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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풍경
2014.03.31 16:38

산천어를 풀어놓으며…

조회 수 1305 좋아요 0 댓글 8

‘춘궁기’나 ‘보릿고개’란 말을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 내가 춘궁기나 보릿고개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절박하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났기 때문이다. 같은 세대라도 덜 가난했던 또래들은 춘궁기나 보릿고개의 참담함을 모른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해도 중학교를 갈 수 없는 형편에서 춘궁기나 보릿고개는 꼭 이맘때부터 보리이삭이 여물 때까지로 한정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없이 자라던 유년의 기억엔 사철 배고픔을 겪어야 했고, 쉰밥 한 덩이라도 감지덕지 하던 입장에서 멀건 죽 한 그릇에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감격스러웠으니…

 

osaekphoto2014a0005.jpg

그런 봄을 쉰 한 번째 맞이한다.

옥수수가루 같은 사초꽃들이 바위틈에서 어김없이 피어나고, 여린 아이의 손 같은 돌단풍이 한껏 꽃망울을 올리면 온 산엔 거짓말처럼 진달래가 핀다. 한 길 이상 빠졌던 눈들이 녹은 산자락이 화사하게 물들면 배고픈 서러움은 극에 달한다.

절대로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지나고, 눈 속에서 도저히 꽃을 피우지 못하리라 여겼던 나목(裸木)들이 꽃을 피우는 변화의 계절에, 스스로 변화되지 않는 절망의 시기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어린 아이의 힘으로는 연명(延命) 자체도 버겁다.

나의 가난과 비슷하지만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더 절절한 가난의 세월을 지나오셨다. 소학교 문턱도 못 가 본 그 분들께서 역경의 세월을 살아오실 수 있었던 근본은 무엇이었을까? 너무도 순종적이기만 하셨던 그 분들께서 핍박과 모진 가난의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부모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성실함 오로지 그 하나의 힘 아닐까.

그러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힘 하나는 이젠 느낄 수 있다.

세상을 살며 순환의 의미와 자연으로부터 질서를 습득하면 스스로 난관을 극복하고 꽃을 피워내는 이치를 알 수 있다. 자연을 닮은 사람이기에, 우주의 순환 속에 더불어 생명의 선을 이어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한 사람이기에 생성과 소멸 속에 ‘때’가 있음을 깨닫고 인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으며, 작게는 한 마을의 운명이 이러하고 국가의 흥망성쇠도 이에 따라 움직여진다. 근심과 걱정으로 변화되는 일이 아니라, 시기를 기다려 준비하고 자생력을 키울 때 변화는 가능하다.

국가가 어린 아이들의 학습의 기회를 보다 넓게 준비하고 장려하는 이유도 국가의 흥망성쇠가 오로지 지금의 어린 아이들 손에 달렸음을 아는 까닭이요,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려 애쓰는 이유 또한 그러한 까닭이다.

우린 이러한 과정을 ‘꿈’으로 이해한다.

꿈은 곧 희망이며 생명 잉태의 기반이 된다.

꿈을 꿀 수 있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의 삶은 차이가 많다. 가난해도 꿈이 있는 이는 결코 비굴하지 않으며 간교함을 멀리하나, 꿈이 없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간교함으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보다 부유한 이 앞에 서면 비굴해진다.

 

osaekphoto2014a0004.jpg

내 사는 고장에서 늦은 감 없지 않으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이 두렷한 꿈을 품은 것이다.

냇가에 산천어가 은빛 비늘 반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 산천어를 풀어놓고, 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마을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하루 아침에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당장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다. 끝없이 결실의 때를 향해 노력해야 할 일들이다.

가난했던 시절 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도 엄청난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던 것처럼, 마을을 가로질러 포장도로가 만들어졌던 그 변화가 경이로웠던 것처럼, 고속도로 개통이 멀지 않은 지금 우리는 기계문명의 시대를 지나 문화와 자연에서 가치를 찾을 줄 아는 안목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명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질서가 소중하니 말이다.

