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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를 볼 수 있는 명성산(鳴聲山) 등산

 

 

[2021/07/20, 화] 한여름 땡볕 더위에 포천의 명성산에 갔다. 주변사람들이 두 가지가 이상하단다. 첫 째는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어쩌자고 등산을 하냐는 거고, 두 번째는 억새도 없는 명성산엘 여름에 왜 가냐는 것이다. 하긴 행정안전부가 폭염주의, 온열질환 경고 문자를 매일 보내오며 집에 처박혀있으라고 하는데... 

 

그럴 땐 답변이 궁색하지만 그냥 "더위 피해서 시원한 바람과 계곡물이 있는 산에 가는 거"라고 둘러댄다. 근데 이젠 도심의 열섬현상을 피해간다고 해도 이젠 한반도 전역이 열대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라 산에도 바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렇게 더우니 계곡의 물도 대부분 말라있다. 실은 집이나 사무실에만 있으면 답답하니까 교외로 나가는 거고, 기왕 나가는 거 운동을 하려니 등산을 하는 것일 뿐 다른 건 없다. 

 

명성산은 가을이면 6만 평의 능선을 가득 메운 억새꽃을 토대로 대단위의 억새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하지만 가을은 멀고 명성산의 첫 째 가는 보물은 억새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뭔 축제 같은 건 애당초 관심이 없어서 억새를 보러간다해도 그 기간을 피해 평일에 갈 것이다.(그 축제엔 연인원 150만 명이 몰려든다.) 억새밭의 크기로 치면 영남알프스의 사자평은 120만 평이나 되어 명성산 억새밭의 20배 크기이고, 억새꽃축제의 유명도로 치면 정선 민둥산의 축제가 제일이다. 여기도 억새밭의 크기는 명성산보다 세 배나 넓은 20만 평 이상이다. 하지만 명성산 기슭엔 다른 데 없는 게 있으니 그게 산정호수이다. 산에 올라가 이 호수를 내려보면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산정호수는 산꼭대기에 있다는 의미의 산정(山頂)호수가 아니다. 이것은 우물 정(井) 자를 써서 산정호수(山井湖水)로 표기한다. "산중에 있는 큰 우물 같은 호수"란 얘기다. 의외로 이 호수는 자연호수가 아니라 1925년에 그곳 포천 영북면의 관개용 저수지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선의 시인묵객들이 몰려들어 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칭송했을 것이고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들은 조상들이 누리지 못 한 산정호수의 아름다운 경관을 명성산에 올라 굽어보며 감탄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명성산 등산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 산에서 멀리 보이는 산정호수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산정호수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지금은 아이스 스케이팅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스케이터들도 아이스와 인라인으로 나뉘었다. 그래도 원하는 사람들은 여러 군데 있는 실내 아이스 스케이트장에 가면 사철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오히려 겨울철의 야외 스케이트장들은 전과 달리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어린시절엔 실내 스케이트장은 단 한 군데 동대문실내스케이트장밖에 없었다. 겨울이면 대개 얼어버린 한강에 만들어지는 유.무료 스케이트장이나 큰 개천 옆에 보를 쌓고 임시로 개설하는 유료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팅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야외 스케이트장은 춘천 공지천의 대형 트랙이었다. 그리고 가장 호사스런 야외 스케이트장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형이라 찬 바람이 안 불어 좋은 포천의 산정호수였다. 얼어버린 호수에 스피드 스케이팅용 트랙을 만들었고, 눈이 오면 그걸 치워가며 스케이팅했다. 당시 서울의 중고교 및 대학의 아이스하키팀들은 거의다 산정호수에서 합숙훈련을 했다. 나도 아이스 하키팀의 훈련에 참가했고 거기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명성산의 순우리말 이름은 "울음산"이다. 명성(鳴聲)이란 한자가 울 명(鳴), 소리 성(聲)이다. 울음소리인데 그게 누구의 울음일까? 그건 후삼국시대에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는 나라로 태봉국(泰封國),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弓裔)의 울음이다. 그는 자신의 신하였던 왕건이 반역을 일으키는 바람에 꿈을 접었던 것이다. 명성산은 궁예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대치하고 최후의 결전을 벌인 곳이다. 궁예는 명성산 8부 능선에 산성을 쌓고 있는 힘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패퇴했고, 그 1년 후에 피살되었다. 대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우리의 궁예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게 남아있다. 신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큰 뜻을 품었던 그의 실체는 우리가 역사 드라마를 통해 구축한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랐을 것이다. 지금도 명성산 주위엔 궁예봉을 비롯해 그에 대한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나는 군시절에 푸른별 청성(靑星)부대인 보병6사단의 2연대에서 근무했다. 그 부대는 쇠둘레 철원(鐵原)의 제2땅굴을 지키는 연대였다. 철원은 바로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수도였다. 나야 숙소당번병이었으나 우리 연대의 수색부대(민정경찰 명찰을 단 부대원들) 병사들이 가끔 DMZ(비무장지대)나 JSA(Joint Security Area, 공동경비구역)에서 경험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들의 얘기 중 하나는 궁예도성(弓裔都城)을 방문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도성은 임금이나 황제가 있던 도읍지(수도)를 말한다. 궁예도성, 혹은 궁예성지(弓裔城址)는 풍천원(楓川原)으로 불리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일대에 있는 태봉국의 도읍 터이다. 이 홍원리가 남방한계선 바로 위의 월정리역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그곳이 군사분계선으로 나뉘어 있다. 엄밀하게는 불법적인 일이겠으나 수색대 친구들이 그곳에서 태봉국 당시 사용된 멀쩡한 도자기나 기타 유물을 들고 나와 그걸 군대생활의 기념물로 챙겨뒀다가 제대할 때 가져가곤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친구가 궁예도성 부근의 DMZ에서 가져와 제대기념패에 부착해 가져간 철로 만든 부조였다. 그건 바주카포를 맞아 파괴된 소련제 탱크에 붙어있던 걸 떼어낸 것인데, 아주 아름다운 손바닥 크기의 철조각 미녀상이었다. 슬라브계 러시아 미인의 신비로움이 깃든 얼굴을 부조 형태로 새긴 예술적인 작품이었다. 그런 게 어떻게 탱크에 붙어있었던 것인지... 

