 돛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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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엔 6월에 피어나는 밤나무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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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의 닻은 이렇게 소나무로 깎아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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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루촌 안전마을 추진위원회"란 단체가 있어서 마을 발전을 위한 일을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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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 마을 쉼터에서 하는 일이 적혀있다. 다 좋은 일이다. 쉼터장의 전화번호도 적혀있다. 010-9728-1253. 이런 일을 하는 분은 어떤 분인가 만나보고 싶었다.(Postscript: 이 글을 두 개로 나눠쓰고 난 후에 저 전화번호로 인사와 함께 두 글의 링크를 적은 메시지를 보내다 알게 된 재미난 일이 있다. 이 번호가 나중에 찾아간 라스트 찬스의 게시판에서 발견한 쥔장번호와 동일하다는 것을...^^ '아, 그 윤상규 선생님이 이 마을을 위해 엄청난 봉사를 하고 계시구나!!!!'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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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다운 풍경이다. 유성종묘사에서는 종묘를 이렇게 길가에 내다놨다.^^ 인도를 막고 있으니 서울 같으면 어림 없는 일이겠으나 여기서는 이런 일이 허용되고 있고, 그래서 인간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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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하나 더 있다. 아깐 한빛교회였는데 이곳은 장파교회이다. 그러므로 장파리에는 두 개의 개신교회와 하나의 천주교회(장파공소)가 있는 셈. 장파리는 장파1, 2리를 합쳐 약 2km에 걸친 동네로서 그리 크지 않은데, 교회가 많은 걸 보면 아직도 장파리가 주변 커뮤니티의 중심이고, 다른 마을에서도 신도들이 이곳의 교회들을 찾아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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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한 군데로 들어가 봤다. 역시 시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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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중소도시의 뒷골목을 세트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골목안 풍경들이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집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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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 안 첫 집의 연탄광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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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강별장이라고 쓰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운영되지 않고 있는 음식점이다. 이 동네의 간판 위에는 대부분 저런 조명들이 달려있다.

 

이렇게 동파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결국 장마루 이발소와 라스트 찬스를 찾지 못 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라스트 찬스의 주소로 차를 몰았다. 그러고서야 라스트 찬스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린 장파리의 중앙통이 아래 사진에서 좌우로 놓여있기에 그 길 만을 여러 번 달렸던 것인데, 라스트 찬스는 삼거리에서 율곡로 쪽으로 빠지는 길 바로 옆에 있는 민물 매운탕 집인 임진강 황포나루 식당에 붙어 있는 건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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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사거리가 "리비교 사거리"였다는 것. 우리가 좀 헤매느라고 장파 사거리에서 장파리 중앙통을 몇 번 오간 것인데, 만약 리비교 사거리로부터 우회전을 해서 장파리로 들어왔다면 우린 길건너편에 보이는 라스트 찬스를 바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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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찬스에서 조금만 직진하면 이렇게 리비 사거리가 나타난다. 저 리비교 건너 미군부대에 있던 장병들이 리비교를 건너와서 곧바로 만나는 커다란 2층의 흰 건물이기에 그 클럽을 훠스트 찬스(First Chance)로 부르고 휴가를 마치고 들어가는 마지막 장소이기에 라스트 찬스라 부른 것이라는데, 그걸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리비교를 중심으로 라스트 찬스의 위치를 파악했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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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교 쪽에서 들어오다 보면 오른편에 이런 장파1리 이정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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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왼편엔 장마루 촌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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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산마루 혹은 긴 언덕을 장마루라고 한다는데, 여기서는 그게 긴 등마루로 표현되고 있다. 오히려 길다란 산등성이를 잘 표현하는 말이 긴 등마루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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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루의 중앙통이 여기서는 "장마루길"로 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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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라스트 찬스로 왔다. 건물 바로 옆의 "김효순 아뜰리에"란 간판이 붙은 곳 안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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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라스트 찬스 건물이다. 원래는 2층 건물이었는데, 미군들이 장파리를 떠난 직후에 클럽 직원들이 머물던 2층 건물을 당시의 주인이 세금을 때려맞을까 염려하여 곧바로 부숴버렸다고 한다.

 

70년대 이후 이 건물은 당시의 모습 대로 남아있었지만 사용되지 않고 있었는데,  앞서 화석정 부근에 살던 설치예술가 윤상규(59세), 김효선(55) 부부가 2013년에 장파리에 왔다가 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는 이 건물이 창고로 쓰이고 있었는데, 창고의 물건 더미 너머 벽엔 라스트 찬스의 영화롭던 시절의 부조나 그림 장식들이 그대로 살아있었고, 조용필, 김태화, 윤항기 등이 노래했던 무대도 존속하고 있었기에 근 2년에 가까운 노력으로 2014년 12월 30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라스트 찬스의 재건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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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라스트 찬스는 부활했지만, 이 간판 오른편의 정문은 닫혀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원하면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왼편 마당(김효순 아뜰리에 간판이 있는 곳) 안으로 들어가면 뒷문이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로서의 영업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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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쥔장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칠판이 보인다. 010-9728-1253 윤/김 부부 중 한 분의 전화번호일 것이다. 이곳엔 게스트 하우스가 운영된다고 하니 원하는 분은 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시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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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다. 역시 예술가가 사는 곳답다. 그림이 흐트러져 있고, 머리가 없는 것도 있는 걸 보면 돌멩이 일부를 누가 가져갔거나 그게 밑에 떨어져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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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설치 미술 작품 중 하나이다. 낡은 스쿠터 위에 놓인 화분. 라스트 찬스 건물 앞 공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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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부근에서 보이는 -- 옛 추억의 사진 속의 -- 장파 성당(천주교 장파공소)이다. 그런데 장파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은 같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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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사진 속의 성당과는 달리 건물 외벽에 나무 장식을 추가했다. 훨씬 더 고급져보이게 꾸민 것이다.

 

장마루촌의 이발사와 조용필 - 2로 연결된다. --> http://www.drspark.net/index.php?mid=sp_freewriting&document_srl=34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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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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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하 2017.06.20 07:11

    박사님과 드라이브 같이 간 거 같은 생생함!!!

    율곡의 마을이라니! 제가 부끄러워 지네요!

    2편으로 고고~~

     

  • profile
    한상률 2017.06.20 23:59

     위 김지미 사진은 정말 안인숙 닮았습니다. ^^; 

    아 그리고 옥의 티. 

    연탄재는 거름 역할 못 합니다. 연탄=석탄이라 그냥 재거든요. 중간쯤에 쇠락이라 써야 할  곳에 쇄락을 쓰셨습니다. 

     

     

  • profile
    박순백 2017.06.21 12:08 Files첨부 (2)

    아, 쇠락을 잘못 썼구나.^^

     

    그리고 연탄재는 전부터 밭에 뿌려주는 게 예전부터 농촌에서는 관례화되어 있어.

     

    c1.png

     

    c2.png

     

  • profile
    한상률 2017.06.22 20:27

    타고 남은 거라 비료라 할 유기물 성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해는 없고, 흙 대신 부피도 차지하니 그냥 밭에 버리는 거죠.  ^^;

  • profile
    박순백 2017.06.25 19:02 Files첨부 (1)

    동생의 글. 역시 생각하는 게 비슷하니...^^

     

    sk-park.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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