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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람
2015.05.13 11:51

자연의 품성을 닮아가는 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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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452 추천 수 0 댓글 2

꾸밈도 거짓도 없는 불생불멸의 마음 천진(天眞)이요, 꽃이 활짝 피어 흐드러진 난만(爛漫) 아닌가!

 

 

완주군에 자리한 ‘임동창 풍류학교’를 찾기 전 이미 몇 편의 글을 썼다. 그러나 그 모든 글에서 임동창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보기에 알맞은 글은 아직 없다. 피앗고가 있고, 인연이 있으며 창작의 자세와 마음 내려놓기가 있을 뿐이다.

여전히 아흔 아홉 편의 글을 더 쓰더라도 임동창 선생님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입장에서 섣부른 글을 쓸 수는 없다. 도착하던 날 선생님께서 송도영씨와 흥야라 밴드의 정샘 단장을 비롯한 단원들의 환영 공연이 있은 뒤 책 한 권을 주셨는데 거기 이런 대목이 있다.

 

Dong-chang lim0036.JPG

 

“스님, 이제 화두를 주십시오.”

송담 스님은 화선지에 화두를 써주셨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

항상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 있더라

 

동용중수부득(動用中收不得)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나 얻으려 하면 얻지 못하니

 

시심마(是甚麽)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를 경상도 말로 바꿔 ‘이 뭐꼬?’가 되었다고 하셨다.

이 뭐꼬… 드디어 내게도 화두가 주어졌다.

 

-「노는 사람, 임동창」 문학동네 80~81쪽

 

너무도 당연하게 ‘임동창 풍류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임동창’ 선생님에 대해 쓰리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풍류학교가 임동창 선생님이시고, 임동창 선생님이 풍류학교인 바에야 송도영이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임동창 선생님이 아니겠는가. 신지 대표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마찬가지고 흥야라 단원이나 정샘 단장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그러하다. 그럴진대 ‘이게 무엇인고?’란 화두 ‘시심마(是甚麽)’는 내려놓고 마음에 시심(詩心) 가득 채우면 이 봄 피어나는 꽃 더불어 즐거울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는 산을 보듯 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될 일이듯, 그저 읽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가 임동창 선생님과 임동창 풍류학교의 참 모습이고 즐거움을 전달하고 더불어 세상을 흥겹게 하는 ‘흥야라’의 모습이다.

 

Dong-chang lim0010.jpg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눈 뜨니 딱 어제 그 시간인 아침 6시 반, 전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글을 쓴다고 선생님께서 내어주신 방에서 있었으나 술 한 잔 하지 않았으니 더욱 명징하게 아침을 맞았다. 일어나 앉아 더 잘까 생각했으나 곧장 생각을 고쳐 세수를 하고 옷을 입으려니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 부산하다. 분명 1시가 넘도록 모두 잠들지 않았는데 나이도 어린 이들이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의아스럽다.

게으름 피웠으면 참으로 망신스러웠을 노릇이다. 평소 일찍 일어나 움직이던 습관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구나 싶다. 때때로 글 한 줄 제대로 쓰지도 못할 때면 날이 훤히 밝도록 책을 읽는다. 아침 6시도 좋고, 10시도 개의치 않는다. 아이들 챙겨 학교에 보내고 특별히 할 일 없으면 두어 시간 눈 붙이는 걸로 피로를 풀던 습관, 참으로 다행이다 생각하며 뒷문을 열고 밖을 살피니 들어 올 때 이미 날이 저물어 몰랐던 후정(後庭)이 눈에 들어왔다. 문밖엔 평소 선생님께서 신으셨을 슬리퍼도 하나 있어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곡우(穀雨)에 맞춰 내린 비로 산은 알맞게 살을 찌워가고 도랑에서는 맑은 물이 넘쳤다. 싱그러운 아침, 이슬 가득 머금은 풀꽃들의 향연을 어찌 달다 아니하랴. 내친 걸음에 숲과 들을 둘러보며 얼마간 걸었다. 족두리풀과 자주괴불주머니가 지천으로 피었고, 흰병꽃나무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어떤 식성들을 지녔는지 모르거니와, 작의 성의로 눈에 띄는 푸성귀 얼마간 챙겨 가져갈까 싶었으나 행여 그로 인하여 불편할 수도 있는 일이라 눈에만 담았다.

이곳 가족들의 움직임에 방해될까 싶어 조용히 소로를 따라 얼마쯤 걸어 버스정류장까지 나왔다. 어르신들 몇 분이 버스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 선 이의 모습에 궁금증을 지닌 시선이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읍내 나가시나 봅니다.”
“풍류학교에 온 손님인가 봅니다. 면에 나가요.”
“네, 풍류학교에 초대를 받아 들렀습니다.”