 

어쨌든 하키 스케이팅을 하던 어린시절이나 청년이 되어 군에 있던 시절이나 궁예와 관련된 것이 내 주위에서 가끔 보이곤 했다. 오랜만에 다시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돌이켜 보고픈 생각도 있었기에 그 길에 명성산에 간 것이다. 우리가 흔히 포천 명성산이라 부르지만 그리 부르면 철원 사람들이 싫어한다. 명성산의 정상은 철원군 갈말읍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석은 철원군에서 세웠다.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좀 내려와야 포천시에 속한 산이 되고 거기 삼각봉이 있는데, 포천시는 거기에 "명성산 삼각봉"이라 새긴 정상석을 세웠다. 그리고 산정호수에서 볼 때 명성산 정상 왼편에 보이는 작은 몇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 가장 왼편에 있는 봉우리가 궁예봉이다. 이 궁예봉은 철원군에 속한다. 

 

대부분의 명성산 등산객들은 산정호수의 상동주차장 바로 앞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통해 책바위 코스나 억새밭 코스로 명성산에 오른다. 특히 책을 펼쳐놓은 듯한 바위가 있는 책바위 코스를 택하는 경우, 곧 아름다운 산정호수를 굽어볼 수 있는 능선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내려다 보는 산정호수의 아름다움은 숨이 막힐 정도이다. 호수 주변엔 망무봉이 있어서 그 그림자가 호수에 드리워지기도 하고, 하늘색이 좋을 때는 그 푸르름이 호수에 그대로 비치기도 한다. 거기 호수만 있다면 정감이 없겠으나 호수 주변의 상가나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게 함께 보여서 인간적이기도 하다. 내가 명성산 등산을 한 이유가 그 호수를 내려다 보기 위함이니 그 책바위 코스를 택했을까? 아니다. 난 그곳에서 국도인 포천 산정호수로를 3km 이상 걸어가 철원 궁예로에 있는 산안고개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택했다. 그 등산로는 꽤 험한데 중간에서 왼편으로 가면 궁예봉으로 향하는 코스이고 오른편으로 가면 명성산으로 가는 코스이다. 내가 택한 것은 궁예봉이다. 그곳은 산정호수와 먼 곳이다. 그 등산로를 택한 이유는 아름다운 산정호수의 모습을 아껴뒀다 보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명성산에 왔으니 산정호수를 보게 되겠으나 책바위 코스의 능선에서 크게 보이는 호수의 모습이 정상을 향하며 작아지는 것보다는 멀리서 주변 경치에 묻혀서도 존재감을 보이는 산정호수를 보며 점차로 호수가 다가와 점점 더 크게 보이길 원했던 것이다. 결국 힘든 산안고개 등산로를 통해 더 힘든 궁예능선로로 접어들었고, 고난 끝(?)에 궁예봉에 올라 먼 경치에 포함된 산정호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명성산 정상, 삼각봉, 그리고 억새밭 바로 위의 팔각정과 억새밭 계단로를 통해 호수 옆 상동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총 19.85km의 거리를 9시간 12분동안 걸었고, 2,670킬로칼로리를 소비했다. 이날은 아주 맑았고, 햇볕은 뜨거워서 평균 온도가 33도였는데, 처음에 산정호수로에서 산안고개까지 걸어가는 동안엔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워낙 강해서 무려 36도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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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4'
  • profile
    apple 2021.07.24 16:51

    와! 산정호수 정말 40년 넘게 지나 들어 보는 곳입니다 그 옛날에는 안 가 본 곳이 없었는데 정말 산정호수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네요 

    그리고 한국의 산들이 너무 이쁘네요 정리도 잘 되어있고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 profile
    Dr.Spark 2021.07.24 19:34
    아, 한국에 계실 때 산정호수도 가 보셨군요. 정말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곳이지요. 요즘은 산정호수 주변을 도는 둘레길도 만들어져 있고 각종 시설도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수많은 펜션들이 있습니다. 그중 많은 펜션들은 계곡 바로 옆에 있어서 거기 머물 때 물소리, 새소리가 들리는 등 아주 좋죠. 계곡에 가서 바위에 앉아 계곡물에 발 담그고 쉴 수도 있고, 그 주변에 펜션에서 가져다 놓은 긴 등받이 의자에 앉아 서로 대화할 수도 있고요.^^
  • profile
    apple 2021.07.27 16:52
    내년에 한국 여행 나갈때 버킷 리스트에 담아 놓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한국에 가면 서울보다는 시골로 여행을 할 생각 입니다
  • profile
    Dr.Spark 2021.07.29 10:40
    오랜만에 다시 가시면 감개무량하시겠습니다.^^
    공기 나쁘고, 여름에 엄청 더운 서울보다는 시골에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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