Comment '8'
  • profile
    Dr.Spark 2014.03.31 18:05

    이젠 정 시인님도 청년이 아니군요.ㅋ

    벌써 51세라니... 전엔 앞머리 숱만 좀 부족한 청년이셨는데...^^

     

    그 고장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세월이 변하면 행정도 변해야 하고, 주민도 변해야죠.^^

    물론 그 중에 인간성을 비롯한 좋은 인심 등은 변치 않고 가면 좋겠습니다만...

     

  • ?
    한사정덕수 2014.03.31 18:13

    박사님, 저는 마을사업을 돌담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돌담을 끼고 취나물과 곰취꽃이 피는 풍경을 이야기 하며 말이죠.

    냇가에서는 낚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산천어와 꺽지를 방류하자는 제안도 물론 했고요.

    경제적 풍요로움은 많은 이들이 찾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 profile
    Dr.Spark 2014.03.31 19:10
    아주 멋진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곰취꽃, 그거 정말 멋지던데요?
    취나물만 알았었는데 곰취를 보니 그건 대형 취이더군요.^^
  • ?
    한사정덕수 2014.03.31 19:32
    곰취와 닮은 게 하나 있는데 곤달비란 식물입니다.
    양구에서 곰취축제를 할 때 TV화면을 보며 그 내용을 밝혔더니 나중에 그 문제에 대해 정정해 요즘은 곰취축제가 아닌 곤달비축제를 합니다.
    나물 중에서 가장 잎이 큰 나물은 곰취도 있지만 병풍취입니다.
  • ?
    라파엘 2014.03.31 19:17

    산천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산천어와 송어는 같은 물고기입니다.

    그런데, 강에서만 살면 산천어이고, 바다에 가서 몸을 좀 키워서 오면 송어가 됩니다. ^^

    영역싸움/생존경쟁에서 밀려서 바다로 나가는 쪽이 송어라는 설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계속 강에 있는 녀석은 작고, 바다에 다녀온 녀석은 몸집이 커져서 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 이후 강의 흐름도 거의 없어져서, 회귀성 어류인 자연산 송어/연어/장어는 한국에서 보기 정말 힘들다고 보시면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


    육식성 어류인 꺽지는 블루길이나 베스에 밀려서 보기 힘든 것도 현실입니다. 꺽지를 풀기 전에 외래종 육식어종인 블루길과 베스부터 좀 없애고, 초식성 어류인 송사리나, 산천어, 은어 등이 좀 많아져야 꺽지도 있을만한 환경이 될겁니다.  베스들이 설치는 현재 상황에서 꺽지를 풀어버리면 베스가 꺽지를 다 먹어 치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 ?
    한사정덕수 2014.03.31 19:30
    산천어가 송어나 같은 과의 어종은 맞습니다.
    연어를 비롯해 산천어, 송어, 무지개송어, 곤들메기, 열목어는 모두 같은 연어과의 물고기죠.
    그러나 산천어는 민물에 살아 산천어고 송어는 바라를 돌아 오기에 송어라는 건 조금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바다를 돌아 오는 것은 연어가 아닌가요?
    산천어와 송어가 민물에서 난 연어의 한 종이라고 하는 것엔 이곳에서도 같은 생각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종이 서로 닮기는 했어도 무늬를 보면 차이가 나니 아마도 연어중에서도 서로 종이 다른 연어의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곤들메기는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토착 민물고기로 이도 연어과입니다.
    그리고 이곳엔 블루길과 베스가 없는 곳입니다.
  • ?
    라파엘 2014.03.31 20:38
    셋다 같은 과인데, 산천어와 송어는 동일 어종으로 밝혀졌습니다. ^^
    한번 백과사전이나 사전 검색을 해보세요. 포털검색이나 어류도감 사이트 같은 곳에 산천어와 송어의 차이 라고 검색해보시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
    송어도 바다를 갔다 오는 회귀성 어류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송어 양식이 민물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
  • ?
    백두산 2014.04.01 00:45

    쉰밥을 찬물에 씻어 먹는것도 감지덕지했다 !

    밥이 없어 고구마나 찬물을 먹고 자기도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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