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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맛집
2015.07.26 18:14

집밥에 대하여

조회 수 2307 좋아요 0 댓글 5

어머니와의 푸근한 유년의 기억은 극히 한정된 상태에서 요즘 말하는 ‘집밥’을 이야기하려니 머쓱하기는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극히 짧은 기억이라할지라도 온전히 남겨진 기억의 조각들이기에 오히려 명료하다. 6살에 어머니와 헤어졌으니 그리 잘 갈무리된 기억이랄 것도 없지만 말이다.

대표적인 어머니와 연관된 기억은 밥과 양단으로 만들어 입으셨던 한복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밥이라고 해야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시래깃국과 몇 가지 반찬으로 차려낸 감자밥이 전부지만, 시장에서 미리 조리된 것을 사다 그릇에 담아주는 것이 아닌 수고로움이 곁들여진 일상의 밥이기에 8년의 시차를 두고도 기억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눈물로 왈칵 솟구쳤으리라 생각한다.

그 맛이 그리워 6년이란 시간이 더 흘러 스무 살이 되던 해 설에 다시 찾았을 때 6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밥상을 받았다. 이 8년과, 다시 6년이라는 시차에 의아하게 생각할 이들도 있겠다. 어머니와 헤어지던 해가 1969년이었고, 그로부터 8년 뒤인 1977년 가을 양구에 찾아가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983년 설에 어머니를 다시 찾아갔던 것이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기는 1977년이나 1983년 모두 같은 입장에서 처음엔 어머니가 보고싶다는 일념으로 어머니의 이름과 양구라는 지명만 알고 나섰고, 마지막엔 처음 어머니를 만났을 때 차려준 밥상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집밥이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같은 분량의 정성과 조리법으로 차려내는 손맛이 아닐까 싶다. 전에도 먹어 본 적이 없고, 이후로도 영원히 먹어 볼 수 없는 밥이라면 어찌 집밥이라 할 수 있겠는가.

 

 osaekri2015-at0105.jpg

 

귀하디귀한 자연산 산나물을 재료로 거론하지는 않겠다. 어머니의 손맛이 가장 온전히 기억되었던 음식도 산나물은 아니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시래깃국이었으니…

그 시래깃국이 먹고 싶어 1983년 2월 12일 양구엘 갔다.

전날인 11일 갈천으로 갈 생각으로 마장동에 나가서 양양까지 가는 직행버스표를 끊어 탔으나 원통에서 내려 하룻밤 자고 새벽 첫차로 양구로 넘어간 것이다. 설 명절인데 시래깃국을 먹게 되리란 생각은 정말 못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시래기를 넉넉히 준비해 겨울을 넘기실 생각을 하였으리란 믿음과, 자식이 그 맛이 보고 싶어 찾아왔다면 설 다음날이라도 시래깃국 하나야 끓여주시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갔을 뿐이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어머니는 아이들과 굶지 않고 사는 방법으로 아마도 겨우내 시래깃국을 끓이시는 모양이었다. 김치도 예전처럼 고춧가루가 고루 발라져있지 않았고 소금에 절인 배추에 멸치국물과 얼마간의 마늘이나 몇 가지 양념으로 버무린 눈치였다.

한 끼 밥을 하는 일이 귀찮아 자식들에게 자장면을 시켜주는 이들이 많고, 피자나 라면으로 한 끼 식사를 대체하여도 흉이 되지 않는 세태에서 새벽밥 먹고 아이들 잠 든 시간 산엘 올라 다음해까지 먹을 산나물을 채취하던 수고로움을 강요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자장면이나 라면, 피자로 한 끼 식사가 가능하게 한 마력은 실상 게으름에 빠진 어머니들의 책임이란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장보기 귀찮아서”란 말을 입에 올리는 주부도 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양육된 아이들이 멋 훗날 자식들을 위해 전해줄 맛의 전통이나 문화가 존재하기는 할까?

 

osaekri2015-a0073.jpg

 

매일 똑 같은 음식으로 어떻게 건강을 지키고 싫증(물림)을 면할 수 있겠느냐 항변을 할 것이다. 30분이나 한 시간 남짓 장을 보는 일도 귀찮은 입장에서야 그럴 수 있다. 손수 텃밭을 일궈 몇 가지 찬거리를 직접 가꾸는 것은 물론이요, 철따라 산과 들에 나는 온간 푸새들을 뜯고 캐다 차려내는 수고로움을 기억한다면 항변할 용기는 어불성설이다.

온실이나 노지에서 재배한 산나물을 향이 좋다며 호들갑을 떨고, 그런 재료로 밥을 팔면서 천연덕스럽게 자연산 운운하는 식당들을 보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 농약은 물론이요 거름 하나 주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절로 나고 자란 푸새를 먹어 본 이들은 재배되어진 남새를 기피한다. 깨끗하고 일정한 모양을 갖춘 것일수록 자연의 소산이 아니란 것을 그들을 안다.

그러한 차이를 선별할 줄 아는 안목이 있을 때 제대로 집밥을 가족들에게 차려낼 수 있음 또한 알아두어야 할 덕목은 아닐까.

Comment '5'
  • ?
    최경준 2015.07.27 21:31

    초등학교 시설 무청을 말린 시래기로 시래기국을 아주 잘 만드는 집 안일을 돌봐주는 누님이 계셨습니다.

