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오른 양평 추읍산(趨揖山, 583m)
세 번째로 오른 양평 추읍산(趨揖山, 58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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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두 번이나 오른 양평 산수유마을의 뒷산, 추읍산에 세 번째로 올라갔다. 하고많은 산들이 있는데 같은 산을 세 번이나 오른 것은 그 낮고도 포근한 산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얼리어답터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한 편,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집착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또다른 기질도 있다. 언제나 사람은 양면성을 지닌 것이므로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하겠다. 그래서 사람은 야누스적인 존재라 불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같은 곳을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은 매번이 새롭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처음 갈 때는 길찾기에 바빠 눈에 많은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 갈 때는 친숙한 광경들이 많고, 처음 갔을 때 보지 못 한 것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래서 역설적인 새로움이 있기에 그 변화를 즐기는 것이다.
같은 곳에 세 번째 가면 어떨까? 같은 길로 같은 곳을 세 번째 간다면 크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계절의 흐름에 따른 변화도 있고, 일기의 차이로 인한 변화도 느껴지니 전과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친숙한 광경이기에 새로운 길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 같은 것이 사라지고,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비로소 주변의 자연을 즐기며 산행을 하게 된다. 바람직한 등산 방법이다. 그러므로 산림청이나 블랙야크의 "100대 명산 캠페인"에 동참하여 열심히 전국의 산을 순례하는 것도 좋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산에 여러 번 오르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이번 세 번째의 추읍산 산행은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또 전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이유는 첫 번째 산행은 산수유마을 중 하나인 내리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택했고, 두 번째 산행은 또다른 산수유마을인 주읍리에서 출발하는 등산로에서였다. 그리고 이번엔 소위 원덕역(元德驛) 출발 코스를 택한 것이다. 경의중앙선의 원덕역(원덕리 소재)은 잘 알려지지 않은 추읍산에 많은 등산객들을 끌어들인 공이 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등산로 들머리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쉽게 추읍산을 오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번 산행은 나의 등산 파트너 중 한 분으로 전에 용문산 가섭봉을 함께 오른 김현목 선생님(전 싸이월드 부대표)과 함께 했다. 자전거광인 김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등산을 해 온 분으로서 요즘은 주로 자전거 라이딩을 하시나 체력도 좋고, 등산 경력이 많으셔서 산에서 날아다니는 분이다. 사실 추읍산에 대해 내가 처음 들은 것은 김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용문산 등산 중에 산은 높지 않으나 가팔라서 네 발로 기어 올랐다고 과장을 곁들여 말씀하셨던 산이 추읍산이다. 그 땐 그 산 이름이 좀 낯설었다.
하지만 그 산은 내가 몇 번이나 방문했던 양평 개군면의 산수유마을 뒷산이었다. 이른 봄 마을 전체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꽃이 만발한 가운데 엄마 젖가슴 같은, 낮으면서도 둥근 봉우리를 가진 푸근한 산이 뒤에 있었는데... 동네사람들에게 물으니 그게 칠읍산이라 했다. 말하자면 그 산은 추읍산으로 알려지고, 지도엔 주읍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주읍리(와 내리, 그리고 향리 세 동네의) 뒷산이었던 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의 조망이 잘 터져있어서 주변의 일곱고을을 다 볼 수 있다고 하여 칠읍산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그런데 주민들은 다 칠읍산으로 부른다. 심지어는 추읍산이라고 하면 좀 싫어하는 기색이 보일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
봄에 산수유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 한 번 저 산에 올라가야지.'하는 생각만 했고, 돌아오면 그 다짐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페이스북 친구 김일환 선생님의 권유로 거길 찾게 된 것이다. 역시 처음 오르니 친숙한 시골풍경이나 내리, 향리의 아름다운 전원주택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올라간 등산로와 다른 등로로 하산하며 길을 잘못 들었었기에 곧 두 번째 등산을 감행했고, 나름 만족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리고 두 개의 등로로 오갔으니 나머지 원덕역 코스와 용문 코스가 남은 셈인데, 굳이 용문에서 오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흑천(신내천)변 잠수교 건너의 들머리로 향하는 원덕역 코스를 더 밟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등산 후기에 '한 번 더 가리라!'고 했더니 김현목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그 산에 자기도 함께 가고 싶다고 하셔서 세 번째의 등산이 이뤄진 것이다.
그간에 비가 오기도 하고 다른 일이 있기도 해서 김 선생님과의 등산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 중간에도 나 혼자서 두 세 번의 등산을 했다. 그러다 드디어 김 선생님과 함께 등산을 하기로 한 것이다. 대개의 등산이 솔로 산행인 내게는 다른 분들과의 등산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솔로 등산은 오로지 나 자신의 페이스에만 맞춰서 내가 편한 대로 산을 오르면 된다. 하지만, 왠지 쓸쓸하고도 외로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분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 대화를 하는 즐거움이 보태진다. 그래서 김 선생님과의 등산이 기다려졌었다.