버스가 도착하고, 운전기사는 문을 열어 놓은 뒤 승강장으로 내려 버스를 기다리던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임동창 풍류학교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참고비와 참취가 소로에 바짝 붙어 자라는 걸 보니, 제법 산이 깊은 모양이다. 여름철 싱싱하게 잎을 펼친 참고비를 보는 것도 좋겠다.

 

Dong-chang lim0003.jpg

 

발걸음을 돌려 생활관으로 돌아가니 밖에서 일을 하던 이들이 “편히 쉬셨습니까?”라 인사들을 한다. 하나 같이 밝은 얼굴이다. 욕심도, 불편함도 없이 저리 맑게 웃어 보이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사를 할 줄 아는 마음들, 그 이상 귀한 배품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선생님, 제가 어제 서울에서 일이 늦게 끝나 예상보다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데 선생님께서는 식사를 하셔야지요?”
임동창 풍류학교의 신지 대표가 아침인사를 겸해 전날 서울에서 일이 늦어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저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침식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선생님,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선생님의 계획에 따라 불편하지 않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특별히 그런 거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일정이 어떠신지 여기에서 예정된 일정에 따라 불편하지 않다면 동행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우선 글을 쓰던 게 있는데 조금 더 그 글을 정리하고 9시쯤 다시 뵙지요.”

 

Dong-chang lim0005.jpg

 

스스로 대단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에 대해서는 모른다. 안다면 단 하나,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마음 내어 진심을 다하는 걸로 인정을 베풀고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저 욕심 내려놓고 꾸밈도 가식도 없이 다정(多情) 하나 넘치면 되리라 생각한다.

내 살아 본 세상은 부박(浮薄)하기 그지없고 허망한 것으로 넘친다. 사는 일이 종잡을 수 없다. 괴이하고 요망하기가 환절기 날씨 같다. 조용하던 대기에 강풍이 휘몰아치고,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햇살이 환히 비치지 않던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안 되는 일 또한 없었다.

서둘 일도 없고, 미루어 둘 일도 아니다. 생각을 정리해 담아두면 절로 익어 편하게 쓰게 될 일이라 약속한 시간 방에서 나왔다. 임동창 선생님께서 막 차를 타시려다 다시 내리시며 말씀하신다.
“말씀 드려두었습니다. 한사 선생님 편하신 대로 말씀을 해주시면 모실 것입니다.”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이곳 식구들 편하게 평소처럼 활동하시면 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저는 따로 미리 약속한 일정이 있어 지금 나가야 합니다. 저녁엔 좀 늦을 것 같습니다. 머무시는 동안 편히 계시길 바랍니다.”

임동창 선생님께서 출발하시고 함께 배웅하던 신지 대표가 일정을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꾸며지고 연출되어진 모습은 싫다 전하고 오늘의 흥야라 단원들의 일정을 따르겠노라 대답했다.

신지 대표는 전주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로 완주아리랑 플레시몹을 가르쳐주려 나갔다며 그리로 모셔다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즉시 카메라만 챙겨 나섰다.

차창으로 온갖 꽃들이 다투어 핀 모습이 보인다. 저리 피건만 소란스럽지 않음이 이상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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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도착하여 강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1~2학년은 연습이 끝나고 3~4학년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이런 활동엔 수줍음이 많다. 그러나 맑은 눈빛으로 선생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따라한다.

완주아리랑은 완주의 13개 읍면에 각각의 아리랑을 완성하고, 다시 완주 전체를 아우르는 아리랑을 임동창 선생님께서 쓰셨다. 13개 읍면의 아리랑은 노랫말이 다르지만 한 곳에서 부르면 다시 하나로 합쳐질 수 있도록 되었다고 한다. 그중 완주를 대표하는 아리랑이 완주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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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흥에 쉬 동화된다. 욕심 없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기 때문에 그리할 수 있다. 아상(我想)을 고집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그리함으로 전체를 아우르고, 전체와 하나 되는 모습 꾸밈도 거짓도 없는 불생불멸의 마음 천진(天眞)이요, 꽃이 활짝 피어 흐드러진 난만(爛漫) 아닌가.

임동창 풍류학교에서, 그리고 흥야라 단원들의 활동을 본 느낌이 바로 천진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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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2'
  • profile
    박순백 2015.05.19 12:26

    TV에서 임동창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STB인가하는 CATV에서...

    확실히 멋과 풍류를 아는 분이더군요.

    대단한 분입니다.

  • profile
    정덕수 2016.09.27 14:27
    답이 늦었습니다.
    이 분 자주 뵙는 편인데요. 참으로 대단한 능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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