     

    몇 년 간 그 누님이 해주는 시래기 국을 아주 맛있게 먹었구요

    또 그 국을 제가 좋아하는걸 누님도 아셨고

    장사하느라 몇 일 만에 한 번식 집에 오시는 어머님도 아셧기에

    어머님이 그 누님을 엄청 칭찬을 하셨어요. 시래기 국을 너무 잘 끓이고 제가 잘 먹는다고요

     

    세월이 흘러 장가를 가게되니 장모님이 끓이 시래기국이 예전의 그 시래기국과 같은 엄청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 연세가 드시다 보니 시래기국 맛이 예전 같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시래기국을 끓여 보기로 했습니다.

    예전과 같이 집에서 직접 무청을 말릴수는 없고 마트에서 대관령표 말린 시래기를 팝니다.

     

    그걸 일차로 물에 몇시간 불려서 아린맛을 빼구요

    또 몇 시간을 은근한 불에서 끓여요.

     

    그렇게 하면 반나절이 지나가죠

    그 삶은 시래기를 이제 걷의 얇은 막을 벗거야 되요

    마치 고구마줄기 벗기듯 하나 하나 삶은 시래기의 투명한 막을 벗깁니다.

     

    그리고 그 시래기를 다시 된장 다진마늘에 무쳐서 양념을 베게 해요

    이렇게 하다보면 아침부터 시래기를 잡고 있던게 어느듯 어두운 저녘이 됩니다.

     

    마직막으로 냄비에 된장을 풀고 여러 공정을 거친 시래기를 넣고 국을 끓이게 됩니다.

     

    이렇게 한 번 끓이며

    참으로 어릴적 많은 추억과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래기 말리는데 한 달 이상이 걸리는데

    나는 말려놓은 시래기 한 번 한다고 하루 죙일 시래기와 시름을 하면서

     

    아 예전에 이렇게 많은 손이 가는 시래기 인줄 알았으면

    맛있게 먹는걸로는 부족하고 뭔가 시래기 한 줄기라도 감사하며 먹어야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 저는 시래기국은 안하기로 했어요.

    그 어려움을 아는 장모님이 만들어 달라고 하면 모를까.

    시래기국을 끓여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해주지 말자.

    그 정성을 모르니 그냥 스파게티나 해주는게 낫다

  • ?
    한사정덕수 2015.07.28 00:08

    예전엔 시래기를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뭉근하게 삶았습니다.
    처음부터 찬물과 함께 시래기를 넣고 삶는데 묶은 끈(칡넝쿨)을 풀지 않고 함께 삶았습니다. 끈을 풀 수 없었으니까요. 끈을 풀려면 시래기는 바짝 말라 있어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눌러 줄기가 무르다 싶으면 그때야 불을 빼고 삶은 물까지 커다란 그릇에 옮겨 그대로 하루를 더 놓아둡니다. 이 과정은 모든 묵나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줄기는 제대로 풀어지지 않고 질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20여 분 삶아서 곧장 찬물에 나물을 건저 헹구는 이들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줄기는 뻣뻣한 나뭇가지처럼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아마도 껍질을 벗기셨다는 내용을 보았을 때 다 삶았다고 판단이 되어 찬물에 담그신 듯합니다.
    하룻밤 정도를 삶은 물 그대로 두었던 것을 건져 필요한 만큼 깨끗한 물로 헹궈 국을 끓이거나 볶음, 무침용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 profile
    Dr.Spark 2015.07.27 22:36

    글 전반부의 어머님 얘기에 마음이 싸아해집니다.ㅜ.ㅜ 제가 장년이 되도록 함께 한 우리 어머님께 제가 너무 잘못 한 것이 많아서 이 글을 읽으며 제 마음이 아파지기도 합니다. 더 어머님께 잘 해 드렸어야 하는데...ㅜ.ㅜ

     

    아들이 뭐라고 우리 어머닌 세상의 모든 걸 다 해주려고 하셨는지 모르겠고, 또 우리 어머닌 세상 모든 걸 다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별 걸 다 요구했던 철 없던 제 어린시절의 모습을 지금 제가 생각하면 저 자신이 불쌍하고... 저 같은 놈을 아들로 두고 속 많이 썩으신 우리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께 죄송해 지는 저녁입니다.

     

     

  • ?
    한사정덕수 2015.07.28 00:10
    박사님께서 오색에서 부모님을 위하여 평상을 그늘로 옮기시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바닷가나 그 외 다른 곳보다 집옆 나무 그늘이 좋으시다 하셨었지요.
  • profile
    Dr.Spark 2015.07.28 00:54

    그게 벌써 아주 오랜 날의 기억이 되어 버렸군요.ㅜ.ㅜ
    이젠 그 분들이 다 안 계시니...
    오색 "한계령에서" 산장에서 머무셨던 걸 아주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계셨던 분들인데...
    참, 인생이 덧 없지요?
    아버님 살아생전엔 환갑도 우리 집안의 큰 행사라 평소에 보기 힘들던 일가친척 모두에게
    통지를 하고, 통지를 받은 모두가 아버님을 위한 그 행사에 모여 오래간만의 인사를 나누
    었었는데...
    근데 이젠 제가 그 나이를 넘겼고, 이젠 장수의 시대가 되어 그런 행사는 촌스러워서(?)
    하지않게 되었지요. 당시에 제가 느낀 아버님의 그 까마득한 연세를 생각하면 지금 제가
    환갑을 넘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참 세월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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