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보며 세월이 감을 실감한다.
바른 청년 김백겸 씨에 관한 글을 쓰면서 사용한 사진과 같은 날 찍은 사진 몇 장이 있다. 그 날이 집사람의 생일(09/15)이라 아들네 식구들과 함께 한 사진이다. 그 중에서도 두 장의 사진.
아래 사진은 아들네와 식사를 마치고 서로의 집으로 향하다가 찍은 것이다. 옆 차선에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가 다가왔고, 아이들이 열린 창문을 통해 웃으며 우리 차를 바라보는 사진이다.
- 며느리는 자기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멀미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 아들네가 어딜 가면 아들내미는 뒷좌석에서 작은 아이를 돌본다.^^ 큰 손녀 예솔이는 이제 다섯 살인데 생일이 늦은 애라 실제론 세 살이다. 큰 손녀 왼편 뒤에서는 작은 아이 예린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아이들이 탄 차의 밑부분에 우리가 탄 노란 차가 비치고 있다.)
- 얘는 작은 애 예린이다. 이제 돌 지난 지 6개월 정도.
우리 아들내미 현근이는 장모를 모시고 산다. 홀어머니에 외동딸이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이젠 "시집 오는" 게 아니고 "장가 가는" 모계사회가 다시 도래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보니 큰 아이 예솔이가 더 어렸을 때는 한동안 친가 쪽의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집사람이 가끔 서울 할머니, 동탄 할머니의 구분법을 큰 아이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자리에서만 아는 척하다가 다음 기회에 만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처음 보는 서울 할머니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약간 내성적인 그 아이는 붙임성도 적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집사람이 아닌 지라 계속 그런 시도가 반복되었다.
아들네가 멀리 살 때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으니 어린 손녀가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몰라보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아들이 서울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 집이 가깝다고 해도 아이들을 자주 볼 권리가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건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어쩌면 서로 살기 바쁘고, 또 아이들을 보겠다고 사부인이 계신 곳을 내 집 드나들 듯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느리와 큰 아이가 집사람과 같은 명성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미 교회에 나가기 전에도 큰 아이 예솔이는 할머니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친할머니가 아빠를 낳은 엄마라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된 듯하고, 그 할머니가 자길 매우 귀여워하고, 또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그 후엔 아들네와의 가족 모임이 있을 때 큰 손녀가 우릴 발견하면 달려와서 집사람의 다리를 껴안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나 집사람도 핏줄의 당김을 느끼곤 했다.
큰 손녀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후에는 집사람을 아주 좋아하게 됐다. 어쩌면 자주 만나지 못 하는 할머니가 자길 만나기만 하면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고 뭐 하나라도 잘 챙겨주려고 노력을 하니 자연스레 가까워진 것이라 하겠다. 교회에 가지 않는 난 손녀를 만날 기회가 집사람보다는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큰 손녀애가 친할머니의 존재를 깨달은 후에는 제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엔 집사람에게만 보이던 행동, 달려와 다리를 껴안고 좋아하면서 한동안 계속 그러고 있는 그 행동을 큰 손녀가 내게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서 하는 행동이다. 난 큰 손녀가 내 다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대고 있을 때 감격했다. '네가 내 손녀가 분명하구나!!!' 당연한 걸, 새삼스레 그렇게 느꼈다.
아직 작은 손녀애는 우리가 누군지 모른다. 전에 큰 손녀애가 우릴 보며 의아해하던 표정 그대로 우릴 본다. 하지만 이 아이는 언니가 우릴 대하는 걸 보면서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훨씬 일찍 풀었다. 우리가 안아주는 걸 거부하지도 않고, 제 기분이 좋을 때 우리 볼에 뽀뽀하라면 그 말을 듣는다.
그런 소소한 기쁨들로 점철된 만남이다. 이제 큰 아이는 친할머니를 만나는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할머니를 만나는 기쁨에 교회에 가고 싶어한단다. 교회에서 만나 사랑받고, 칭찬받고, 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일에 익숙해 진 것이다. 저 위에 있는 내려진 창문 안에서 우리 차를 보며 짓는 웃음에 난 넘어간다.^^; 어쩔 수 없는 손녀바보 할아버지가 된다. 나중에 들으니 그 아이가 우리 차를 발견하고 "할아버지 차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며느리가 우리 옆차선까지 빨리 달려와서 창문을 내리고 보게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더 크고, 친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알게 되고, 혈육의 정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될 때 비로소 가족이 완성될 것이다. 항상 젊게 살려는 내게는 오래 전부터 날 할아버지로 부르는 아이들이 있는 게 골치였다. 우리 일가가 가문에서 장남쪽이다 보니 항렬이 높아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엔 그런 부름에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할아버지라니...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심지어는 내가 증조, 고조 할아버지인 경우까지 있었다. 이건 뭐 제사상을 찾아온 할아버지도 아니고...-_-
그래서 일찍 그 호칭을 받았지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젊은 내가 있었다. 근데 아들내미가 낳은 아이들이 생긴 지금은 그런 호칭에 대해서도 부정할 길이 없다. 이젠 진짜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거기다 나이마저도 그런 호칭에 어울리게 되어 버렸다.ㅜ.ㅜ) 그래서 이젠 진짜 할아버지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그 두 녀석은 내게 아주 미운 놈들이다.
아래는 위의 사진들과 함께 있던 몇 장의 사진인데 집사람 생일에 아들네 식구를 만난 양재동의 엘타워의 디오디아 뷔페에서 식사하며 찍은 몇 장이다. 입짧은 내 식성을 보여주는 넉 장의 사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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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보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이폰 하는 삼촌' 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