김 선생님을 천마산이 가까운 마석역에서 픽업하기로 하여 수석호평간 민자도로를 통해 달려갔다. 올해 폐장한 스타힐리조트의 낮은 산 뒤로 멀리 당당한 모습의 천마산이 보이는 그 길은 내가 겨울철이면 스키장에 가느라 수도 없이 지나간 길이다. 올겨울부터는 그곳에 갈 일이 없어져서 마음이 아프던 차인데 다시 그 길을 달리니 감개무량한 마음까지 생겼다. 마석역에서 김 선생님을 만나 함께 양평을 향해 달렸다.
차를 원덕역에 주차하고 등산을 시작할까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여 흑천 잠수교를 차로 건너 추읍산 등산로 들머리 부근에 주차를 했다. 거기서 흑천변을 약간 걸어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거긴 아직 추읍산이 시작된 것도 아닌 작은 야산인데도 등산로 초입부터 경사가 좀 있었다. 원덕역 등산로는 꽤 잘 정비되어 있고, 등산로도 넓어서 좋았다. 근데 그 날은 화요일, 평일인데도 다른 등산객들이 많았다. 전에 두 번 혼자 등산을 할 때는 다른 등산객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 했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초입에서 500m 정도 오르니 전에 내리에서 올라가며 봤던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리고 좀 더 오르니 정상까지의 거리가 8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거긴 두 번을 오르내려서 아주 친숙한 길이었다. 열심히 오르니 금방 정상 부근의 헬기장이 앞에 보인다. 갈대군락이 멋진 곳이다. 김 선생님과 대화하며 오르니 너무 빨리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울 정도였다.
대개 10월 상순이나 중순이면 억새로 유명한 포천의 명성산 등에서는 억새축제가 시작된다. 그래서 두 번째 등산에서 헬기장의 억새를 보고 반가웠던 마음에 더 멋진 억새 풍경을 기대하고 올라갔다. 그런데 웬 일인지 그곳의 억새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ㅜ.ㅜ 약간 실망감이 들긴 했지만 그건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금방 잊어 버렸다. 이날은 흐린 날로 예보되고 기온도 20도 이하의 가을날씨였는데, 희한하게 시계는 매우 좋았다. 역시 정상에서의 북쪽만 약간 막힌 사방의 전망은 매우 좋았다. 멀리 보이는 치악산이나 오크밸리리조트, 여주의 남한강 줄기를 비롯해서 양평읍, 원덕리, 용문 등 주변의 마을들이 정겨웠다.
정상 부근의 큰 참나무 아래있는 테이블에서 간단히 간식과 음료를 먹고 하산을 시작했다. 우린 원래 올라온 길로 원점회귀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어느 이정표에선가 길을 잘못 들었다. 그것도 내가 앞선 상태에서 내리행사장(내리의 마을회관을 내리 산수유한우축제장으로 사용하기에 붙은 이름)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두 번째 추읍산 산행에서 내가 하산한 길이었다.^^; 거기서도 원덕역으로 연결되는 내리 임도가 있기는 한데 대신 거리가 좀 늘어난다. 많이 내려온 참이라 그 길을 그냥 가기로 했다.
내리의 산수유꽃길 깊숙한 산자락으로 나온 후에 다시 임도를 좀 올라갔다. 임도 끝에 이르니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4.1km를 가면 원덕역이 나온다고 써있었다. 원덕역에서 등산로 들머리까지가 1.4km이므로 우린 2.7km만 가면 되는 것이었다. 대충 그것의 반 정도를 임도로 트레킹을 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날은 너무 빨리 정상에 올라간 느낌이고, 또 거기서 내려온 것도 금방이라 좀 더 걸으니 그게 더 좋았다. 우린 3시간 15분 걸려 등산을 완료했고, 총 7.38km를 걸었다.
흑천변 출발점으로 돌아와 차를 타고 신내교차로 옆의 양평 신내서울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양평의 맛집으로 같은 이름의 해장국집 본점이고, 신내해장국의 원조집이라 한다. 거기서 해내탕을 먹었는데 그건 해장국+내장탕을 줄여 만든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건 엄청난 양의 내장을 넣은 아주 맛있는 내장탕이었다. 먹어 본 중 가장 맛이 있으면서도 양이 많은 내장탕이었다. 김 선생님이 전에 자전거 라이딩을 할 때 찾아오신 곳이라며 안내해 주신 식당이었다. 그 해내탕은 정말 맛도 좋고, 양도 많아서 언제 집사람과 함께 거길 들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식사 후에 우리는 응접실에서 창을 통해 서쪽으로 천마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김현목 선생님의 전원주택으로 향했다. 대략 4시반경이었는데 거기서는 매일 천마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공기도 맑고, 주변 풍경도 좋은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의 추읍산 등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